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간부 이름·발언내용·시간 등 적힌 사쪽 ‘상황일지’ 발견
한국타이어의 자회사인 에이에스에이(ASA)가 쟁의 중인 노동조합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주요 노조 간부들의 발언 내용을 불법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자동차 휠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1997년 한국타이어에서 별도 법인으로 분리됐으며, 한국타이어 및 계열사가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다.
금속노조 에이에스에이지회가 23일 회사 쪽으로부터 입수해 공개한 ‘12월21일 상황일지’라는 제목의 문건(사진)을 보면, 지난 21일 오전 충남 금산군에 있는 사내 강당에서 실시된 노조 교육에서 있었던 주요 간부들의 이름과 발언 내용, 발언 시간 등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두 쪽 분량의 문건에는 길준영 노조위원장 등이 조합원들을 상대로 교섭 경과와 투쟁 일정 등에 대해 말한 내용이 담겨 있으며, 조별 투쟁 평가에 대한 언급도 자세히 포함돼 있다. 이 문건은 공장장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고 노조는 전했다.
이에 노조는 “발언자가 마이크를 끄고 말한 내용까지 그대로 옮겨져 있어 회사가 노조를 감시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도청을 한 것”이라며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도청을 했을 가능성이 커, 공장장과 회사 책임자를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영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고 불법 도청한 것이 확인된다면 통신비밀보호법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며 “또 도청의 목적이 노조에 대한 지배 개입으로 볼 수 있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노두영 공장장은 “강당 바깥에서도 들리는 내용을 옮긴 것일 뿐 도청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 회사 노사는 지난 10월 초 노조가 결성된 이래, 단체협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채 석 달 가까이 극심한 노사 갈등을 겪어 왔다. 노조는 지난달 19일 ‘노조 활동 보장과 성실교섭’ 등을 촉구하며 파업에 들어갔고, 회사 쪽은 다음날인 20일 직장폐쇄로 맞섰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의 성세경 조직부장은 “기본적인 환풍장치나 유해물질에 대한 보호 장치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는 등 모기업인 한국타이어와 마찬가지로 열악한 작업환경이 노조 결성의 직접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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