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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어느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는 아들

등록 2008-02-01 13:45

독거노인 방에 걸린 속옷과 자물쇠 : 한겨레신문
독거노인 방에 걸린 속옷과 자물쇠 : 한겨레신문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상황에서 의사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분위기에서 제가 만나는 분들에 대한 기억이나 그분들의 저에게 대한 기억이나 모두 불쾌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분들의 좋은 추억이 지금의 제가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 생각하며, 더 기억에서 잊혀지기 전에 글로써 남기려고 합니다.오늘은 제가 전공의 1년차 때의 만난 할머니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피부를 통한 튜브를 간에 삽입한 채 살아야 하는 할머니

70세 할머니가 심한 황달로 입원하여 말기 담도암으로 진단되었습니다. 암이 담도를 꽉 막고 있어, 담도내시경(ERCP)으로 소장 안으로 담즙을 배액시킬 시기를 이미 놓친 후 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막힌 부위보다 더 상부의 간에 직접 튜브를 꽂은 채로 남은 여생을 보내야했습니다. 더구나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고 식사도 잘 못하여, 퇴원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담즙은 간에서 노폐물을 걸러 내보내는 똥물입니다. 담낭(쓸개)은 그 중간 저장소이고, 배출되는 길이 담도입니다. 이곳에는 온갖 잡균, 기생충, 쓰레기들로 가득하죠. 사람의 대변색이 갈색인 이유가 답즙의 색 때문입니다. 하물며, 동물의 담즙이 얼마나 더러운지 상상이 가세요? 우웩!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병실을 지키는 아들

낮에는 간병인이 할머니를 도와드렸고, 늦은 저녁시간이면 아들이 와서 6인실 병실의 보조침대에서 자면서 간병을 하더군요. 거의 말이 없는 보호자였고, 늦은 밤에만 나타나서 모든 면담은 1년차인 저와만 하여, 담당교수님 얼굴은 본 적도 없었습니다.

환자처방을 모두 내면 거의 밤 12시가 되고, 다음날 6시부터 회진을 준비하려면 당직이 아니어도 집에 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전공의 1년차의 생활입니다. 어느 날 달밤에 체조라도 하려고, 늦은 밤 병원잔디밭에 나갔는데 그 아드님이 있더군요. 멋쩍은 인사를 하고 같이 앉아 서로 담뱃불을 붙여주었습니다.

매일 늦은 밤에 병원에 와서 자고, 새벽에 출근하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당연히 인근에 사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웬걸,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매일 퇴근하면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청주로 와서 병원에서 자고나서 새벽에 출근을 한다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자식들이나 며느님이랑 교대라도 하시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외아들이고 집사람은 어린 아이들 때문에 내려올 수가 없다더군요,

-대신 보호자 동의서를 작성하며

그 뒤로 할머니와 착한 아드님에게 관심이 생겨 조금 더 친해졌습니다. 몇주 뒤 담도가 다시 막혀서 다른 위치에 관을 또 삽입해야 할 때 보호자가 반듯이 동행해야 하는데 낮에도 직장을 빼고 올 수가 없기 때문에 제가 책임지고 교수님께 시술허거를 받기도 했습니다.(합병증으로 환자가 사망할 경우 저를 소송걸 수도 있지만, 그럴 사람은 아니라고 믿었죠.)

입원 후 한달 보름가량 되어 기력이 쇠한 할머니는 임종이 가까워졌습니다. 늦은 밤에 또 잔디밭에서 담배를 피우며, 심폐소생술 및 생명연장을 하지 않을 것에 관한 동의를 받아야 했습니다. 워낙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 담담하게 설명을 들으시고, 자연적인 죽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와 절차이지만,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기분이 우울할 수밖에 없죠.

그래도, 아드님이 정성으로 간호하셔서 할머니가 말년을 행복하게 지내시게 되었고, 병실에서도 할머니가 아드님 자랑을 많이 하셨던 이야기를 드리며 기운내시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병동 간호사들에게도 그 40대 후반의 아드님과 할머니는 인기인이셨습니다. 병동에 선물로 들어온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그 할머니에게만 줄 수 없어 같은 병실 사람들에게도 함께 나누어 줄 정도였으니까요.

-친아들도 아닌 수양아들인데

서로 착찹한 심정에 몇까치 담배를 더 태우다 아드님이 어려게 입을 떼셨습니다. 분은 실은 고아로 자랐다고 합니다. 남의 손에 길러지고, 먹고 살기 위해 안 해 본 것이 없이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늦깎이 결혼하여 어린 아이가 있다더군요. 몇 년전 아시는 분의 소개로 제주도에 홀로 사시는 독거노인을 알게되었는데, 그 할머니가 지금의 어머니시랍니다. 몇 년동안 제주도로 할머니를 만나러 다니며 정이 들었고, 서로의 기구한 운명을 끈으로 하여 수영아들과 수영어머니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죠.

나아 주고, 길러 준 어머니도 아닌 몇년전 시영어머니로 모신 분을 이렇게 극진하게 돌볼 수 있다는 것에 정말 놀랐습니다. 집사람과 아이들에게는 매일 집에 못 들어가서 미안하지만, 효도하고 싶어도 할 부모가 없는 본인의 한을 이렇게 풀 기회를 주신 지금의 어머님이 너무도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몇 일 뒤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드님은 홀로 임종을 지키셨습니다.

-어디에선가 다른 독거노인의 임종을 지켜줄지도

몇 달 뒤 한 교수님이 방으로 불러 의외의 봉투를 건네주셨습니다. 몇 달전 돌아가신 그 할머니의 아들이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유산으로 40만원이 남았고, 소포로 병원에 보낸 것이었습니다.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본인이 쓸 수도 없고, 저에게 주면 어머님이 좋아하실 것 같다는 짧은 글이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동네사람들도 그 아드님은 모르기 때문에 돌려줄 방법은 없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서로 감사의 마음을 알고 있는데, 구차할 것 같아 연락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제 월급이 60만원이었지만, 그 돈을 집으로 가져갈 수는 없더군요. 같이 고생하는 전공의들과 간호사들에게 크게 한턱 내었고, 그 분들의 촌지임을 밝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독거노인을 위한 성금으로 기증했더란면 하는 후회가 듭니다. 그 아드님이 떠오를 때면, 어디에선가 또 다른 독거노인의 임종을 지켜주고 계시지는 않을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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