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땅끝공부방 아이들이 넉 달 동안 버스표, 간식비를 아껴 모은 돼지저금통의 돈.
코흘리개부터 고교생까지 쫓겨날 위기 벗어난 아이들
6개월간 버스비·간식비 아껴 저금통 3개 채워 ‘기부’ 동참
6개월간 버스비·간식비 아껴 저금통 3개 채워 ‘기부’ 동참
문근영 언니처럼 ….
땅끝공부방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가족이 있다. 전남 해남군 송지면 42개 마을 아이들은 지난해 6월 근영이 언니를 처음 만났다. 공놀이도 하고, 함께 피자도 먹었다. 배우 문근영씨가 세든 건물에서 쫓겨나 문 닫을 위기에 놓인 공부방에 3억원을 기부하면서 맺은 인연 덕분이다.
공부방 아이들은 초등·유아반 16명, 중·고등반 24명으로 40명 안팎이다. 아이들은 대개 조부모나 홀부모 아래서 어렵게 자란다. 공부방은 이들에게 밥도 먹고 숙제도 하는 소중한 보금자리다.
문씨가 시작한 선행은 ‘나눔 바이러스’가 됐다. 땅끝공부방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나눔이 이어졌다. 인근 문방구의 한 부부는 여섯달 동안 일주일에 한 끼니씩을 거른 뒤 식비를 아낀 돈을 모아 “아이들 통닭이라도 사주라”며 맡겨오기도 했다.
아이들의 마음에도 나눔 바이러스가 스며들었다. 텔레비전 속에서 땅끝마을로 놀러온 근영이 언니는 천사 같았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근영이 언니를 닮고 싶어 했다. 아이들은 넉달 전 저금을 시작했다. 고사리손을 모아서 스스로 나눔을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중고생들은 학교에서 공부방까지 4㎞를 걸어다녔다. 700원짜리 버스표를 신이 나서 내놓으면 공부방에서는 1천원으로 바꾸어 돼지 저금통에 넣어줬다. 초등학생들은 간식비를 아껴 동전 몇 개씩을 저금통에 넣었다. 이렇게 모인 돈이 돼지 저금통 세 개에 17만9550원이다. 아이들은 가난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연탄을 사주고 싶어 했다. 300원짜리 연탄 한 장이면 다섯 시간이 따뜻해진다. 근영이 언니 덕분에 훨씬 따뜻해진 공부방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홀로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따뜻한 겨울을 났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땅끝공부방 김혜원 원장은 지난달 31일 이 저금통 세 개를 들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광주지회를 찾았다. 아이들의 작은 나눔을 연말 온기에 보태려는 뜻에서다. 광주는 문근영씨의 고향으로 광주지회는 문씨가 각종 기부 활동을 하는 창구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예전에 가난한 이들은 텅 빈 들판에서 이삭줍기를 해서 겨울을 났다”며 “가난한 아이들이지만 이삭줍기 하는 마음으로 추위를 녹일 정성을 모았다”고 말했다.
한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올 겨울 기부금 목표치 1786억원의 83.2%인 1458억원을 모아 ‘사랑의 행복 온도’ 83.2도를 기록했다. 모금회는 100도를 채울 날을 기다린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공부방에 3억원을 기부한 문근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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