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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녹아버린 보물 ‘동종’ 스님·신도들 망연자실

등록 2005-04-06 16:32수정 2005-04-06 16:32


[사진설명] 양양 일대를 휩쓴 산불이 완전히 꺼진 6일 오전 헬기에서 내려다 본 낙산사 경내가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아래 칠층석탑 앞은 원통보전이 있던 자리고, 석탑 뒤 소방대원들이 서 있는 곳이 동종이 재만 남고 탄 자리며, 맨 오른쪽의 의상교육관 왼쪽으로 종무소, 범종각 등이 탄 잿더미가 보인다. 양양/사진공동취재단

■ 또 화마할퀸 낙산사

6일 아침 의상대에서 바라 본 동해 일출은 아름다웠다. 그래서 불탄 낙산사는 더욱 참담해 보였다.

원통보전 등 많은 건물은 재가 돼 연기만 피우고 있었다. 화마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긴 몇 채의 건물도 검은 상처로 울고 있었다. 수려한 소나무는 불길에 잎새를 모두 내준 채 새까만 가지만을 힘겹게 보듬고 서 있었다.

이날 경내에는 새도 찾지 않았다. 대신 조용했던 산사에는 시끄러운 헬리콥터만이 굉음을 내며 선회했다.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잿더미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이곳이 도량이 아니라 전쟁터였음을 일깨웠다. 뒤늦게 나타난 소방헬기는 무너진 잿더미 위로 그토록 아쉬웠던 물을 쏟고 지나갔다.

“저건 동종이 아니야. 분명 잿더미 어딘가에 동종이 있을 텐데…” 부임 15일 만에 참사를 당한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은 원통보전 앞 종각이 있던 자리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조선시대 종의 걸작품으로 평가되는 동종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 잿더미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종 끝부분을 장식한 화려한 당초화문만이 일부 남아 이것이 보물 476호로 지정된 동종이라는 것을 말해줄 뿐이었다.


곳곳 검은연기·그을음
마치 전쟁 치른듯 칠층석탑 다행히 보존

불에 타 사라진 보물 제479호 동종 6일 오전 강원도 양양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에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 낙산사 보물 제479호 동종 잔해. (양양=연합뉴스)


정념 스님은 “아무리 급했어도 동종을 옮겼어야 하는데 오전에 산불이 진화됐다는 소식에 그만 마음을 놓고 말았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불 탄 ‘불심’은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들 문화재말고도 홍예문 전각이 소실되고 사리탑(지방문화재 75호) 일부가 훼손됐다.

그나마 불상을 옮길 때 하는 ‘부처님 이운식’의 예도 갖추지 못하고 스님 등에 서둘러 업혀 원통보전을 벗어난 건칠관세음보살좌상(보물 제1362호)은 그 은은한 미소를 간직할 수 있었다. 원통보전이 불타 무너지는 통에도 바로 앞에 자리한 칠층석탑(보물 제499호)이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다. 탑 일부가 열을 받아 돌조각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 말고는 제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 소실된 보물 낙산사 동종 중 명문 부분 화마에 녹아내린 낙산사 동종 중 제작 내력 등을 기록한 명문(銘文) 부문. 조선 제8대 예종이 그의 아버지 세조를 위해 보시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글은 김수온이 짓고 글씨는 정난종이 썼다. (서울=연합뉴스) \


이날 오전 부랴부랴 낙산사를 찾은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피해상황을 돌아본 뒤 “그 와중에서도 낙산사 명물인 원통보전 담장이 일부 불에 그을리기는 했지만 무사해 정말 다행”이라고 반가워했다. 그는 자신이 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원통보전 담장을 언급하며 낙산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낸 바 있다.

화재로 절과 요사채(스님들의 숙소)를 잃은 스님과 직원 등 50여명은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밤을 새우고 돌아와 넋을 잃은 모습으로 도량을 지켜봤다. 화재 소식을 접한 불자와 시민들의 방문도 속속 이어졌다. 속초에서 온 김청자(63·여)씨는 “화재 소식을 듣고 밤새 잠도 못잤다. 막상 와서 보니 어떤 것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하지만 초파일 전까지 청소라도 마쳤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한걸음에 올라온 한 비구니는 “봄을 맞아 한창 아름다울 때 이런 일을 당했다”며 “절이야 다시 지을 수 있다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울창한 소나무숲이 복구되는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들의 마음은 낙산사처럼 새까맣게 타있었지만 장갑을 낀 손은 ‘새살’이 돋길 바라며 어느새 절 이곳저곳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양양/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536살 낙산사 동종 왜 녹았을까?

대나무숲이 화기유출 막아…“마치 용광로”



낙산사 불의 가장 큰 상처는 동종이 녹아 소실된 것이다. 높이 158㎝, 입지름 98㎝인 낙산사 동종(보물 479호)은 1469년 예종이 불자였던 부왕 세조를 기리며 발원해 만든 조선 초기 4대 범종 가운데 하나였다. 특유의 보살무늬와 범자 문양이 돋보이는 희귀 문화재였다.

종각이 불탄 현장에는 녹아내린 범종의 잔해가 깨진 바가지 모양으로 남아 있다. 크기는 3분의 1로 줄었고 한쪽 면은 날아갔다. 문화재청은 잔해를 문화재연구소로 옮겨 보존하고 복원품을 만들 예정이다. 그러나 원래 종의 수리복원은 영영 불가능하다.

동종 종각은 원통보전 아래 고향당 옆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소방대원이 접근하기 어려운 외진 곳인데다, 화기가 워낙 강해 오랫동안 열기에 노출돼 화를 입었다. 전각이 비좁아 순식간에 불길이 들어찼고, 뒤쪽 대나무숲이 화기가 빠지는 것까지 막아 용광로 가마처럼 돌변했다.

전통 종은 구리를 바탕 재료로 하되 강도를 높이기 위해 주석과 아연을 소량 섞어 만든다. 1.1톤짜리인 이 동종은 2003년 서울대 연구팀 조사에서, 구리 80.04%, 주석 19.93%로 구성됐음이 확인됐다. 구리의 녹는점이 약 1083도이고 주석을 10~20%쯤 첨가하면 녹는점은 994~875도가 된다. 따라서 주석 함량이 20%에 육박하는 동종은 화기가 지속돼 온도가 800도 이상 올라가자 곧장 녹아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절 들머리에 1980년대 세운 새 범종각은 종각이 불탔는데도 종의 외형이 말짱했다. 성분이 순철이어서 녹는점이 1500도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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