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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5·18 비극’ 자식에게…고통 대물림

등록 2007-10-29 09:48수정 2007-10-29 10:07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2004년 자살 유공자 ‘심리학적 부검’ 결과
국가폭력으로 유발 17가지 자살요인 밝혀져
가정 파괴로 딸은 유흥업소 전전…위험노출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군의 화물차 운전사였던 이남종(가명)씨. 이후 술과 절도, 이혼, 암 투병으로 얼룩진 그의 43살 삶은 2004년 겨울 자살로 마감됐다. 이씨의 3주기를 앞두고 5·18재단의 의뢰로 임상심리학자 조용범 박사가 ‘심리학적 부검’을 실시했다. 자살자 주변인물 인터뷰를 통해 자살 원인을 밝히는 부검 결과, 이씨의 자살 요인은 무려 17가지에 이르렀고, 유흥업소 종사자인 그의 딸 역시 현재 자살 위험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 아버지=이씨는 80년 5월27일 체포돼 31사단으로 끌려간 지 여섯 달 만에 앞니가 네 개나 부러진 채 절룩거리며 돌아왔다. 이씨의 형(49)은 “동생은 그 뒤로 산송장이 됐다”고 탄식했다. 전형적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였지만, 병원 다닐 처지가 못 됐다.

제대로 치료도 못 받은 채 이씨는 일주일에 세 차례 이상, 여덟병까지 술을 마셔야 잠이 들었다. 결국 이씨는 알코올 중독을 헤어나지 못해 직장도 구할 수 없었고, 가난은 계속됐다. 이씨는 82년 자신이 일하던 식품점에서 쌀을 훔쳐 8개월 동안 실형을 살았고, 출감 뒤 피를 팔아 쌀을 사기도 했다. 한 살 난 딸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부인은 가출했고, 딸은 외할머니에게 맡겨지면서 가정은 해체됐다.

90년대 중반,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로 보상금 6천만원을 받으면서 이씨는 두번째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이씨는 여전히 술을 끊지 못했다. 이씨는 자신의 간암 수술 이틀 전이자, 술 취한 그에게 늘 매를 맞던 아내가 혈액투석을 시작한 2004년 11월 어느날, “내가 없어져야 모두가 편안해질 것 같다. 우리 정현이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청산가리를 삼켰다.

이씨의 삶에서 자살 원인은 신체적 고문 및 학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알코올 중독, 만성적인 간질환, 경제적 빈곤, 사회로부터의 외면, 연약한 심성과 정의감 등 17가지였다. 조 박사는 “이 중 한가지만으로도 자살에 이를 수 있다”며 “그 시작에는 국가 폭력이 있었다”고 밝혔다.

■딸=이씨의 비극은 딸 정현(가명)씨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외가에서 자란 정현씨는 방황 끝에 고등학교 때 가출을 했다. 정현씨의 첫 직장은 광주의 한 단란주점이었다. 서울로, 다시 광주로, 부산으로, 정현씨는 아직도 유흥업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현씨는 “가출 뒤 월 순수입이 80만원을 넘은 적이 없는 만큼 내 몸을 추스르기도 어려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말했다. 정현씨는 아버지가 5·18 당시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았다.

심리학적 부검 보고서는 정현씨도 약물 중독과 자살 시도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조 박사는 “5·18 피해자 1세대에 가해진 국가 폭력은 가정 파괴로 이어져 2세대까지 고통이 옮아 있다”며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에 대한 치료와 함께 지속적인 직업 교육과 무상 의료지원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검 보고서는 29일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가족의 자살피해 현황에 대한 토론회’에서 발표된다. 5·18 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자 중 이미 숨진 376명의 자살률은 10.4%로, 우리나라 사망자 중 평균 자살률 4.4%의 두 배를 넘는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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