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넬리 모스크바 협의회 회장
엠넬리 교장, 모스크바 민족학교 세워 ‘명문고’로 발돋움
“1991년 러시아 교육자들과 함께 처음 서울에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즐겁게 서울 구경을 했지만, 저는 모국 땅에서 우리 말과 글을 모르는 게 부끄럽고 슬퍼서 울기만 했어요.”
민주평통 상임위원회 참석차 온 엄넬리(67) 평통 모스크바 협의회 회장은 지난 1일 논리정연한 우리 말을 구사했다. 하지만 옛 소련 시절 사범대를 나온 그는 52살까진 우리 말과 글을 전혀 몰랐다. 옛 소련 시절엔 소수민족 교육이 불허됐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1086 민족학교 교장이기도 한 그는 동포 4세다. 77년 레닌상을 받을 정도로 엘리트였던 엄 교장은 91년 고국 땅에 와서 피눈물을 쏟고 나서 “모스크바에 돌아가면 꼭 민족학교를 세우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모스크바에 돌아가 하루 우리 말 단어 15개를 외우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았고, 틈만 나면 한국 노래를 부르거나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독하게 우리 말과 글을 익혔다. 92년 1086 민족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초등, 중등, 고등 과정 등 11년을 교육하는, 러시아 당국이 인정한 공식 교육기관이다. 러시아에서는 학교 이름을 숫자로 구분한다. 민족학교는 러시아 교육 과정을 기본으로 하고, 한국어, 한국 역사, 문화, 풍습, 예절을 가르친다.
민족학교 700여명 재학생 가운데 60%가 동포이고, 나머지는 러시아인, 한국인, 미국인 등이다. “옛 소련 시절 학교에서 소수 민족 차별이 있어서 동포 학생들이 주눅이 들곤 했습니다. 민족학교에 다니는 동포 학생들은 자신있고 활발합니다. 이전에는 학생들이 소수민족인 것을 부끄러워했으나 지금은 자랑스러워 합니다.”
이 학교 입학 경쟁률은 13 대 1이 넘는다. 한국 대기업들이 러시아에 활발하게 진출하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러시아 학생들이 많고, 대학진학률도 모스크바 학교 가운데 으뜸인데다 인성교육을 강조해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고려인들은 옛 소련 시절 경험을 살려 남북 통일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 엄 교장은 우리 말과 글 교육에 필요한 동화책, 디비디(DVD) 등의 지원을 모국에 희망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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