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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작 피해 큰 곳엔 생계자금 적게 배분”

등록 2008-01-31 21:31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 피해주민들이 구성한 ‘태안 유류피해 투쟁위원회’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이 차량에 비치고 있다. 이종근 기자 <A href="mailto:root2@hani.co.kr">root2@hani.co.kr</A>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 피해주민들이 구성한 ‘태안 유류피해 투쟁위원회’ 회원들이 31일 오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이 차량에 비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태안 이웃관계도 ‘오염’ 위험
‘주먹구구’ 행정에 주민 ‘주먹다툼’ 날판
“피해 적은 안면·고남에 84억
피해 큰 원북·소원 몫은 적어”
수산-비수산 배분 놓고도 고성

30일 저녁,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차가운 바닷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해는 저물어 주위는 컴컴했는데 늘어선 배에선 빛 한 줄기 새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방파제 석축에 기름이 앉았던 자국은 또렷이 드러났다. 작은 항구는 죽은 듯 슬펐는데 왁자지껄하는 사람 소리가 들렸다. 방제활동 본부로 사용되던 천막에서 모항리 주민 수십여명이 갑론을박하고 있었다.

태안군이 27일 생계자금 지원 심의위원회에서 확정해 각 읍·면에 내려 보낸 지원금과 배분 기준에 대한 불만이 터진 것이다. 29일에는 주민들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면사무소 직원이 의식을 잃어 입원하기도 했다. 31일에는 원북면사무소에서 주민 전아무개(54·신두2리)씨가 “등급 배점 기준을 고쳐 모든 피해 주민에게 똑같이 지급하라”며 흉기로 자신의 손가락 한 마디를 자르는 일도 벌어졌다.

생계지원금이 주민들을 위무하기는커녕 불만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피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터에 설 연휴 전에 지급해야 한다는 요구가 합쳐 나온 파행이라 하겠지만 주먹구구식 행정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태안군이 읍·면에 배정한 지원금은 모두 311억5천만원. 군은 배분 기준에 대해 세대 수, 오염해안선 길이, 어장면허면적, 어업종사자 수, 어선 수, 음식·숙박 업소 수, 기초생활수급자 수를 개별 지표로 삼은 뒤 읍·면별 피해 정도를 반영해 등급별 가중치를 두었다고 했다.

그러나 소원면에서 수산업을 하는 홍재표(39)씨와 국현도(42)씨는 배분이 잘못됐다고 잘라 말했다. 직접 손해를 입지 않은 태안읍에 43억7천만원, 피해가 크지 않은 안면·고남·남면에 총 84억7천만원이 배분돼 정작 피해가 큰 원북면과 소원면에 적게 배분됐다는 것이다. 태안읍에서는 총 세대의 57%인 5852세대가 지원 대상에 포함됐는데 애당초 피해조사에 응했던 세대는 2천세대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소란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방제작업을 할 때도 골프를 치고 사우나를 하러 다닌 놈들도 생계자금을 받는다는 거야?”, “군수가 다음 선거를 위해 자기 마음대로 한 거야.”

면 단위로 배분된 지원금을 어떻게 배분할지도 주민들을 동요시켰다. 수산-비수산업의 업종별 배분비율을 놓고 고함소리와 삿대질이 오고 갔었다. 자연 파괴는 이웃 관계의 파괴로까지 나아가고 있었다.


이미 세 명이 자살했다. 이영권(66)씨는 굴 양식업에, 김용진(74)씨는 맨손 어업에 종사했고, 분신 이튿날 사망한 지창환(56)씨는 태안 읍내 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했다. 이들에겐 죄송한 말이 되겠지만 세 사람은 이번 기름 유출사고로 누가 직격탄을 맞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나 희망은 가까이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의 신경이 날카로워 진 데에는 삶의 터전을 잃었는데 피해 보상이 제대로 이뤄질지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한다. 이 우려는 조급함을 낳고 피해보상 요구를 단결된 힘으로 펴도록 하는 대신 업종별, 지역별로 각개약진하도록 작용하고 있다. 사고 책임자들은 여수에서 일어난 사건 때처럼 시간을 끌면서 각개격파 식으로 피해 주민들을 공략해 나갈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한겨레>에 사과 광고를 싣지 않았는데, 태안의 지역 언론 <태안시대>는 그 광고를 의뢰받고도 싣지 않았다. 사고 원인을 “갑작스런 기상 악화” 탓으로 돌린 내용을 광고하는 일은 독자와 태안군민에게 무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안시대>의 최광용 편집국장은 “이번 기름유출사고는 지자체의 낮은 대처 능력 수준, 피해보상을 둘러싼 주민들의 반응, 책임질 게 없다는 삼성중공업의 주장 등으로 한국사회를 축약해 보여줬다”고 말했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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