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국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충무로 위원회 회의실에서 제30차 전원위원회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3자 매각뒤 국가귀속 결정 7천여평 달해
특별법 시행 뒤 매매 무효…구매자들 피해
특별법 시행 뒤 매매 무효…구매자들 피해
지난 2005년 12월29일 경기 포천 땅 2871㎡(870평)를 송아무개(62)씨로부터 1억여원에 사들인 김아무개(47)씨는 최근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당시 산 땅이 친일반민족행위자 소유로, 국가 환수대상이기 때문에 땅의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 땅은 바로 정미칠적 가운데 한명인 친일파 송병준이 후손에게 물려준 땅이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환수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친일파 후손들이 부동산을 국가에 귀속당하지 않기 위해 미리 제3자에게 팔아넘기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005년 12월29일 시행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특별법 시행 이전에 매매된 토지는 제3자의 소유권을 인정해주지만, 법 시행된 뒤 이뤄진 매매는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친일파 후손들은 법 시행 뒤에도 해당 토지에 대해 조사개시 결정이 나오기 전에는 매매금지 등 조처가 이뤄질 수 없는 점을 이용해 땅을 처분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거래가 무효화되기 때문에 땅을 산 제3자만 피해를 보게 된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관계자는 “김씨는 송씨가 ‘급히 일본으로 출국해야 한다’며 여권까지 보여주면서 재촉하기에 땅을 샀다고 하지만, 특별법 시행 당일 송씨로부터 땅을 산 김씨는 특별법에 따라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씨에게 송씨를 상대로 매매대금 반환과 함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는 수밖에 없다고 안내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친일파 후손이 특별법 시행 뒤 제3자에게 팔아넘긴 뒤 국가귀속 결정이 이뤄진 땅은 현재 15필지 24664㎡(7474평)에 이른다. 송씨 외에도 △중추원 고문 고희경 5필지 19926㎡ △중추원 부의장 민병석 3필지 1848㎡ △중추원 고문 한창수 1필지 19㎡ 등이 제3자에게 매각됐다.
또 제3자가 매입한 땅 가운데는 아직 국가귀속 결정이 나지는 않았지만 조사 대상으로 선정돼 국가귀속 결정 가능성이 높은 경우도 있다. ㅅ사가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골프장 건설을 추진 중인 경기 포천 땅 188만5천㎡(56만여평)이 이에 해당한다. ㅅ사는 지난 15일 친일재산조사위 위원 9명에게 “위원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등 가능한 법적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친일재산조사위 관계자는 “선의의 제3자가 피해를 입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지만, 친일파 후손이 서로 짜고 땅을 매매한 뒤 ‘선의로 땅을 매입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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