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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복수가 낳은 사이버테러’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까

등록 2005-04-01 16:25수정 2005-04-01 16:25

초등학교 교사를 사칭한 네티즌이 글을 올린 인터넷 사이트 캡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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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를 사칭한 네티즌이 글을 올린 인터넷 사이트 캡처 화면. \\


[점검] ‘촌지 당연’ 가짜교사 소동이 남긴 것은

“교사의 사기를 꺾고, 학부모의 불신을 키운 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1일 서울시 동작교육청 황병렬 학무국장)

지난 29일 ‘촌지는 당연하다’고 교사를 사칭해 한 인터넷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린 사람이 20대의 무직여성임이 경찰의 인터넷 IP 추적을 통해 밝혀졌다. 하지만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교사 집단과 “아니 아직도”라며 혀를 찬 학부모들의 가슴에는 익명의 글로 인한 상처의 흔적이 선연하다. 사실, 이번 사건은 익명을 무기로 한 전체 교사집단에 대한 ‘사이버테러’에 가깝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첫 책임은 해당 ‘서울시 동작교육청 산하 초등학교 5학년 3년차 교사’를 사칭한 26살 여성에게 돌아간다.


황병렬 학무국장은 “신뢰와 존경으로 먹고 사는 교직자에게 큰 상처를 주고, 학부모의 불신을 키운 데 대해 허탈하고 참담하다”며 “개인적으로라도 해당여성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훈구 교수는 “촌지를 받는 교사를 곧바로 비판하는 게 아니라, 교사집단을 뻔뻔한 집단으로 비추게 해 비난을 받게 한 복수심에 의한 사이버 테러다”고 지적했다.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사춘기 상처’ 눈길

하지만 경찰 수사에서 이 글을 올린 26살 여성은 “중학교를 다닐 때 촌지를 주고 받는 학부형들과 일부 교사들 때문에 상대적 불이익을 받아서 악감정이 많았다”고, 교사 사칭 글을 쓴 동기를 밝혔다. 현재 이 여성 주장의 진실 여부를 검증할 길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여성의 ‘중학시절 촌지로 인한’ 피해의식은 눈길을 끌었다.

“그랬구나. 그래도 그렇지…” 다수의 성인들이 사춘기 학창시절 ‘촌지’로 인한 불쾌한 기억들과 그로 인해 빚어진 ‘부조리’에 대해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렇다고 이 20대의 행위가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에게 각인되어 있을 ‘사춘기의 상처’가 어떠했을지를 짐작하게 할 따름이다.

아울러 이번 해프닝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인터넷에서 확인된 교직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다. 진실성이 의심스러운 가짜 교사의 글이 진실로 쉽게 받아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김재규 대장은 “신분을 위장해서 교사 집단을 옹호하는 듯 하면서도 비방하게 만들었고, 글 자체가 상세해서 사실처럼 믿게 한 점도 있지만, 사회의 교사집단에 대한 불신을 끄집어냈다”고 지적했다.

한 20대 초등학교 교사는 “애초 문제의 글을 보고 당황스러웠고 믿기지 않았다”며 “가짜 교사로 밝혀졌다고 누명을 벗었다는 기분보다는 교육현장의 현실에서는 촌지가 많이 사라진 현실을 믿지 않는 학부모와 사회분위기가 씁쓸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제의 글이 가짜 교사가 쓴 글로 밝혀졌지만, “가짜 교사의 글이지만 틀린말 없네 뭐!!!”라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많았다. 교육계가 “억울하다”고만 할 수도 없는 까닭이다.

“언론이 검증않고 ‘해프닝’ 무책임하게 확대보도한 게 문제”

전문가들은 언론의 보도윤리를 비판했다.

한양대 이재진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부작용이다”며 “하지만, 언론이 자극적으로 보도할 게 아니라 이번처럼 ‘해프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하고 뉴스를 걸러서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이버문화연구소 라도삼 책임연구원도 “‘해프닝’인데, 언론이 신뢰도가 떨어지는 인터넷상의 글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확대보도함으로써 문제를 키웠다”며 “인터넷상의 글을 인용보도할 때의 보도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병렬 학무국장도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황 국장은 “글을 올린 사람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뢰도가 높은 언론이 진짜 교사인지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정적으로 보도한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며 “흥미 위주로 보도해 교육에 대한 불신을 키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포털사이트, 사실확인 없이 ‘교사 글’ 단정 머릿기사로 편집해 전파

대다수 언론은 기사 본문에서는 “초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연합뉴스, 동아일보, 노컷뉴스), “초등학교 교사라고 주장한 한 네티즌”(SBS), “자칭 교사 글 인터넷 파문”(조선일보, 한국일보), “서울 동작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오마이뉴스)으로 조심스러웠던 반면, 기사 제목 등에서는 “초등교사” 등 단정적으로 쓴 경우가 많았다. <인터넷한겨레>도 이를 보도함에 있어, `자칭 교사'(제목) `초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본문) 과 같은 표현으로 글쓴이가 `교사'를 자처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으나, 이 글의 전문을 소개하고 주요기사로 편집함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보도하는 신중함을 기하지 못한 바 있다.

한 방송사는 “한 초등학교 교사가 촌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 교사가 촌지에 관한…삐뚤어진 생각을 가진 한 교사의 글이…” 등으로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또 전파력이 폭발적인 대형 포털사이트들도 사실관계가 불확실한 각 언론사의 기사를 머릿기사 등으로 편집한 데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가짜 교사’ 소동에 대해 사과한 곳은 많지 않다. <오마이뉴스>가 1일 “‘교사의 글’이라고 단정해서 보도하지는 않았으나, 글쓴이의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주요하게 배치함으로써 현직교사들의 명예를 심히 훼손하고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 데 대해 사과드립니다”라고 사과문을 낸 게 눈에 띄는 정도다.

이번 소동은 어디에 책임이 있든, 씻기 어려운 상처가 남은 것은 분명하다. 대안은 엄격한 법적 제재인가?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유의선 교수는 “인터넷의 익명성이 갖는 근본적 문제다”며 “디지털시대의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느냐, 그 폐해 때문에 엄격하게 규제하느냐는 딜레마지만, 법으로 해결하기보다 네티즌의 건전한 상식에 의해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해결책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라도삼 연구원은 “문제의 가짜 교사도 자신의 글이 일으킬 파장에 대해 제대로 몰랐을 것이다”며 “자유공간이라는 인터넷의 특성을 훼손하거나 파장을 예측하지 못한 한 개인에 책임을 묻기보다는, 인터넷상에서의 글쓰기가 갖는 명예훼손 등 폭발성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순천향대 원종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인터넷의 내용을 기존 대중매체가 기사화할 때 어떤 기준을 갖고 보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해법이 찾기 어렵지만, 인터넷 공간에서의 글쓰기에 대한 윤리성도 높여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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