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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공순이의 추억...“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등록 2008-02-01 14:01

삼성중공업이 기름 유출사건과 관련,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의견서-사고원인이 유조선 측에 있다는- 뉴스와 그로인해 후끈한 댓글들을 방금 막 보고 난 참이다. 심정적으로는 괘씸하기 그지없으나 그리 광분할 일은 아니다. 애초에 삼성중공업은 검찰 조사결과 가시화 전까지 한달이 넘도록 사과 한번을 하지 않았었으며, 그 후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을 뿐 책임지겠다는 말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즉, 그들이 의견서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는 이미 그들이 국민 앞에 지금까지 공공연히 해온 바다. 더구나 클라이언트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온갖 짓을 하는 것이 변호인이나 법무팀의 소명임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전혀 새로운 해프닝이 아니라 뻔히 예견된 상황이다. 몰론 화가 나는 것도 뻔하고 당연하다.

그런데. 태안의 경우 부담의 범위가 범국민적인 환경사고이고 피해집단의 규모가 크며 연예인들이 꾸준히 찾아주는 덕분에 꾸준히 한 구석이라도 언론의 지면을 아직까지 할애받고 있지만, 그 옆으로 똑같은 생계의 문제앞에서 절실하게 싸우고 있지만 쉽게 잊혀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벌써 1년 가까이 추운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삼성 SDI 하이비트 비정규직 여사원들이다. 정의구현사제단 사이트에 잠시 들어갔다가 '투쟁 300일째'라는 제목으로 올라와있는 그네들의 일지를 보고서야, 나 역시 그녀들을 떠올렸으니까. 어쨎거나 그 일지에서 거대 언론들은 그네들에게 아주 작은 지면도 허락해주고 있지 않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이후 [행복한눈물] 진품이 행방을 묘연히 한 사이에 [행복한눈물]의 사진이 박제된 피켓을 들고 이 추운 겨울 1인 시위에 나선 여린 그녀들을 볼 수 있었다.

그네들의 얼굴을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또 나의 머리 위로 뭉게뭉게 추억의 풍선이 떠오른다. 이 익숙한 얼굴들은 어디서 봤더라.. 해묵은 기억을 오고가던 추가 10년 전에 다시 멈춘다.

1998년, 부산으로 발령을 받고 동기들과 1년간 신입사원 현장실습이란 명목으로 각각 현장라인에 투입이 됐었다. 내가 간 곳은 엔진 인젝터에 들어가는 하우징 가공, 인젝터 조립, 그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또 다른 가공을 하는 세개의 공정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솔직히 공장을 접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공순이 공돌이 라는 의미는 비하적인 개념으로 무의식속에 새겨져 있었는데, 공정으로 첫 출근을 하던 날 아래 위 공장 유니폼을 입고 라인으로 가는데 '내가 책에서만 읽던 공순이가 되었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날 정도로 우울했다.수십명의 남자사원들이 우르르 모여서 "얜 또 뭔가"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속에 3명의 여사원이 있었다. 여공들도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반가왔다!

그네들은 모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예쁘장하고 풋풋한 스무살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생산직 사원도 아니요 사무직으로 발령을 받지도 못하고 라인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좌충우돌했던 나는, 내게 동정적이었던 남자들과는 쉽게 적응이 됐던 것에 반해 여자들과는 처음에는 그렇지를 못했다. 입사하자 마자 엄한 공정장님 밑에서 바닥 걸레질부터 시작했던 그네들은, 대졸사원이랍시고 바닥 걸레질 등 군기잡는 과정이 생략된 것이며, 쉬는 시간이면 PC를 열어 인트라넷 메일을 확인하는 내가 무척이나 거슬렸었나 보다. 공정장님이야 9개월 후면 사무실로 가서 자기하고 편의를 서로 봐줄 관계가 될지도 모르고 갑자기 타지에 와서 쌩뚱맞게 생산라인으로 배속된 것에 대한 연민으로 나름대로 베푼 특혜를 이해하기에는 그네들이나 나나 어리고 미숙했다. 급기야 근무시간에 그네들 세명이 나를 생산라인 바깥에 있는 화장실로 불러냈었다.

그들)(나를 둘러싸고)언니, 쉬는 시간에 싱글보지 마세요.

나) (기분이 나빴으나 무서워서 비굴함이 섞인 태도로)쉬는 시간에 뭘하든 그걸 왜

너네들이 뭐라고 하는데? 더구나 회사 메일을 보는데..

그들)(나보다 더 기분이 나빠진듯)우리가 언니보다 먼저 들어왔으니까 윗사람이고,

그러니까 무조건 우리가 시키는대로 하세요!

나) (기분이 나빴지만 너무 무서워서 개미소리가 됨) 그러니까..니네가 선배는 맞지만..

그러니까..그렇지만 직급상 윗사람은 아니고..그러니까 이런건 터지하지 말아줘.

그들)(분위기 무지하게 험악해지는데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뎅뎅뎅~)

그 일이 있은 후 겁이 난 나는 한동안 아침에 기숙사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면 하루종일 화장실을 가지 않으면서 버텼고 애들은 한동안 냉랭했지만 별다른 일은 더이상 생기지 않았다. 나름대로 말을 걸려고 애를 써도 갓 들어온 나나 어린 그들이나 순진하고 미숙해서 한달이 지나도록 그모양 그 꼴이 유지되고 있었는데, 어느날 조립라인에 있던 아이가 과자를 주고 돌아서는데 "우리 아버지는 뱃놈이다. 그래서 내는 뱃놈한테는 시집 안갈라고..". 처음엔 나한테 하는 말인줄 모르고 멍하니 서있다가 마음을 열어주는게 너무 좋아서 "어, 나두 그럴래!"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하고는 같이 웃어버렸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완전히 공순이 무리에 합류가 되었고, 처음에 라인으로 올 때의 정체불명의 수치심이 사라진 자리에 내가 무리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너무나 뿌듯하게 자리했다. 우여곡절이 많은 생산라인에서의 생활은, 업무적으로는 부당했고 물리적으로는 많이 힘들었지만, 사람으로 인해서 많은 것을 진솔하게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이 되주었다. 그리고 그 9개월동안 내 머리에서 "공순이"는 전혀 다른 개념이 되었다.

나중에 병이 나서 한달 가까이 병가를 내고 회사로 돌아오자 마자 빅딜관련한 파업을 하면서 내가 문선에, 연습 때문에 그네들과 두달여의 공백이 생긴채 먼저 발령이 나서 수원으로 오게됐다. 그 때 라인이 있던 건물밖까지 따라 나왔던 그네들이 전별의 눈물을 흘리며 했던 말이 "언니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잊으면 안된데이"였다. 아직 젼혀 상황이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네들이 머리띠를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먼저 떠나는 것이 소돔과 고모라를 먼저 빠져나오는 것처럼 미안했고, 하지만 내가 약속 할 수 있는 것은 "잊지 않고 끝까지 지켜볼게"라는 말 뿐이었다. 물론 그 약속은 그 때 잘 지켜지지 못했다. 수원에 오고나서 인사팀에 따로 불려가서 부산 사람들과 연락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았었고 새로 배치된 사무직군이 되려 너무나 생소할 지경이었으니까.(변명이다 ㅜ.ㅜ) 그 싸움은 5월이 되서야 끝이 났는데, 그네들은 모두 일종의 위로금을 받고 퇴사를 결정했고 수원에 있던 나는 그 후 그네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피켓을 들고 찬 바람 부는 거리에 선 하이비트의 젊은 여사원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들의 얼굴이 그때 그네들의 얼굴과 또 나의 얼굴과 많이 닮았다. 허긴 우린 모두 같은 공순이가 아니던가! 수고의 댓가로 떳떳한 돈을 버는 여자노동자, 말이다. 물론 우리가 가진 입장은 조금씩 다르고, 집회의 규모나 강도는 많이 다르지만, 아마 하이비트 사원들의 절박한 마음이나 그때 우리가 떨치지 못하던 절박한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막막한 우리를 범법자처럼 에워싸던 전경이나 전경차를 바라보며 느끼는 절망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이비트 여사원들을 직접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그들의 사이트에 글 한 줄 남겨주지 못했지만(사제단에 남겨놓은 일지에 있는 사이트의 하이퍼링크가 작동안되더라)...그래도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이·해·한·다·고....그리고 잊지 않고 당신들이 지금 작지만 절박한 비명을 지르고 있슴을 알·고·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힘을 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싸움이 끝날 날이 올거고 그러면 지금이 빛나는 추억이 될 것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이야기들을 잠시 생략하고 오늘의 작은 힘을 보태 여기 필통에서 소리내어 외쳐본다. "그녀들을 잊지말아주세요~!"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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