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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할머니 인제 죽는단 말 안할게…여러분들 도와주니께 힘납디다”

등록 2007-12-31 19:15수정 2008-01-01 14:42

기름 방제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이영월(70)씨가 28일 저녁 충남 태안군 소원면 집에서 손자, 손녀와 함께 쉬고 있다. 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기름 방제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이영월(70)씨가 28일 저녁 충남 태안군 소원면 집에서 손자, 손녀와 함께 쉬고 있다. 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조손가족’ 진수네의 희망찾기
“할머니!”

진수(12·충남 태안 소원초교 의항분교 6)와 수영(8·의항분교 2)는 29일 저녁, 이영월(70)씨가 방제 작업을 마치고 학교 운동장 너머길로 돌아오자 폴짝폴짝 뛰어가 품에 안겼다. (12월12일치 8면 ‘할머니 죽는다는 말만 하지마’ 참조)

12월12일치 8면 ‘할머니 죽는다는 말만 하지마’
12월12일치 8면 ‘할머니 죽는다는 말만 하지마’

“기름때 묻으니께 저짝만치 오빠랑 가거라”며 달래자 수영이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방긋 웃었다. 할머니에게선 요즘 바다 내음 대신 기름 냄새가 난다.

기름사고가 난 뒤 한가했던 학교 운동장은 자원봉사자들이 타고 온 버스로 북적였다. 수영이는 “바다청소하러 온 사람들이 여름에 놀러 온 사람들보다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가서 하고 싶은데, 몸집은 어른만 한데 어려서 안 된데요.”

진수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냈다. 3주 만에 만난 진수 남매는 어느새 마음이 한 뼘 더 자라 있었다.

이씨는 아침, 저녁으로만 살짝 트는 보일러를 켰다. 잠시후 진수네 집 방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락으로 떨어져 봤으니께 인제는 모든게 희망이쥬. 사고났을 때는 10원 한 장도 벌 길이 없어 죽겠구나 싶었는디 여러분들이 도와주니께 힘이 납디다.”

보도가 나간 뒤 진수네 집에는 어른들이 찾아와 ‘힘내시라’며 보일러에 기름을 채워주고 옷과 생필품을 전했다. 담임선생님 통장으로도 10여명이 120만원을 송금했고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힘이 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

진수가 “뭐든 열심히 해 보답하겠다”고 말하자 이씨 얼굴에 흐뭇함이 배어났다. “암만 그래야지. 쟈가 내 손주지만 듬직허고 의젓혀유.”

진수의 전자우편 주소는 친엄마 이름을 영문으로 바꾼 것이다. 부르지 못한 이름을 자신만이 아는 암호로 만들만큼 엄마를 그리워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진수는 중학교에 가면 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했다. 잠자기 전에는 책도 읽기로 할머니와 약속했다.

수영이도 장래 희망을 이야기했다. 간호사가 돼 아픈 할머니께 주사를 놓아드리고 싶어 7살 때부터 간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단다.

이씨는 새해 소망을 묻자, “손주들이 원하는 걸 할 때까지 뒷바라지 해주는 것”이라며 “맨손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보상받을 지 모르지만 서류를 챙겨서 대책위원회 사무실에 나가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남매의 소원은 할머니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같이 사는 것이다.

수영이가 “할머니, 나 6학년 때까지는 꼭 살아있어야 해”라고 말하자 이씨가 웃었다. “야가 6학년이 뭐여, 더 오래 살아서 시집가는 것도 볼건디.”

태안/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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