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도 나가자 병원과 ‘무료진료뒤 청구’ 합의
“간베이! 간베이!”
설 명절인 지난 7일 오후 1시께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한 중국음식점. 중국에서 온 1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연신 ‘건배’를 외쳤다. 지난해 2월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들이 모처럼 모여 앉아 설 잔치를 연 것이다. 이들은 모두 화재참사 때 부상을 입어 중국으로 내쫓겼다 ‘외상 후 후유장애’ 판정을 받아 재입국했으나, 그동안 치료비가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한겨레> 1월29일치 12면)
그러나 최근 한국 정부와 병원 쪽의 합의로, 치료비가 없어도 제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법무부는 지난 4일 이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서울 가리봉동 강남성심병원에 “무료로 진료를 한 뒤 나중에 병원에서 진료비를 법무부에 청구해 달라”며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병원 쪽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설 연휴가 끝나는 11일부터 이들은 치료비를 내지 않고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정부로부터 체류비를 지원받지 못한 이들에게는 한달에 30만원 가까이 드는 치료비가 가장 큰 부담이었다.
화재참사 당시 보호소 304호에서 부상당한 리궈허우(44)씨는 “이제 돈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며 중국 최대의 명절 춘절(설)의 기쁨을 맘껏 누렸다. 공사장에서 잡일을 하며 한달 35만원 가량 벌고 있는 루보(44)씨는 “쪽방 월세를 내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이 거의 없어 약도 제대로 못 사먹었다”며 “우린 그저 포기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치료를 받게 되니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우찌엔칭(35)씨는 “중국에서도 춘절은 일년 중 가장 경사스런 날”이라며 “그동안 명절조차 잊고 살았는데, 춘절에 더없이 좋은 소식을 전해 들어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안현숙(49) 이주여성상담소장은 “그동안 화재 피해자들이 직접 냈던 치료비도 법무부에 청구해 돌려받기로 했다”며 “뒤늦게나마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피해자들이 좀더 나은 환경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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