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8월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문병을 온 고 박순천씨의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71년 대선 출마뒤 감시 받아
이후락 “데려오기만 하라” 납치지시
전두환 정권 때도 은폐 드러나
이후락 “데려오기만 하라” 납치지시
전두환 정권 때도 은폐 드러나
국정원 과거사위는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한 일부 새로운 사실들도 확인해 공개했다.
우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1년 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뒤부터 중앙정보부의 집중적인 감시 대상이 된 사실이 밝혀졌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1971년 대선 때부터 1972년 10월까지의 국정원 마이크로필름을 분석한 결과, 김 전 대통령과 관련된 동향보고서 등 1100여 가지 문서가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대중 납치사건이 이후락 부장의 강력한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철희 전 차장보는 국정원 과거사위의 면담 조사에서 “궁정동 안가에서 이후락 전 부장이 납치 지시를 하길래 ‘과거 동백림 사건으로 인해 해외 정보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며 반대했지만, 이 전 부장은 ‘데려오기만 하면 그 후 책임은 내가 진다. 나는 뭐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일아’라며 재차 강력히 지시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논란이 돼 온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수장 위협과 비행기 출현 사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된 게 없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배에 감금된 채 재갈이 물리고 손발을 결박당한 피해자로서는 수장을 위한 준비행위로 인식하고 위기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직접적으로 갑판 위에서 바다로 던지려는 시도는 없었다”며 “미국이나 일본이 김 전 대통령을 구출하기 위해 비행기를 보냈다는 자료도 없다”고 설명했다. 과거사위는 또 납치가 살해를 위한 것이었는지, 단순 납치였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납치 직전까지도 중정이 자진 귀국을 종용한 사실도 드러났다. 과거사위는 “중정 한 국장이 김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씨를 만나 귀국을 종용하고 조사 결과를 보고한 문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가 찾아낸 또다른 문서에는 납치 하루 전인 8월7일 중정이 김 전 대통령을 가르키던 음어를 ‘KT’에서 ‘임창수’로 바꾸도록 지시한 사실도 나와 있다.
사건 발생 10여년 뒤인 1980년대 안기부가 이 사건을 은폐하고자 노력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후락 전 부장은 1987년 6월 김대중 납치사건에 개입한 사실을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털어놨다가 이후 이를 번복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이는 안기부가 압력을 행사한 결과라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물론 전두환 정권도 이 사건의 진실 규명을 막으려 노력했다는 뜻이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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