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죽지 못하는 ‘양공주 할머니’
고아로 공장서 한 눈 잃고 남편 폭력에 미군 기지촌으로
폐암 사망에도 신고자 없어 법원 결정 두달까진 ‘산사람’
폐암 사망에도 신고자 없어 법원 결정 두달까진 ‘산사람’
“그는 아직도 세상을 뜨지 못했어요.”
3일 경기 파주시 파주병원에서 임아무개(61)씨가 한 많은 ‘양공주’로서의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틀 뒤 파주 벽제화장터에서 화장돼 한 줌 재가 되었지만, 호적상 그는 보름이 넘도록 아직도 살아 있다. 고아로 시작된 그의 삶은 죽어서도 외로웠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잃고 9살부터 식모살이를 시작해 20대에 쇠를 깎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쇳가루가 눈에 들어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한때 한국 남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가정폭력에 못 이겨 집을 나온 그는 기지촌으로 찾아들었다. 동두천과 파주 일대의 미군기지 주변에서 ‘양공주’ 생활을 하면서 미군과 동거를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최근 미군기지가 철거됐지만 나이가 든 그는 파주 선유리를 끝내 떠나지 못했다. 그러던 그는 자신의 가슴에 암이 진행된 사실도 모른 채 통증을 느껴 병원에 입원했다가 폐암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시작했으나 며칠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현행 호적법상 사망 신고는 사망자의 호주나 친족, 동거자나 사망 장소를 관리하는 자가 하도록 돼 있다. 파주시 문산읍의 한 관계자는 “임씨 사망 당시 주민등록과 호적은 있었지만, 인척은 물론 동거자 등 당사자를 찾을 수 없었고, 병원 쪽도 ‘행정업무를 대행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사망신고를 꺼렸다”고 말했다.
결국 파주시가 나서서 병원의 사망진단서를 받아 고양지원에 ‘직권정정기재 허가신청’을 냈다. 법원이 임씨의 사망 확인을 결정하려면 한 달에서 두 달 정도가 걸린다. 임씨는 자신의 죽음을 이 세상에서 확인받으려면 앞으로 한두 달은 더 산 사람이어야 하는 셈이다.
기지촌 여성들을 돌봐오면서 사망한 임씨를 화장했던 의정부 두레방의 박수미 간사는 “전쟁과 가난, 가정폭력에 휘말려 기지촌에서 평생을 ‘양공주’라는 각인이 찍혀 살아온 임 할머니가 가는 길조차도 이 세상이 쉽게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파주/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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