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 아이들 ‘무국적자’ 신세로 전락
동두천 보산동 ‘아메리칸 앨리’에는 미군과의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필리핀 ‘새댁’들이 많다. 최근 2∼3년전부터 눈에 띄게 달라진 ‘새 풍경’이다.
예술흥행비자(E6)로 우리나라에 입국한 필리핀 여성은 2381명(2005년 기준). 전체 연예인 입국자 4759명의 59%이고, 10년 전의 898명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이 대부분 동두천·송탄·평택 등지의 기지촌 주변 클럽으로 유입되면서 클럽에서 만난 미군과 동거, 결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군 병사와 외국인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보산동에만 수십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미군이 떠나버리면 혼혈아들은 ‘무국적자’가 되거나 친자 인정 등을 둘러싼 소송 등의 대상이 된다. 기지촌 주변 사람들은 “과거 한국 여성에서 외국인 여성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행복해 보여요?” ‘아메리칸 앨리’에서 만난 필리핀 여성 샤일라(22)씨는 “(우리) 10명 중 9명은 슬프고 그나마 1명은 미국에 가도 고립감과 냉대로 불행해지곤 한다”고 힘없이 말했다.
‘두레방’ 유영님 원장은 “기지촌 여성들이 클럽에서 탈출하려면 미군을 잡아야하고, 이런 열악한 조건을 잘아는 미군은 사랑을 빙자해 동거, 결혼해 돈을 주고 않고 성을 사고 매달 1천달러 안팎의 적지 않은 가족수당도 챙긴다”고 말했다. 클럽의 한달 수입이 대략 500∼600달러에 ‘2차 성매매’도 공공연한 이곳에서 외국 여성들에게 미군은 ‘탈출구’로 보인다. 그러나 미군이 훌쩍 떠나버리면 아이와 힘들게 살아야 한다.
미군과 결혼한 에이프럴(21)씨는 “미국으로 전출된 남편이 아기와 나를 데려간다고 했다”면서도 “솔직히 불안하다”고 말했다. 동두천/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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