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체류자 단속을 피하다 숨진 재중동포 권봉옥(51)씨의 장례식이 열린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딸 오정화(25)씨가 어머니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추락사 재중동포 권봉옥씨의 딸 ‘쓸쓸한 장례식’
“그 사람들을 용서하는 게 돌아가신 어머니가 천국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를 때 한 계단이나마 쉽게 오르도록 도와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난달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하다 건물 8층에서 떨어져 숨진 재중동포 권봉옥(51·<한겨레> 1월17일치 12면)씨의 딸 오정화(25)씨는 5일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분노를 거뒀다.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대한민국은 조국이 아니라 어머니를 죽인 원수의 나라”라고 말했던 오씨는 “이제 와서 어머니를 단속했던 사람들을 어쩌겠느냐”며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주변 사람들을 잘 용서하셨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사고 소식을 듣고 입국한 오씨는 그동안 단속 공무원의 사과와 책임 규명을 요구하며 장례식을 미뤄 왔다. 하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오씨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눈을 감기 힘드실 것 같은데, 설에 어머니를 찬 영안실에 둘 수 없어 이제 그만 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황택환 서울출입국관리소 심사국장 등이 찾아와 조문을 했지만, 법무부의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숨진 권씨는 남편이 심장병을 앓으면서 집안이 어려워지자 지난 1999년 11월께 산업연수생 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권씨는 비자 기한이 끝난 뒤에도 중국에서 들어올 때 브로커에게 건넨 돈과 남편의 약값, 중국 베이징 사범대에 진학한 딸의 학비 등을 마련해야 했다. 불법 체류자로 남아 일하던 그는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연지동 한 모텔에서 일하던 중 단속반원을 피하려다 변을 당했다.
오씨는 “사고 나기 전날 저녁 마지막 통화에서 어머니가 ‘설날에 고향 지린성 가는 차표를 미리 예약해라. 우리 딸 너무 보고 싶고 이젠 돌아가겠다고 생각하니 더 보고 싶어서 발광이 난다’고 말했다”며 울먹였다.
오씨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개 편지를 띄워 “나처럼 가족을 잃는 사람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도록 무자비한 단속을 방지할 수 있는 ‘단속 인권 지침’을 제정하고 재중동포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완 권오성 기자 wani@hani.co.kr
이완 권오성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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