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중대에서 머물던 밤 생각하니
상원사 종소리를 함께 들었지.
서로 떨어졌던 스무 해 동안
구름 낀 나무는 몇 천 겹이었던가.
가을 시냇가에서 바리를 씻고
등넝쿨 휘어잡고 저녁 봉우리에 올랐었지.
이제 만나 나이를 물어보고는
옛 얼굴과 다르다 서로 놀라네.
(憶昔中臺夜 同聞上院鐘
暌離二十載 雲樹幾千重
洗鉢臨秋澗 攀藤度夕峯
相逢問年歲 各怪舊時容)
-이달<贈鑑上人(감상인에게)> 전문 두통이 가라앉았습니다. 아침부터 영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쉴 줄 모르는 것도 병인 듯합니다. 귓전에 왕왕거리는 TV소리는 여전히 날카롭지만 그래도 견딜 만합니다. 차를 한 잔 마신 후 억지로라도 느긋해보려고 요즘 읽기 시작한 손곡 이달의 시집을 다시 폈습니다. 우리에게는 허균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손곡 이달은 최경창, 백광훈과 함께 조선 중기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유명합니다. 명문자제인 허균은 어떻게 그를 스승으로 모셨을까요? 둘째 형인 허봉의 추천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빼어난 시 때문이었습니다. 일가를 이룬 허균이 스승의 시를 모아 《손곡집》을 두 번이나 간행할 정도였다면 손곡의 뛰어남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제지간은 종종 충돌했습니다. 허균이 쓴 시를 보고 손곡이 평을 했을 때 허균은 ‘이 시가 당(唐)에 가깝다는 평보다는 이것이 허균의 시다’는 평을 더 듣고자 했습니다.그렇지만 허균은 손곡의 문하임을 자랑스러워했고 그의 시 200여 수를 모아 《손곡집》을 간행하고 《손곡산인전》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는 흥원창이라는 내륙포구가 있었습니다. 거둔사터, 고달사터, 법천사터 등의 큰 절 흔적이 아직 남아 있고, 흥원창이라는 포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물류 이동과 사람 왕래가 제법 이루어졌던 곳으로 여겨집니다. 아마도 손곡은 흥원창에서 문우들을 만나고 떠나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얼이라는 신분 제약 때문에 과거에 응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가 사제지간의 연을 맺는데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 시를 감상해야 하는데 쓸데없는 사설이 길었습니다. 시는 우선 읽고 몸으로 느끼는 것인데. 20년 만에 만난 벗,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요? 서로 나이를 묻고는 새삼스레 놀랍니다. 늙은 얼굴을 보며 깜짝 놀라게 되는 거지요. 어린 시절 같은 꿈을 꾸던 벗이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벗이기에 20년 세월은 쉽게 뛰어 넘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가 갑자기 문자를 보냈습니다. “히말라야에 간다. 소주 한잔 사는 셈치고 3만원만 보내라. 오가다 만나는 학교에 기부할란다.” 녀석은 이후 한 달 동안 히말라야를 돌아다니다 설 전에야 겨우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벌써 히말라야를 네 번째 다녀오는 거랍니다. 그 삶이 얼마나 깊어졌을까. 전에는 쉽게 다가갔지만 이번에는 참 어려웠습니다. 그때부터 제 마음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나는 내 삶을 위해 무슨 일을 했나?’ 그동안 가볍게 살아온 삶의 흔적이 부끄러웠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숨만 쉬며 살아온 시간이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의 무게로 저를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름만 피운 삶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옛 얼굴과 다르다.’ 친구는 충분히 깊어지는데 저는 갈수록 가벼워지니 그 거리가 사뭇 멉니다.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그저 편안함을 추구하며 이웃을, 아이들을 놓치며 살아왔습니다. 말초적인 즐거움에 빠져 지낸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깊어져야겠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상원사 종소리를 함께 들었지.
서로 떨어졌던 스무 해 동안
구름 낀 나무는 몇 천 겹이었던가.
가을 시냇가에서 바리를 씻고
등넝쿨 휘어잡고 저녁 봉우리에 올랐었지.
이제 만나 나이를 물어보고는
옛 얼굴과 다르다 서로 놀라네.
(憶昔中臺夜 同聞上院鐘
暌離二十載 雲樹幾千重
洗鉢臨秋澗 攀藤度夕峯
相逢問年歲 各怪舊時容)
-이달<贈鑑上人(감상인에게)> 전문 두통이 가라앉았습니다. 아침부터 영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쉴 줄 모르는 것도 병인 듯합니다. 귓전에 왕왕거리는 TV소리는 여전히 날카롭지만 그래도 견딜 만합니다. 차를 한 잔 마신 후 억지로라도 느긋해보려고 요즘 읽기 시작한 손곡 이달의 시집을 다시 폈습니다. 우리에게는 허균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손곡 이달은 최경창, 백광훈과 함께 조선 중기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유명합니다. 명문자제인 허균은 어떻게 그를 스승으로 모셨을까요? 둘째 형인 허봉의 추천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빼어난 시 때문이었습니다. 일가를 이룬 허균이 스승의 시를 모아 《손곡집》을 두 번이나 간행할 정도였다면 손곡의 뛰어남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제지간은 종종 충돌했습니다. 허균이 쓴 시를 보고 손곡이 평을 했을 때 허균은 ‘이 시가 당(唐)에 가깝다는 평보다는 이것이 허균의 시다’는 평을 더 듣고자 했습니다.그렇지만 허균은 손곡의 문하임을 자랑스러워했고 그의 시 200여 수를 모아 《손곡집》을 간행하고 《손곡산인전》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는 흥원창이라는 내륙포구가 있었습니다. 거둔사터, 고달사터, 법천사터 등의 큰 절 흔적이 아직 남아 있고, 흥원창이라는 포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물류 이동과 사람 왕래가 제법 이루어졌던 곳으로 여겨집니다. 아마도 손곡은 흥원창에서 문우들을 만나고 떠나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얼이라는 신분 제약 때문에 과거에 응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가 사제지간의 연을 맺는데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 시를 감상해야 하는데 쓸데없는 사설이 길었습니다. 시는 우선 읽고 몸으로 느끼는 것인데. 20년 만에 만난 벗,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요? 서로 나이를 묻고는 새삼스레 놀랍니다. 늙은 얼굴을 보며 깜짝 놀라게 되는 거지요. 어린 시절 같은 꿈을 꾸던 벗이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벗이기에 20년 세월은 쉽게 뛰어 넘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가 갑자기 문자를 보냈습니다. “히말라야에 간다. 소주 한잔 사는 셈치고 3만원만 보내라. 오가다 만나는 학교에 기부할란다.” 녀석은 이후 한 달 동안 히말라야를 돌아다니다 설 전에야 겨우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벌써 히말라야를 네 번째 다녀오는 거랍니다. 그 삶이 얼마나 깊어졌을까. 전에는 쉽게 다가갔지만 이번에는 참 어려웠습니다. 그때부터 제 마음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나는 내 삶을 위해 무슨 일을 했나?’ 그동안 가볍게 살아온 삶의 흔적이 부끄러웠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숨만 쉬며 살아온 시간이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의 무게로 저를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름만 피운 삶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옛 얼굴과 다르다.’ 친구는 충분히 깊어지는데 저는 갈수록 가벼워지니 그 거리가 사뭇 멉니다.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그저 편안함을 추구하며 이웃을, 아이들을 놓치며 살아왔습니다. 말초적인 즐거움에 빠져 지낸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깊어져야겠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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