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무런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른 곳에 알아보세요.”
16년 만에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의 필적 감정 결과를 뒤집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양후열 문서영상과장은 감정 결과 번복 경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물었다. 현재 국과수 필적 감정 분야 책임자인 양 과장은 1991년 김형영 당시 국과수 문서분석실장과 함께 김기설씨의 유서를 공동 감정한 뒤 “강기훈씨의 필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당사자다. 그는 당시 재판에 나와서도 똑같이 증언했고, 이는 김형영 전 실장의 수뢰 사건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받아들인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국과수의 감정 결과 번복과 관련해, 진실화해위원회는 당시 감정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로부터 감정 과정과 결과가 잘못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과거에 감정한 사건을 그대로 재감정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국과수가 재감정에 나서 다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 고위 관계자는 “필적 감정 기술이 진보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국과수가 새로운 감정 결과를 내놓기는 했지만, 조직적인 조작이나 외압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사건 당시 검사와 검찰 직원이 직접 국과수를 방문하고 감정 문건을 두고 전화통화한 사실로 미뤄 필적 감정 과정이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