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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영어가 기가 막혀

등록 2008-02-01 13:56

일이 많아 한동안 로그인을 못했는데, 오늘 다시 간만에 인터넷 한겨레에 와보니 사건들이 많았네요. 그중에서 영어교육 문제를 좀 다루어 보겠습니다.

저는 우선 영어교육 향상 자체에는 크게 찬성합니다. 왜냐하면 21세기에는 세계속의 한국인으로 살아야 하는 게 불을 보듯 뻔하므로, 국가의 공교육 차원에서 국어와 세계어(영어)를 일정 수준까지 교육해주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으로서는 고급 한국어를, 세계인으로서는 일정 수준의 세계어를 구사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럼 제가 이명박 식 영어교육에 찬성할까요? 천만에요. 만만의 콩떡입니다.

제가 인터넷 기사들을 보고 얻은 인수위의 방침은 크게 (1) 영어가 국가경쟁력이다, (2) 고딩만 졸업하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교육함으로써 영어 사교육비를 근본적으로 없에겠다, (3) 그러기 위해 일단 초중고딩 영어 수업은 100% 영어로 하고, 점차 다른 과목도 영어로 진행하도록 하겠다 등으로 요약이 됩니다.

그런데 이명박과 그의 인수위 사람들은 "영어"라는 게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언어라는 게 뭔지 통 개념이 없다는 거죠. 언어라는 것은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공간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경험하고 기억한 모든 것들의 복합체입니다. 언어는 한 사회의 총체적 문화를 인수분해하여 나온 하나의 인수가 아니라, 그 모든 요소들이 화학적으로 녹아있는 유기체라는 것이죠. 즉 언어란 수학적 인수분해 자체가 불가능한 정교한 집합체라는 것이며, 따라서 언어가 곧 문화라는 겁니다. 이런 일반적 개념에 반대하는 언어학자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명박의 정책을 보니, 그는 이런 기본 개념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 예로, "영어가 국가경쟁력이다"는 말은 비단 언어학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명박의 영어광풍(영어 미친 바람)은 비록 겉으로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오히려 결국에는 한국이라는 국가를 서서히 죽이는 무시무시한 역설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고딩 과목을 영어로 다 한다면 그게 한국이라는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일까요, 아니면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없애고 해체하는 것일까요? 아주 간단한 논리 게임 아닙니까?

이명박 식으로 영어교육 한다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아예 한국이라는 국가가 사라질 겁니다. 마치 왜정 때 상당수 지식인들이 한국적인 것을 죄다 버리고 철저하게 일본인이 되자고 하던 논리와 너무 똑같아 온 몸에 소름이 좌악 돋습니다.

21세기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은 무언가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는 똘똘한 물건(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일체)의 확보 및 생산 능력입니다. 그럼 영어(일종의 소프트 웨어)는 어떨까요? 한국인들이 영어를 아무리 잘 해도 우리는 영어에 대해서만큼은 죽을 때까지 소비자일 뿐, 생산자도 아니요, 유통자가 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어떤 미친 외국인이 영어 배우려고 한국에 오겠습니까? Maid in Korea 영어 교재를 사겠습니까? 즉, 영어는 세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수단으로서 그런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핵무기를 보유하면 그 핵은 전쟁억지라는 수단도 되고 그 자체로 목적의 구실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영어"는 태생적으로 그렇지 못합니다.

그럼, 학교 영어 교과를 100% 영어로 해야한다는 주장은 과연 정당한가요? 많은 분들이 이 말에는 동의하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어, 즉 언어라는 건 크게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등 네 분야로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영어라는 교과 안에도 큰 영역들이 있다는 겁니다. 과학 안에 물리와 생물이 있고, 수학 안에도 대수와 기하가 있고, 역사 안에도 세계사와 지역사가 있듯이 말입니다. 막말로, 재벌 안에도 비지니스 영역이 많죠. 따라서 학교의 영어 교과는 당연히 "영어실력"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교과여야 하며, "영어실력"에 위 네 가지 영역이 모두 포함되는 건 당근입니다.

근데 이명박은 그런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영역에 대한 개념 자체가 애초에 없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초딩이 국어를 못 합니까? 오히려 너무 되바라지게 잘 하지 않습니까? 중딩, 고딩은 어떻습니까? 전교 꼴찌로 중딩을 졸업한 어느 학생이 한국말 못합니까? 다들 불편없이 잘 하고 삽니다. 그럼 뭐가 과연 문제일까요? 문제는 그들은 말(의사전달)은 곧 잘 하는데, 국어를 잘 못 한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어휘력과 독해력, 작문력이 형편없다는 것이죠. 문법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요.

지금 나이 30만 넘으신 어른들은요... 어떤 사람과 5분만 얘기해 보면, 그 사람의 학력 수준, 출신 지방, 평소에 노는 물, 가치관 등을 거의 정확히 잡아 낼 수 있습니다. 쓰는 어휘와 말투로 금방 알 수 있지요. 글구.. 솔직히 주변에 "무식한" 사람 정말 많습니다. 그러데 그 무식한 사람들이 한국말 못합니까? 식당에 가서 주문 못합니까? 비지니스 하면서 거래 못합니까? 사업 수완이 뛰어난 '무식한' 사람은 돈 더 잘 벌지 않습니까? 이명박의 영어 (무)개념은 바로 이런 게 문제인 거죠. 완전 노가다 영어 개념으로 무식한 불도저를 들이대니 문제라는 겁니다.

제가 미국에서 15년 살면서 느낀 것 한 가지를 소개하죠. 이민 오신 분들은 대개 맞벌이(개인 비지니스)로 삽니다. 영어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저 가게 운영할 정도의 최소한의 영어만 하며 삽니다. 그렇게 한 2~3년 지나면, 자녀들이 하는 영어에 놀랍니다. 부모님이 듣기에 자식이 혀를 굴리니, 그저 영어를 잘 하는 줄 아시는 거죠. 그러나 혀를 굴리면 영어를 잘 하는 걸까요? 한국의 길거리 방황 청소년들의 한국말 발음은 그야말로 본토발음 원단인데, 그럼 그들이 과연 한국말 잘 하는 걸까요?

저뿐만 아니라 주변 동료들의 공통된 지적이지만, 이민 가정 자녀들은 그들이 비록 미국에서 태어났을지라도 영어 실력이 많이 떻어집니다. 개인 차이는 당근 있지만, 많은 통계들이 그점을 웅변합니다. 실제로 보아도, 미국 출생 Korean-American 대학생들 영어 실력이 꽤 떨어지는 편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 2세들이 이 지경이니, 조기유학이건 뭐건 초중고딩 때 미국에 유학 온 학생들의 영어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전 지금 평균적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언어란 회화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식의 언어 이해 수준이라면, 지금 우리나라 중고딩 학생은 모두 국어시험 100점 받아야 합니다. 근데 왜 국어 90점 이상 받기가 쉽지 않을까요? 그건 바로... 교과목으로서의 국어는 길거리 언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난 이명박이 정말 국제화를 이해한다면, 이런 정도 최소한의 개념이라도 가지고 영어교육을 운운하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비록 그 사람은 싫지만, 저는 그 정책만큼은 자세히 들어 보고, 타당하다면 정책을 지지하겠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의 정책 제안이라면 말입니다... 현재 영어 교육에서 회화 교육이 많이 떨어지니, 원어민 회화교사들을 많이 확보하여 교육의 약점을 보완하고 종합적 질을 높이겠다.. 아울러 어휘력, 독해력, 작문력 등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 다른 모든 교과목들도 전공 내용에 대한 지식을 향상하기 위해 고뇌하겠다... 뭐 이런 제시를 했다면 말입니다.

근데 이건 완전히 막가파 식, 말 그대로 단순무식 그 자체입니다. 미국의 고딩 불어 시간에 불어 에세이를 읽고 토론할 때 불어로 합니까? ㅋㅋ 다 영어로 합니다. 기본 문법 설명할 때 불어로 합니까? ㅋㅋ 영어로 합니다. 왜 내가 이런 말을 합니까? 언어에는 학년에 따라 레벨이 있다는 겁니다. 또한 언어란 것은 말로만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현재 미국에 사는 한국계 1.5세들이 대체로 (뛰어난 분도 많지만, 평균적으로) 언어 면에서 많이 떨어집니다. 상당수 1.5세들은 (고급)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고급) 영어도 못합니다. 그러니 자기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심각한 장애인에 속합니다. 그러니 자기의 언어가 통하는 수준의 일을 하며 평생을 삽니다. 이들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려면, 한국말이건 영어건 어느 한 가지를 최고 고급 수준으로까지 올려야 합니다. 근데 그들은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니 한국말을 포기하고 영어만 해도 무방합니다. 근데, 지금 이명박은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영어에 목매라고 윽박지릅니다. 이명박... 이 자가 과연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 맞습니까?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도 상식으로 통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한 언어를 높은 수준으로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외국어도 잘 한다는 겁니다. 그뿐인 줄 아십니까?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큰 애가 6살이었는데, 당시 그 아이는 정말 ABC 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학교 담임선생에게 상담을 했더니, 아이의 모국어인 한국어 수준이 또래에 비해 어떤가 묻더군요. 아주 잘 한다고 했더니, 그 분 왈... 모국어 잘 하고 온 아이들이 영어를 더 빨리 배운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이런 경험을 어느 미국인 언어학자와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말이 맞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한국에서 태어나 "세계속의 한국인"으로 살아 갈 아이들에게 어느 언어를 먼저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할까요?

너무 늦게 배우면 영어 발음이 걱정이라고요? 발음 걱정하지 마시고 고급 영어(독해, 어휘력)부터 배우시길 권합니다. 영어는 이미 세계어이므로, 바로 그 때문에 발음은 오히려 덜 중요합니다. 이 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발음은 세계어인 영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미국에서 헨리 키신저 발음 가지고 시비거는 사람 있었나요? 반기문 총장 발음으로 시비 거는 사람 있나요?

진짜 중요한 건... 발음은 좀 튀더라도 영어권에서 쓰는 표현을 천천히 말하면 됩니다. 요즘 조기 유학생들 발음 좋습니다. 근데 그들이 말하는 영어는 개판이 많습니다. 그게 더 쪽팔리고 웃기는 일입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한국말 하는 것을 한 번 냉정하게 관찰해 보세요. 만약 그들의 한국말 발음은 끝내주는데, 문장이 이상하다면... 그렇게 웃기는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외국인들이 TV 오락 프로그램에까지 나와 수다를 떨 수 있는 건 그들의 한국어 발음이 튀기는 하지만, 한국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의 발음으로 한국인들이 쓰는 표현을 말하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영어가 아닌 다른 과목도 영어로 가르치겠다는 이명박 식 제안에 대하여... 영어 과목을 100% 영어로 하는 것도 사실 말이 좀 안 되는데, 수학 과학 국사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자는 얘기는 아예 언급할 필요도 없겠죠. 너무 기가막힌 헛소리라 반론할 가치도 없습니다. 조선시대에 모든 교육을 한문으로만 한 결과, 그 어려운 한문 하느라, 얼마나 많은 타고난 천재들을 한문이라는 프레임으로 옥죄어 죽였는지요... 영어가 목적이 되면, 이제 또 얼마나 많은 이땅의 천재들이 영어에 깔려 죽을까요..

하여간 참 답답합니다. 한국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세계화와 국가경쟁력을 외치는 사람들 자신들이 정작 세계화에 대한 지식과 생각이 너무나 일천하다는 겁니다. 이번 영어 밀어붙이기는 한국인들에게 영어를 강제하고 영어로 줄 세우기 하겠다는 망국론이자, 역사문화의 실체로서의 국가를 해체하자는 주장입니다. 좃선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깁니다.

제가 만약 "영어"라면 이런 말이 튀어나올 겁니다. "참.. 내.. 영어가 기가 막혀..."

요즘 유행하는 이메가라는 별명... 정말 기막힌 이름입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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