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법원 “단순한 신고 누락…시효 지나” 판결
정아무개(54) 변호사는 1992년 종중 등 43명에게서 국가에 수용당한 토지를 되찾아 달라는 소송을 맡으면서 성공보수 대가로 소송 수익금의 40%를 받기로 약정했다. 1995년 10월 국가와 종중의 화해가 성립돼 종중 등은 국가로부터 167억여원을 받았고, 정 변호사는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챙겼다.
정씨는 이 수입을 신고하지 않다가 10년 뒤인 2005년 국세청에 발각됐다. 국세청은 정씨가 총 보상금 198억여원의 40%인 79억여원을 수임료로 챙기고도 성공보수를 1억원으로 정한 허위 약정서를 작성하는 방법으로 1억원만 수임료로 신고한 것으로 판단해 나머지 금액에 대한 세금 45억여원을 부과했다.
정씨는 서초세무서를 상대로 “세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종합소득세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냈고,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전성수)는 정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고 4일 밝혔다.
국세기본법은 국세부과의 제척기간(존속기간)을 5년으로 하면서도, 납세자가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국세를 포탈하거나 환급, 공제받는 경우’에는 제척기간을 10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단순한 신고 누락이나 허위 신고는 국세기본법이 규정하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제척기간을 넘긴 것으로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의 한 판사는 “과세의 입증 책임이 세무서에 있는 만큼 대법원 판례가 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세금 회피 수단이 될 여지가 있다”며 “입법·행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한 판사는 “대법원 판례는 탈세를 목적으로 계약서를 위조하는 등 적극적인 부정행위를 엄히 다스리려는 의미”라며 “판례가 탈세를 방조하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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