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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중정, ‘82년 송씨일가 간첩단’ 조작…법원도 유죄판결 협조

등록 2007-10-24 19:43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가 24일 대표적 조작 의혹 사건인 동베를린(동백림) 사건, 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왼쪽부터) 등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가 24일 대표적 조작 의혹 사건인 동베를린(동백림) 사건, 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왼쪽부터) 등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중앙정보부 개입·통제 실상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가 24일 펴낸 모두 6권으로 된 최종 조사보고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은 중앙정보부와 그 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정치·사법·학원·노동 등 사회 전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사찰과 압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검찰과 법원 등 사법기관은 자의든 타의든 이에 적극 협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사법
‘문제 판사’·사법연수원생 임용에 관여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는 ‘문제 판사’나 사법연수생들에 대한 임용 배제 및 재임명 탈락, 이념교육, 미행, 신원관리 등을 일삼았다.

1982년 안기부는 “전 북괴 노동당 연락부 부부장 송창섭의 일가친척이 25년 동안 고정간첩으로 암약했다”는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을 발표한다. 자백 말고는 물증이 없는 이 사건은 안기부의 불법 장기구금, 고문 등으로 대법원에서 두 차례나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되는 등 무려 7차례나 재판이 거듭됐다. 이에 안기부는 유죄 판결을 유도하기 위해 사법기관에 압력을 행사했다. 안기부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자 검찰에 “기소 이후 공소유지는 전적으로 검찰 책임”이라며 몰아붙였고, 법원도 재재항소심이 끝나기도 전에 재재상고심 주심 판사를 확정하는 등 유죄 판결에 협력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가 펴낸 6권짜리 종합보고서. 연합뉴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거사위)가 펴낸 6권짜리 종합보고서. 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안기부는 재판부에 대한 판결 분석, 가계조사, 미행 등을 벌였다. 안기부는 1심 담당 판사 신원조사를 통해 부친이 남로당에 입당, 처형됐다는 점을 상부에 보고했다. 결국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은 검찰 공소장의 오기까지 그대로 옮겨 적었다. 안기부는 대법원 주심을 맡은 이일규 전 대법원장을 미행하는 한편 “공안 사건에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성향이 있다”는 존안 자료를 작성했다. 이 전 대법원장은 올해 과거사위와 면담에서 “판결 즈음에 안기부가 나를 미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안기부는 또 90년 들어 ㅇ씨 등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는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문제 성향 판사의 형사부 보직 배제 필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 뒤 시국사건 관련자들의 판검사 임용이 줄줄이 좌절됐다.

중정과 안기부는 담당 판사와 재판부에 압력을 행사하면서 이들에 대한 ‘비위 조사’를 압박카드로 활용했다. 중정은 75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선교자금 횡령사건을 맡은 ㄱ판사에 대해 “무죄선고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뒤 석달에 걸쳐 ㄱ판사의 판결 관련 금품수수 뒷조사를 벌였다. 안기부는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83년 검찰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뇌물사건을 전면 재조사해 검사장과 지청장의 비위 사실을 적발, 사임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런 행태는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안기부법이 대폭 개정(93년 12월)된 뒤에도 계속됐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과거사위는 90년대에 들어 각종 간첩사건에 대해 잇단 무죄가 선고되는 등 전향적 판결이 나왔지만 “1996년 한총련 사태와 관련해 5공 시절의 사법부를 떠오르게 할 만큼 정치권력에 협조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정치
67년 대선 때 ‘윤보선 저격수’ 배치

중앙정보부는 1967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재선이 불확실해지자, 윤보선 당시 후보가 당선되면 총으로 저격할 계획을 세웠다. 서울 안국동 윤보선씨 방이 내려다보이는 덕성여고 2층 창고에 저격수가 배치됐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다행인지 모르지만 두 차례에 걸친 대선에서 박정희가 승리해 최악의 상황은 도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정은 익히 알려진 대로 당시 반체제·반정부·반유신 활동을 한 정치인과 재야인사에 대해 일일·주간·월간 감시 및 사찰활동을 벌였다. 장준하·윤보선·김대중·김영삼·함석헌·문익환·백기완씨 등은 ‘제1 관찰대상자’였다. 과거사위가 입수한 73년 12월29일치 ‘위해분자 미행감시 보고’에는 “11시38분 종로 소재 다방에서 40대 미상 남과 대화’ 등 장준하·계훈제·백기완씨 등을 분 단위로 미행한 상황이 나타나 있다.

중정은 대통령 후계자로 거론되는 정치인을 포함해 당시 여당 의원들에 대한 사찰도 맡았다. 초대 중정부장이자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종필씨도 68년 국민복지회 사건으로 공화당 의장에서 물러난 뒤 중정의 주요 사찰대상 목록에 올랐다. 3선 개헌 표결을 앞둔 69년 9월에 가까워질수록 개헌 반대 의사를 밝힌 김씨와 김씨 계열 의원들의 ‘동향 첩보’가 빈번하게 이뤄졌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또 중정은 63년 5대 대선을 앞두고 야당 후보 6명에 대해 ‘사퇴 및 사퇴방지 계획’을 병행하는 등 인위적인 후보 조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허정·송요찬 후보가 사퇴한 뒤 변영태 후보마저 사퇴하려 하자 중정은 이를 막기 위해 각계각층 유권자를 사칭한 거짓 편지를 보내 사퇴를 막았다. 71년 7대 대선을 앞두고는 김영삼·김대중 후보보다 상대하기 쉬운 유진산씨를 지원하기도 했다.

안기부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정치인 사찰과 함께 선거시기 조정·변경, 86년 민한당 등 관제 야당 창당, 야당 창당 방해, 정치자금 통제 등으로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과거사위는 “국정원은 국내 정보 수집 업무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 방지를 위해 그 범위를 구체화하고 필요하다면 관련 법을 개정해 논란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권고했다.

언론
‘사상계 폐간’ 개입 확인

중앙정보부는 1973년 3월6일치 <조선일보>에 광고를 싣기로 돼 있던 국제극장 등 9개 업체 관계자에게 압력을 넣어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했다. 국제극장은 영화 <에덴의 동쪽> 광고를 빼기로 했다. 과거사위는 실제 세 업체의 광고가 실리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정부 비판적 보도 때문에 광고 탄압을 받았다는 조선일보 쪽 주장과는 달리 당시 다른 신문도 정부 비판 보도를 한 점을 볼 때 유신 선포 뒤 언론통제 수단으로 (광고 통제가) 강구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중정의 <사상계> 폐간 공작과 관련해 과거사위는 “중정이 사상계를 폐간하기 위해 김지하의 ‘오적’ 필화사건을 계획했다는 의혹은 명확히 밝힐 수 없지만, 박정희 정권이 사상계 폐간을 위해 중정 등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71년 터진 월간지 <다리>의 반공법 위반 사건에 대해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지지도 상승 저지 방안으로 김 후보 홍보기구 역할을 해온 <다리> 관계자들을 구속했다는 주장은 충분한 개연성을 갖는다”며 “그러나 이 사건은 검찰과 서울시경(특별공작반)이 주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안기부의 84년 2월 ‘신학기 학원대책 추진상황 보고’에는 국내 2대 일간지 사장을 만나 협조를 논의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해당 언론사들의 반응은 “협조 약속. 근일 중 기획물 연재 기사 작성 중. 대학 이사장이라는 입장 초월, 지원의사” 등으로 나타났고, 실제 한 신문사는 같은 해 3월 관련 기획기사를 여섯 차례에 걸쳐 내보냈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학원
운동권 와해 ‘건전화 공작’

1980년대 안기부는 운동권 학생들에 대항할 ‘건전 학생세력’을 구축하는 이른바 ‘건전화 공작’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86년 10월 북한 문건을 인용한 운동권 대자보를 비판하는 ‘건전 유인물’이 일부 대학에 동아리와 총학생회 명의로 배포됐다. 안기부가 87년 당시 관리·육성하던 각 대학의 ‘건전 서클’은 20개 대학에 92개 서클, 7942명에 이르렀다.

안기부는 또 대학교수들을 성향에 따라 ‘극렬·비판·중도’ 등으로 등급을 나눠 관리·관찰했다. 중국·소련 등 교수들의 공산권 국외연수도 추진하는 한편, 제적생과 해직 교수 등의 동향을 파악해 이들의 복교 불허 등을 계획했다.

중정과 안기부는 학원 소요가 발생할 때마다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교련 교육, 교수 재임용제, 졸업정원제 등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강구하는 데 주도적 구실을 했으며, 대학별 담당관을 지정해 광범위한 정보망을 가동시켰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노동
동일방직 ‘블랙리스트’ 작성

86년 8월 인천 경동산업 파업농성 중에 발견된 ‘블랙리스트’에는 78년 동일방직 해고자 등 1662명, 노조활동가 925명, 인천지역 25개 사업체 지식인 취업자 164명, 위장취업자 299명 등의 이름과 주소, 최종 학력, 활동 상황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노동운동 탄압의 상징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도 안기부와 중정이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정보기관은 해고 노동자를 현장에서 격리하기 위해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블랙리스트 관리지침을 내리는 한편, 리스트 대상을 수시로 조정했다. 안기부 등은 개별 기업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노동부와 정보기관들의 협조를 통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기업체 사업장, 노동부 근로감독실, 정보기관에 비치해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기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민주노조 조직 과정에 개입한 사실도 문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안기부는 89년 11월 작성한 ‘전교협 조직 확산 실태와 활동전망’을 통해 “조직 와해가 사실상 불가하다”고 진단하고, 노조 결성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앞서 중정은 61년 대한노총을 해산하고 한국노총을 조직했으며, 자신들이 관리하는 사람들로 한국노총 간부들을 육성해 노총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사위는 “정보기관은 교원노조 등 노조 문제를 공안대책 차원에서 다루었다”며 “노동 문제는 정보기관과 노동부, 보안사, 검찰, 청와대 등 범정부 차원에서 대책이 강구됐다”고 밝혔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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