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복쿠폰으로 구입뒤 팔아…“규제조항 없어”
탱크와 전투기를 빼고는 없는 게 없다는 서울 동대문시장 군용품 상가. 상점 10여곳에 방탄 헬멧, 방독면, 전투식량 등이 잔뜩 쌓여 있는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점퍼와 바지 등 미군용품이다. 미군의 공식 보급품이 어떻게 이곳에서 팔리고 있을까?
한 군용품 상점 주인은 “낚시나 스키를 하는 이들이 따뜻하고 가벼운 미군 고어텍스 점퍼를 찾고, 미군 군복바지는 질겨서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며 “이런 미군용품은 카투사(주한 미군에 파견근무하는 한국 군인)들을 통해 동대문·남대문 시장에 대량으로 유통된다”고 귀띔했다. 그는 “예전에는 카투사들이 가져오는 고어텍스 점퍼가 한달에 몇십 벌씩 됐다”며 “요즘에도 양은 줄었지만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군용품을 수입하는 ㅇ사의 윤아무개 대표도 “미군 부대 군무원들이 빼돌리는 양도 많지만, 카투사들이 내다 파는 양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카투사들이 군용품을 내다 파는 것은 피복비를 현금이 아닌 물품으로만 지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카투사를 제대한 김아무개(23)씨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미군 군복과 점퍼, 전투식량 등을 동대문시장에서 15만원에 팔았다. 김씨는 “군복을 수선하거나 살 수 있는 피복비가 매달 7.26달러씩 나오는데, 이 돈을 쓰지 않고 모아도 현금화할 수 없다”며 “모아놓은 돈으로 제대할 때 군복을 사다가 시장에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90% 이상의 카투사들이 이런 식으로 미군 물품들을 팔아 제대하면서 12만~15만원 정도를 챙긴다”고 말했다.
국방부 공보실 전병규 중령은 “군수품을 내다 파는 것은 불법이지만, 카투사들이 파는 것은 미군용품이라 정확히 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더 살펴봐야 한다”며 “카투사들의 군수품 관련 문제는 미군 쪽에서 맡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규 주한미군 사령부 공보관도 “카투사들에게 그런 관행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사실이라 하더라도 미8군 규정에는 이를 규제할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정민영 기자 min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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