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생·의경 함께 벽화 그려
미대생·의경 함께 벽화 그려 수용자 “마음 차분해져 도움”
푸릇한 새싹이 솟아오른 풀밭, 일렁이는 파도 위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 ….
서울 혜화경찰서 유치장 창살 안에 펼쳐진 풍경이다.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을 유치장에 옮겨 놓은 이들은 성균관대 미대 벽화동아리 학생들과 이 경찰서에 근무하는 방범순찰대 의경들. 이들은 경찰서 안 유치인 보호실 여섯 곳에 그림을 그려, 삭막하고 착 가라앉은 유치장 분위기를 산뜻하게 바꿨다.
지난달 23일 처음으로 유치장 벽에 연꽃을 그려 넣기 시작해 한달 넘게 대작업을 했고 다음달 벽화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동안 화가들이 일부 경찰서 유치장에 벽화를 그린 적은 있지만, 대학생들과 의경들이 힘을 합쳐 벽화 그리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아리 회원인 권기예(19·미술학부 1)씨는 “거창한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저 휑한 벽을 보면 무언가 그리고 싶은 마음에 유치장 벽화 그리기를 시작했다”며 “유치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벽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입대 전 홍익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염정훈 수경은 “전공을 살린 일을 할 수 있어 더 기쁘다”고 말했다.
‘모네의 풍경화’를 주제로 그려진 벽화들은 풀밭 등 전원 풍경을 연두색과 보라색 등 차분한 색조로 표현했다. 동아리 회원 김아정(19·미술학부 1)씨는 “유치장에 처음 들어가 봤더니 온통 회색 벽에 너무 어둡고 침침해서 과연 벽화를 그린다고 달라질까 걱정을 했다”며 “그러나 막상 그림을 그리고 나니까 밝고 편안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유치장에 수용된 이들의 반응도 좋다. 김아무개씨는 “텅빈 벽만 바라보다 환한 빛의 그림들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지난날을 더 반성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미호 혜화경찰서 경무과장은 “피의자 신분으로 유치장에 들어오면 누구든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지만, 산뜻한 분위기의 벽화를 통해 이들이 심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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