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지역 삼성 계열사의 간부 ㄱ씨가 작성한 지난해 2월12일치 업무일지. 대전지방노동청 천안지청 직원을 만나 떡값 40만원을 전달했고, 이날 현장에서 떡값을 돌리는 다른 삼성 계열사 간부를 만났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취재원의 필적이 드러나지 않도록 내용을 모두 모자이크 처리했다.
삼성계열사들, 상당수 공무원 ‘중복 관리’도 많아
“조직적 떡값 전달은 비리 아니라 ‘실적’으로 여겨” “하청업체에서 돈을 받으면 옷을 벗어야 하지만, 공무원들에게 돈을 건네면 오히려 공훈으로 승진합니다.” 충남 천안지역 삼성 계열사의 간부 ㄱ씨는 ‘떡값’ 전달 내역이 적힌 자신의 업무일지를 <한겨레>에 공개하며, 명절 때 공무원 등에게 조직적으로 떡값을 건넨 것은 ‘비리’가 아니라 오히려 ‘실적’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 저인망식 관리=ㄱ씨의 업무일지와 계열사 직원의 말을 종합하면, 설과 추석 때 떡값을 건네는 대상에는 회사 업무와 관련된 관공서의 말단 공무원은 물론 지역의 공기업 직원들까지 포함돼 있다. ㄱ씨는 “명절이 가까워지면 경영지원부서 과장급 간부들이 직접 나서서 공무원뿐만 아니라 주요 거래처인 한국전력,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공기업, 환경부 산하 법인까지 가리지 않고 떡값을 돌린다”고 말했다. 그는 “한전이나 가스안전공사는 설비 증설·관리 과정에서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거나 보고를 해야 하는 관계여서 공무원들과 차이를 두지 않는다”며 “인·허가와 관련된 곳들은 모두 떡값을 건네야 할 대상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른 간부급 사원인 ㄴ씨는 “명절이 끼지 않은 달에는 일주일에 세 차례 시청과 지방노동청, 경찰서 등을 상대로 돌아가며 술접대를 하는 데 큰돈이 들어간다”며 “명절이 낀 달은 술자리를 자제하고 떡값으로 관리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삼성 계열사들이 경쟁적으로 명절 떡값을 돌렸음을 내비치는 기록도 있다. ㄱ씨가 지난해 설 연휴 전인 2월12일 작성한 업무일지에는 대전지방노동청 천안지청 직원의 이름과 함께 ‘20×2’라고 쓰인 기록 옆에 다른 계열사 간부의 이름과 직급이 적혀 있다. ㄱ씨는 “40만원을 건네려고 찾아갔더니 이미 다른 계열사 부장이 와서 만나고 있었다”며 “각 계열사의 경영지원부서에서 공무원들을 각자 관리하다 보니 공무원들이 상당수 중복 관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ㄱ씨는 “떡값을 건네야 할 자리에 누군가 부임하면 첫 명절 때부터 떡값을 건네고, 해당 부서를 떠나게 되면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다음번 명절에 한번 더 챙겨주고 난 뒤 명단에서 삭제하는 식으로 떡값 전달 대상자 명단을 작성해 왔다”고 말했다. “연휴전 사흘간 떡값 돌리기 시작, 새벽 2시 넘어”
“십년간 같은 방식…구조조정 동료들 보기 민망” ■ 전달 실태=떡값은 보통 두 사람이 한 조가 돼 전달했다. 명절 연휴 1주일 전이나 연휴 1주일 뒤에 기간을 정해, 현금이 담긴 봉투를 관공서에 내는 서류 등에 끼워 전달하거나, 밤에 회사 차량을 이용해 직접 집으로 찾아가 건넸다. ㄱ씨는 “십몇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떡값 전달이 이뤄졌다”며 “나도 전임자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받은 것이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같은 방식으로 떡값이 돌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떡값 전달은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시기에도 계속됐다. ㄱ씨는 “지난해 회사가 희망퇴직 지원을 받아 직원들이 반발했지만, 회사는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공무원들한테 전달할 떡값의 액수만 줄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개인별로 일일이 찾아가 현금 10만∼100만원 가량씩을 건네지만,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관공서의 부서 단위로 수십만원씩 건네기도 했다. ㄱ씨는 “경리부서에서 기존에 줬던 금액보다 50만원 정도 삭감된 금액이 내려와, 시청의 한 부서에는 계장급 이하로는 일일이 떡값을 나눠주지 못해 과장한테 따로 50만원을 건네면서 부서비로 쓰라고 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지난해 설 연휴를 앞둔 2주일 전께 사흘 동안 낮부터 떡값을 돌리기 시작해, 날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새벽 2시가 넘었다”며 “인건비를 줄이겠다고 구조조정을 당하는 동료들을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올 설에는 삼성 특검 때문인지 잠잠했는데, 어차피 관공서와의 관계는 유지해야 하니 윗선에서 은밀히 진행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지역에서 오히려 삼성 공장을 유치하려고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관공서를 상대하는) 대관 업무를 할 이유가 없다”며 “대관업무 부서를 두고 있지 않으며, 경영지원부서가 독자적으로 그 업무를 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조직적 떡값 전달은 비리 아니라 ‘실적’으로 여겨” “하청업체에서 돈을 받으면 옷을 벗어야 하지만, 공무원들에게 돈을 건네면 오히려 공훈으로 승진합니다.” 충남 천안지역 삼성 계열사의 간부 ㄱ씨는 ‘떡값’ 전달 내역이 적힌 자신의 업무일지를 <한겨레>에 공개하며, 명절 때 공무원 등에게 조직적으로 떡값을 건넨 것은 ‘비리’가 아니라 오히려 ‘실적’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 저인망식 관리=ㄱ씨의 업무일지와 계열사 직원의 말을 종합하면, 설과 추석 때 떡값을 건네는 대상에는 회사 업무와 관련된 관공서의 말단 공무원은 물론 지역의 공기업 직원들까지 포함돼 있다. ㄱ씨는 “명절이 가까워지면 경영지원부서 과장급 간부들이 직접 나서서 공무원뿐만 아니라 주요 거래처인 한국전력,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공기업, 환경부 산하 법인까지 가리지 않고 떡값을 돌린다”고 말했다. 그는 “한전이나 가스안전공사는 설비 증설·관리 과정에서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거나 보고를 해야 하는 관계여서 공무원들과 차이를 두지 않는다”며 “인·허가와 관련된 곳들은 모두 떡값을 건네야 할 대상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른 간부급 사원인 ㄴ씨는 “명절이 끼지 않은 달에는 일주일에 세 차례 시청과 지방노동청, 경찰서 등을 상대로 돌아가며 술접대를 하는 데 큰돈이 들어간다”며 “명절이 낀 달은 술자리를 자제하고 떡값으로 관리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삼성 계열사들이 경쟁적으로 명절 떡값을 돌렸음을 내비치는 기록도 있다. ㄱ씨가 지난해 설 연휴 전인 2월12일 작성한 업무일지에는 대전지방노동청 천안지청 직원의 이름과 함께 ‘20×2’라고 쓰인 기록 옆에 다른 계열사 간부의 이름과 직급이 적혀 있다. ㄱ씨는 “40만원을 건네려고 찾아갔더니 이미 다른 계열사 부장이 와서 만나고 있었다”며 “각 계열사의 경영지원부서에서 공무원들을 각자 관리하다 보니 공무원들이 상당수 중복 관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ㄱ씨는 “떡값을 건네야 할 자리에 누군가 부임하면 첫 명절 때부터 떡값을 건네고, 해당 부서를 떠나게 되면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다음번 명절에 한번 더 챙겨주고 난 뒤 명단에서 삭제하는 식으로 떡값 전달 대상자 명단을 작성해 왔다”고 말했다. “연휴전 사흘간 떡값 돌리기 시작, 새벽 2시 넘어”
“십년간 같은 방식…구조조정 동료들 보기 민망” ■ 전달 실태=떡값은 보통 두 사람이 한 조가 돼 전달했다. 명절 연휴 1주일 전이나 연휴 1주일 뒤에 기간을 정해, 현금이 담긴 봉투를 관공서에 내는 서류 등에 끼워 전달하거나, 밤에 회사 차량을 이용해 직접 집으로 찾아가 건넸다. ㄱ씨는 “십몇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떡값 전달이 이뤄졌다”며 “나도 전임자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받은 것이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같은 방식으로 떡값이 돌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떡값 전달은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시기에도 계속됐다. ㄱ씨는 “지난해 회사가 희망퇴직 지원을 받아 직원들이 반발했지만, 회사는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공무원들한테 전달할 떡값의 액수만 줄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평소에는 개인별로 일일이 찾아가 현금 10만∼100만원 가량씩을 건네지만,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관공서의 부서 단위로 수십만원씩 건네기도 했다. ㄱ씨는 “경리부서에서 기존에 줬던 금액보다 50만원 정도 삭감된 금액이 내려와, 시청의 한 부서에는 계장급 이하로는 일일이 떡값을 나눠주지 못해 과장한테 따로 50만원을 건네면서 부서비로 쓰라고 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지난해 설 연휴를 앞둔 2주일 전께 사흘 동안 낮부터 떡값을 돌리기 시작해, 날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새벽 2시가 넘었다”며 “인건비를 줄이겠다고 구조조정을 당하는 동료들을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올 설에는 삼성 특검 때문인지 잠잠했는데, 어차피 관공서와의 관계는 유지해야 하니 윗선에서 은밀히 진행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지역에서 오히려 삼성 공장을 유치하려고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관공서를 상대하는) 대관 업무를 할 이유가 없다”며 “대관업무 부서를 두고 있지 않으며, 경영지원부서가 독자적으로 그 업무를 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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