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장소를 선점해 다른 집회가 열리지 못하게 하려는 대기업의 직원이나 업체가 고용한 이들이 24일 0시를 막 넘긴 시각, 서울 남대문경찰서 1층 로비에서 낚시용 의자를 놓고 앉아 밤을 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계열사들 돌아가며 선점…태안 주민들도 발돌려
경찰 “몇년전부터 매일 신고, 실제 집회 않는 듯”
우선접수 위해 ‘밤새줄서기’…“집시법악용” 비판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주민 3700여명은 지난 23일 삼성의 무한책임을 촉구하는 집회를 삼성 본관 앞이 아니라 500여m 떨어진 서울역 앞 광장에서 열어야 했다. 삼성 본관 앞에는 이미 다른 집회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달 전 삼성생명은 50명이 참가하는 ‘환경보호 결의대회’를 이날 하루 종일 열겠다고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해놓았다. 삼성생명 쪽은 이날 태안 주민들의 집회가 있을 것을 알고 아침에만 결의대회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하루 종일 집회를 열기로 신고했기 때문에 이날 같은 장소에서 다른 집회는 허용되지 않는다. 삼성생명 홍보팀은 “계열사들이 돌아가며 본관 주변에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환경보호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며 “출근할 때나 오후에도 캠페인을 할 수 있어 일출부터 일몰까지 집회신고를 해둔다”고 말했다. 반면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삼성 쪽이 집회 신고만 해놓고 실제로는 캠페인이나 집회를 열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 본관 주변의 한 노점상도 “본관 앞에서 직원들이 환경캠페인을 하는 것을 본 적은 있는데, 이번주에 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집회를 열려면, 집회 30∼2일 전까지 집회 신고서를 관할 경찰서에 접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대 30일 전에 특정 장소를 ‘선점’해둘 수 있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몇년 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삼성 계열사 직원들이 삼성 본관 앞 집회신고를 하고 있다”며 “24일에는 삼성에버랜드 직원이 나와 다음달 23일 환경보호 결의대회를 열겠다고 삼성 본관 앞 집회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경찰서에서는 매일 치열한 시간 싸움이 벌어진다. 다른 단체가 먼저 집회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 23일 밤에도 남대문경찰서에는 신분을 밝히기를 꺼린 7명이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24일 0시로 바뀌는 순간, 경찰서 1층 현관의 시계를 휴대전화 카메라나 디지털 사진기로 찍었다. 매일 아침 9시께 집회신고서를 접수할 때, 경찰서에 먼저 도착한 것을 입증하는 쪽에 우선권을 주기 때문이다. 이날 집회신고가 된 곳은 삼성 외에도 롯데·한화·신세계·에스케이건설 등 주로 대기업 사옥 앞이었다.
여연심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삼성의 집회신고 선점은 집시법을 악용한 사례”라며 “경찰이 허위 집회신고임을 알면서도 같은 장소에서 다른 단체의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집회·시위 장소는 집회·시위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회·시위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만 집회·시위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된다”며 “장소 선택의 자유는 집회·시위 자유의 한 실질을 형성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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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몇년전부터 매일 신고, 실제 집회 않는 듯”
우선접수 위해 ‘밤새줄서기’…“집시법악용” 비판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주민 3700여명은 지난 23일 삼성의 무한책임을 촉구하는 집회를 삼성 본관 앞이 아니라 500여m 떨어진 서울역 앞 광장에서 열어야 했다. 삼성 본관 앞에는 이미 다른 집회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달 전 삼성생명은 50명이 참가하는 ‘환경보호 결의대회’를 이날 하루 종일 열겠다고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해놓았다. 삼성생명 쪽은 이날 태안 주민들의 집회가 있을 것을 알고 아침에만 결의대회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하루 종일 집회를 열기로 신고했기 때문에 이날 같은 장소에서 다른 집회는 허용되지 않는다. 삼성생명 홍보팀은 “계열사들이 돌아가며 본관 주변에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환경보호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며 “출근할 때나 오후에도 캠페인을 할 수 있어 일출부터 일몰까지 집회신고를 해둔다”고 말했다. 반면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삼성 쪽이 집회 신고만 해놓고 실제로는 캠페인이나 집회를 열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 본관 주변의 한 노점상도 “본관 앞에서 직원들이 환경캠페인을 하는 것을 본 적은 있는데, 이번주에 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먼저 집회 신고를 하기 위해 서울 남대문경찰서 1층 로비에서 밤샘 줄서기를 하던 이들이 24일 아침 9시께 경찰서 직원에게 집회 신고서를 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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