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타 무너진 숭례문이 11일 처참한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시민들이 멀리서 숭례문 잔해를 바라보며 오가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문화재 위기 대처법 ‘실종’
훼손가능 정도 언급안해…관리도 지자체·경비업체 등 각각
훼손가능 정도 언급안해…관리도 지자체·경비업체 등 각각
주요 문화재에 재난이 닥쳤을 때 체계적으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은 없었다. 화재 초기에 방향타 없이 우왕좌왕하다 화를 키운 소방당국과 문화재청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숭례문 화재 사고는 문화재를 담당하는 문화재청이나 화재 진압을 맡는 소방당국 모두 구체적인 위기 대응법이 없음을 보여줬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5년 낙산사 화재 이후 2006년 2월 ‘문화재별 화재예방 매뉴얼’을 각 지자체에 배포했다. 하지만 숭례문과 같은 전통 구조물의 특수성을 감안한 화재 진압법이나 주의점, 어느 정도까지 문화재 훼손을 감수하고 진화할지, 관련 기관들이 어떻게 협력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소방재난본부 역시 같은 시기에 ‘문화재 사찰 화재대응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사정은 별반 차이가 없다.
백민호 강원대 교수(소방방재학)는 “5분 안에 소방관이 도착할 수 있는 곳에서도 대형 화재가 일어난 것은 시나리오형 매뉴얼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며 “문화재 화재는 정점에 다다르면 이미 전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전에 4분의 1이나 2분의 1의 훼손을 감안한다는 식의 구체적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뉴얼의 부재 속에 소방당국은 “문화재청이 ‘(화재 진압을) 살살 하라’고 주문해 적극적인 진압을 못했다”고 변명하는 반면, 문화재청은 “적심(기와 바로 밑을 받치는 나무)에 화재가 난 것 같으니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다 하라고 했다”고 상반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더욱이 관리 주체인 지자체는 빈약한 매뉴얼마저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 중구청 관계자는 “문화재청이 각 지자체에 매뉴얼을 배부했지만 현지 실정에 맞는 않는 부분도 있고 해서 잘 따르지 않고 있다”며 “문화재청 매뉴얼에는 비상 연락망, 소화설비 시설 등의 점검표가 있지만 이를 작성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화재 발생) 연락을 받고 경황 없이 출동하면서 매뉴얼을 챙길 새도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현실과 맞지 않는 매뉴얼과 이마저도 따르지 않는 지자체의 관리 아래서 대형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대형화재로 번진 이유 문화재청 ‘허락’ 지연-소방관 발화지점 못찾아
논란끝 ‘기와 벗겨내자’ 결론땐 이미 꽁꽁 얼어
손 못쓰고 물뿌리다 붕괴…국민 가슴도 무너져 600여년의 역사는 다섯 시간 만에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 방치된 초기 10분=지난 10일 저녁 8시50분께 서울종합방재센터에 숭례문 화재 신고가 처음 접수됐다. 3분 뒤 중부소방서 소방차들이 현장에 도착해 진화작업에 나섰다. 출동은 빨랐다. 하지만 김영수 남대문경찰서장은 “화재발생 시각은 저녁 8시40분 전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화재 경보 장치나 수막설비가 없는 숭례문이 10분 가까이 아무런 방어막도 없이 불에 내맡겨진 셈이다. 고건축물 전문가인 양윤식 한얼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은 “목조 문화재의 경우는 초기 진화가 굉장히 중요하고 대개 5분 안에 진화를 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불이 붙게 되면 목조라는 특성상 열이 굉장히 높게 올라가고 이후에 폭발적으로 불이 번져나간다”고 말했다. ■ 놓친 기회=숭례문의 불을 잡을 기회는 한차례 있었다. 하지만 화재를 진압하는 방식을 두고 소방방재본부와 문화재청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기회는 사라졌다. 소방당국은 8시59분께 문화재청에 화재 진압을 위해 숭례문 일부를 파괴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문화재청은 “국보1호이므로 손상이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해 달라”고 했다. 8시55분께 불길을 잡으러 숭례문 안으로 들어간 소방관들은 복잡한 숭례문의 목조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불이 난 곳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중부소방서의 한 소방관은 “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았고 불도 보이지 않아서 불이 난 지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중구청이 현장에 출동한 직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내부 보고서는 “기둥에 불길이 침투하는 등 화재가 심하게 번져 지붕 기와를 제거해 직접 살수방식의 진화가 필요하다고 건의했으나, 문화재청 간부가 현장에 없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밤 9시45분께서야 “화재 진압을 최우선으로 해도 좋다”는 뜻을 전했다. 승인이 늦은 것과 관련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어떻게 숭례문을 처음부터 해체한 다음 불을 끄자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결국 잿더미로=소방당국은 화재 발생 한 시간이 지난 밤 9시55분께 소방차 31~36대가 출동하는 화재비상 2호를 발령하고, 기와를 벗겨내는 방법으로 진화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불을 끄기 위해 기와 위에 뿌린 물이 얼어붙어, 미끄러워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이성원 문화재청 차장은 “초기 진압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고, 건물구조가 특이해서 대처를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며 “한쪽만 기와를 벗겨내면 붕괴할 위험이 있어, 양쪽에서 작업을 해야 했는데 그것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윤식 원장은 “숭례문은 건물 구조가 굉장히 튼튼해 한쪽 기와를 들어낸다고 무너질 건물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숭례문 전체가 타버릴 위험보다는 훨씬 경미한 위험요소이고, 이렇게 오판을 했기 때문에 결국 불길을 못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10시15분께 누각 내부에서 진화작업을 하던 소방관들은 밖으로 철수했다. 불길이 거세 숭례문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소방관들은 내부에서의 진화를 포기한 채 숭례문 밖에서 물과 소화약재를 뿌렸다. 밤 10시32분께 화재비상 3호를 발령했지만, 이미 숭례문을 집어 삼키기 시작한 불길을 막지 못했다. 밤 11시께부터는 불이 2층 누각을 집어삼킬듯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한봉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건축과)는 “바깥 기온이 굉장히 낮고, 누각 안이 열기로 뜨겁게 되면 공기의 유동이 잘 안 돼 열이 빠지지 못하고 한순간 폭발하듯이 타버린다”고 말했다. 11일 새벽 1시54분께 숭례문의 2층 누각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고, 2시5분께야 불은 완전히 꺼졌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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