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재로 부분 붕괴가 된 국보 제1호 숭례문의 화재원인을 밝히기 위해 경찰과 소방당국 관계자가 11일 감식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어이없는 화재로 불에 타 무너져내린 국보 1호 숭례문의 잔해는 처참했다.
화재로 인해 숭례문의 2층 누각과 기와는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1층 기와도 대부분 무너져내린 상태다. 10일 저녁 8시50분께 화재 신고가 접수돼 소방방재청이 화재가 완전 진압됐다고 밝힌 시각은 11일 새벽 2시5분. 5시간여에 걸친 불길에 600년 도읍지 서울 성곽의 관문이자 상징인 국보1호 숭례문이 불에 타 소실되었다.
11일 오전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숭례문 화재현장에는 사고 조사와 현장 수습을 위한 수사당국과 소방 관계자 및 참화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로 분주했다.
이날 낮 12시 현재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화재청, 소방방재청, 전기안전공사 관계자들이 현장에 합동본부를 차리고 현장감식 등을 논의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서울경찰청 등에서 나온 감식반 3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현장에 진입해 약 1시간 동안 1차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추가붕괴 위험으로 현장 감식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화재 감식을 위해 현장에 출동한 성환상 중부소방서장은 “추가붕괴 위험은 없어 보이지만 만일을 대비해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감식반 관계자는 “정확한 발화지점을 찾기 위해 조사했지만 현재까지 특별히 나온 것은 없다”며 “추가로 기와 부분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에 문화재청과 협의해 곧 2차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들 1500여명 운집…‘국보1호’ 흰국화 바치기도 숭례문 앞에 조성된 잔디밭 광장에는 시민 1500여명이 모여 화재로 소실된 ‘국보1호 숭례문’의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워 했다. 일부 시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울음을 터뜨리는가 하면 무너져 내린 숭례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시민들도 있었다. 국화꽃을 가져와 불에 탄 숭례문 아래에 놓으며 국보1호의 참화를 위로하는 시민도 있었다.
방학을 끝낸 개학 첫날 수업 뒤 일부러 현장을 찾았다는 송보석(청운중·15)군은 “새해 벽두부터 나쁜 일이 일어나 속 상하다”며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많이 안탔을텐데”라고 말했다. 송군은 안타까운듯 핸드폰 카메라에 화재 현장의 모습을 담았다. 이덕성(55·남가좌동)씨는 “숭례문의 겉모습을 복원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수백년간 숭례문이 간직한 숨결은 되살릴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되돌릴 수 없는 문화재 소실에 탄식했다.
참화 현장을 찾은 일부 시민들은 안타까움과 아울러 소방방재청과 문화재청 등에 근본적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화재 소식을 듣고 아침에 안양에서 올라왔다는 이원중(61·안양 평촌동)씨는 “자기 집은 잘 지키고 살면서 600년 역사를 가진 유물은 못지키다니. 문화재청과 소방재청이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지켰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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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찾은 김봉렬 문화재위원회 건조물분과위원(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은 현재의 문화재 관리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국에 수만점의 문화재가 있어 획일적인 관리 방식을 적용할 수 없다”며 “사찰처럼 거주자가 항상 있는 문화재와 다르게 숭례문 같은 문화재는 훼손되기 쉽기 때문에 문화재의 유형에 따라 관리 방식을 달리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2006년 만든 실측도면 182매 기본으로 원형대로 복구계획”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오전 ‘숭례문 복구 기본 방침’을 발표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소방법과 별도로 문화재보호법에 소방설비를 의무적으로 갖출 것을 명시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남대문 복원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일제 때 변형된 좌우쪽 성벽까지 원형대로 복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문화재청 이성원 차장은 이날 오전 10시30분 숭례문 화재현장을 방문해“2006년 제작한 정밀실측도면 182매를 기본으로 하고, 1960년대 초 발간된 숭례문 수리보고서를 참고로 해 숭례문을 원형대로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차장은 또 △기존 부재는 최대한 재사용하도록 하고 구체적 사용범위는 현장확인조사 등 자문위원회 결과와 자문을 받아 결정하며 △ 복원시에는 일본강점기 때 변형된 좌우측 성벽도 함께 복원하고 △ 문화재 위원, 소방관계 전문가 등으로 복원자문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등의 방침도 함께 공개했다.
일부 시민 땅에 떨어진 기왓조각 가져가려다 경찰에 제지당해
이날 화재 현장을 찾은 시민들의 일부 몰지각한 행동도 눈에 띄었다. 일부 시민들은 화재 현장에서 불에 타 무너지면서 땅에 떨어진 기왓장을 몰래 가지고 가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서울경찰청은 11일 오후 1개 중대 70여명의 병력을 배치해 시민들이 숭례문 안으로 출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 또 합동본부는 복원공사를 위해 보음재 펜스를 남대문 주변에 설치하고 있다.
서울 중심부 주요 교차로인 숭례문 일대는 사고 현장 수습을 위한 차량들과 인력들로 인해 교통체증을 겪어야 했다. 이 일대를 지나는 상진운수 버스기사 이영수(배차 주임)씨는 “아침 출근길에 공덕로터리에서 숭례문까지 평소 10분이 걸리는데 오늘은 20~30분 이상 걸렸다”고 말했다.
현장 찾은 외국인들 “문화재가 이렇게 타버리다니 놀랍다”
참화의 현장을 찾은 시민들의 숫자는 이날 오후 늦은 시각이 되어도 줄지 않았다.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발을 동동 구르며 잔디밭 광장에 모여 현장을 지켰다.
오후가 되자 남대문시장을 찾았다가 불에 타버린 숭례문을 보고 깜짝 놀라는 외국인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사업차 인도에서 한국을 방문한 지미(31)는 “오래된 역사를 담은 문화재가 이렇게 탈 수 있다니 놀랐다”며 “범인을 빨리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랠프 한스빅(32)은 “서울에는 문화재가 많지 않다”며 “그나마 외국인에게 인기가 높은 숭례문이 불에 탔다니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당국을 비판했다.
화재진압 때 뿌린 물이 얼었다 녹아 생길 수 있는 누각의 추가붕괴를 우려했던 합동감시반은 오후 3시께 본격 2차 감식에 들어갔다. 20여명의 감식반원들이 숭례문 왼쪽 계단을 통해 1층 누각에 올라 이곳 저곳을 살펴 보고 사진을 찍었다. 감식반원들은 1시간 가량 조사활동을 벌인 뒤 누각에서 내려왔다.
유홍준 청장 “부끄럽고 면목없다.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
이날 오후 8시께는 화재 소식을 듣고 프랑스에서 급거 귀국한 유흥준 문화재청장이 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 유 청장은 “국보 1호를 망실한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부끄럽고 면목 없다”며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다”고 말한 뒤 돌아갔다.
한편 현장을 찾은 시민들 가운데에는 화재의 책임 소재를 놓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 사이에 누구 책임이 더 큰 것인가를 놓고 말싸움을 벌이는 모습도 목격됐다. 이날 저녁 7시께 어둠이 깔리고 기온이 낮아지자 숭례문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은 대부분 흩어졌다. 11일 밤 현재 화재현장에는 크레인 3대가 동원돼 복구작업을 위한 장벽설치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화재 감식을 위해 현장에 출동한 성환상 중부소방서장은 “추가붕괴 위험은 없어 보이지만 만일을 대비해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감식반 관계자는 “정확한 발화지점을 찾기 위해 조사했지만 현재까지 특별히 나온 것은 없다”며 “추가로 기와 부분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에 문화재청과 협의해 곧 2차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들 1500여명 운집…‘국보1호’ 흰국화 바치기도 숭례문 앞에 조성된 잔디밭 광장에는 시민 1500여명이 모여 화재로 소실된 ‘국보1호 숭례문’의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워 했다. 일부 시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울음을 터뜨리는가 하면 무너져 내린 숭례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시민들도 있었다. 국화꽃을 가져와 불에 탄 숭례문 아래에 놓으며 국보1호의 참화를 위로하는 시민도 있었다.

화재로 부분 붕괴된 숭례문 앞에 11일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꽃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밤 화재로 숭례문이 전소 붕괴된 11일 경찰 감식반이 숭례문 화재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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