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도서관을 지키기 위해 지난 17일 전남 광양시를 출발한 서재환(왼쪽 네번째)씨가 20일 전북 남원시에 도착해 도서교환전 행사를 펼쳤다. 카페 ‘농부네 텃밭도서관’ 제공
26년 가꾼 텃밭도서관 지키려 순례 모금한 서재환·장귀순씨 부부
전남 광양시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는 서재환(52)씨는 부인 장귀순(45)씨와 함께 농삿일을 포기하고, 경운기와 1t 트럭에 1500권 가량의 책을 싣고 전국을 돌았다. 이들 부부가 거리로 나선 것은 농촌 아이들이 이용하는 작은 ‘텃밭도서관’을 지키기 위해서다.
광양시는 지난해 9월 서씨가 사는 광양시 진상면 청암리 텃밭도서관 인근에 폐기물소각로 공장 설립 승인을 해줬다. 주민들의 반발로 지난 7월 공사중지 명령 처분이 났지만, 최근 전남도 행정심판위가 공사중지 명령을 취소해 업체 쪽 손을 들어줬다.
서씨는 “마을에 공장이 들어서면 주민과의 불화는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며 “차라리 공장 터 구입 자금을 모아 업체 쪽에 제공하면, 해당 회사가 우리에게 땅을 팔고 다른 공단에다 공장을 옮겨 짓게 될 수 있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말했다. 그가 경운기를 끌며 전국 순회를 나선 이유다. 5억원을 모아 업체에 터 마련 자금으로 주겠다는 것이다.
서씨 부부는 지난 17일 광양시를 출발했다. 순천·구례·남원·임실·전주·대전·천안 등 전국 13곳 도시를 거쳐 1일 서울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에서 순회를 마무리 할 예정이다. 가는 곳 마다 헌책 2권과 서씨가 싣고 간 새 책 1권을 서로 바꿔주는 ‘무료 도서교환전’을 열었다.
텃밭도서관은 책을 좋아하는 서씨가 1981년 마을문고를 운영하는 데서 비롯됐다. 벽지 어린이를 위해 요일별로 경운기에 책을 싣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인기가 높아지자 5년 전부터는 집주변 텃밭에 조립식 건물을 지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6600㎡(2천평)가 넘어 놀이터도 갖추고 있고, 숙박 체험도 가능해 도시 아이들도 이용한다.
서씨는 “하도 답답해서 대책없이 거리로 뛰쳐 나왔다”고 했다. “작은 시골 도서관이 공장 보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난다”며 “개인이 아니라 관에서 운영했다면 상황이 여기까지 왔겠느냐”고 말했다.
서씨는 “투쟁 위주로 소리만 지르는 게 능사가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평화적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017)606-5025.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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