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법 “부부평등 제한”
ㄱ(30·여)씨는 이혼 경력이 있는 ㄴ(35)씨와 ‘만약 이혼한다면 위자료와 재산분할 등의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계약서를 쓰고 2001년 결혼했다. 하지만 고부관계, 남편의 전처 자녀 양육 문제 등으로 자주 다투었고, 구타까지 당하는 등 극심한 갈등을 겪자 지난해 별거한 뒤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과 함께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냈다.
울산지법 가사단독 강재원 판사는 16일 “폭행과 외박은 물론 원고가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등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ㄴ씨한테 있다”며 “ㄴ씨는 ㄱ씨한테 위자료 1500만원과 재산 분할금 9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결혼 전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작성한 계약서는 무효라는 것이다.
강 판사는 “결혼 전에 위자료를 청구하지 않기로 약정했다는 이유로 혼인 파탄에 책임이 없는 당사자의 위자료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의에 반하는 행위이고 법적인 권리행사 여부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위자료 청구는 배우자한테 책임이 있는 불법행위에 의해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를 경우 입게 되는 정신적 고통을 위로하기 위한 손해배상 청구권으로서 이혼 시점에서 확정·평가되는 것”이라며 “위자료 청구권이 발생하기도 전에 미리 포기한다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강 판사는 “재산 분할 청구를 하지 못하는 것도 부부평등을 본질적으로 제한하고 사회 질서에 반하는 행위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는 헌법의 남녀 평등조항과 민법 103조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울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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