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를 지망하는 공학도의 편지와 답장 / 한겨레 블로그 한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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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 선생님께
블로그에 올리신 글들을 읽고 평소에 뜻한 바가 있어 결심하고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내과전공이지만, 병원에서 다른 의사 선생님들의 삶도 함께 하신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주실 수 있으리라 믿고 여쭈어 봅니다. 주변에서는 성형 외과를 제외한 다른 외과들, 예를 들면 흉부외과 등을 3D 라서 기피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외과는 생명을 다루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혼률과 자살률이 높다, 삶 자체가 고되고, 다른 전공에 비해 박봉이다. 분야의 특성상 대학병원에 계속 남아있어야 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호출을 받아야한다, 선생님께서 직접 보시는 실제 모습은 어떤가요? 저도 곧 나이가 서른이 다 되지만, 더 늦기 전에 할 수 있다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여 그 결정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삶을 살면서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그 중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
-저도 일반외과 지망생이었죠.
제가 의과대학 3학년 병원 실습을 나가서 외과를 지망하려 한 이유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배에 큰 충격을 받은 교복을 입은 15살 학생. 의식은 없고, 맥박도 약하고, 검사고 뭐고 할 시간도 없이, 그냥 수술장으로 끌고 왔더군요. 온 몸에 6개의 혈관을 잡고, 피와 수액을 때려 부었습니다(저희 식 표현). 저는 옆에서 피주머니를 짰습니다. 집도의가 배를 연 순간, 물폭탄이 터진 것 처럼 아이의 배에서 피가 펑하고 튕겨나오더군요. 수술하던 4명의 의사는 피를 고스란히 뒤집어 쓰고, 그 뒤의 저에게 까지 튀더군요. 찢어진 간으로 나오는 피를 잡아도 계속 피는 솟아오르고, 비장의 혈관을 잡아도 피는 멎지 않았습니다. 후복강의 대정맥까지 터졌더군요. 몇시간의 사투를 벌였지만, 그 아이는 살릴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그 1시간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큰 함선을 진두지휘하는 외과 집도의의 모습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수술팀. 그리고, 꺼져가는 생명과 이를 지키려는 최선의 노력들... 시간이 정지한 느낌... 하지만, 졸업반 여름에 난 사고로 수차례의 수술과 6개월간의 목발과 재활치료 등으로 오랜 시간 꼼짝 못하고 서있어야하는 외과에 대한 꿈은 접어야했습니다. 지금와서 보면 외과를 안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그렇지만, 제가 하는 치료내시경 분야도 내시경으로 하는 수술이니, 결국 마찬가지 삶을 살고 있습니다. -Major 진료과의 장단점
내-외-산-소 : 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를 메이저라고 합니다. 생명과 필수적인 과목이란 이야기죠. 요즘 메디컬드라마 '뉴하트'를 보면 아시겠지만, 심근경색을 진단하고 혈관조영술로 치료하고 심폐소생술, 기관삽관, 인공호흡기의 작동 등을 총괄하는 것은 내과입니다. 혈관이식 등의 수술이 필요하면 흉부외과의 도움을 받는 것이고요. 흉부외과의 수술후에는 다시 내과로 보내져서 내과에서 추적검사와 치료 등을 합니다. 다리가 부러졌는데 제대로 치료되지 않은면 죽을 수도 있고, 불구가 되어 굶어 죽을 수도 있죠. 눈이 안보인면, 눈이란 장기에는 사형선고겠죠. 그래서, 꼭 Major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진료과가 환자에게는 필수적이기 때문에 분화되고 만들어진 것이겠죠. 그래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 아니다를 논하긴 힘들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사람의 생사는 Major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살리는 사람 만큼 눈 앞에서 죽는 사람도 많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보급부대와 공병대의 중요성이 물론 크지만, 당장 적진에 뛰어드는 특공대와 선발부대와 같은 과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중요한 만큼 보람도 크지만, 돌아오는 위험도 큽니다. -외과(surgery), 내과(internal medicine), Major는 양날의 검 같죠.
미국도 소송문제로 생명과 필수적인 과가 기피된다더군요. 그렇지만, 의사에 대한 보호장치와 메이저과에 대한 다양한 지원으로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좋은 사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심장을 열고 하는 대수술을 하여도, 쌍꺼풀 수술의 치료비에 1/3 밖에 안되는 실정입니다. 여기에 결과가 안좋은면, 무조건 드러눕죠. 의료과실과 의료사고도 구별 못하는 기자와 시민단체, 정치인들이 판치는 나라에서 과연 올바른 의료가 자리를 잡을지 암담합니다. 죽을 사람을 살려놓아도 고맙기는 커녕 엉뚱한 설명부족을 이유로 싸우기도 하고, 어쩔 수 없고 예상되는 합병증이 생기면 돌팔이 소리는 당연하죠. 예측 불가능의 합병증이 생기면 죽일 놈이 됩니다(예:팔이 부러져 입원한 환자가 대변보다 뇌출혈로 죽으면 이게 의사의 잘못일까요?). -안과, 성형외과, 피부과를 전공한 선후배들이 부럽죠.
저도 3D분야이기는 하지만, 외과보다 스트레스는 훨씬 적은 편입니다. 90세 할머니 맹장염수술을 하다가, 중풍이나 심근경색이 생겨 환자가 죽는 것은 의사가 통제할 수 있는 잘못이 아닙니다. 만일 수술 중 혈관을 터트려 환자가 죽는 것은 과실이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상식이 먹히지 않습니다. 또한, 숨을 안쉬는 사람의 인공호흡을 위해 입을 벌리는데, 이 사람 이를 부러트려서라도 살려야할 것 같지만... 차리가 환자가 죽으면 문제가 없지만, 살면 이빨 때문에 보호자의 난동과 소송으로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와 같은 소화기내과의사끼리 상대적으로 편한 호흡기내과, 내분비내과 등을 부러워 하죠. 하물며 우아하게 살 수 있고, 먹는 욕의 양과 질이 현격히 낮은 피부/성형/안과 등은 말도 안꺼네죠. 연봉도 저의 몇배가 되니까요. 그런데, 외과는 저보다도 적은 월급을 받아야하고, 스트레스는 훨씬 심합니다. 피부과 후배가 저를 불쌍히 여기는 것과 차이가 많기는 하지만요. -인턴들과 함께 일하는 응급실 당직의로 취직하기도
외과의사를 지망하는 공학도의 편지와 답장 / 한겨레 블로그 한정호
제가 아는 몇분의 흉부외과 전문의는 자신의 전공으로 취직을 할 수 없어, 일반의로 개원을 하거나 응급실 당직근무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또는 일본에 가서 성형시술을 배워와 좋은 손재주로 성형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산부인과들은 업종변경하였고, 내과와 소아과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는 않습니다. 서울의 몇몇 대형병원의 문어발식 확장과 대형화로 전국의 모든 암환자와 심장수술환자를 끌어간 덕에, 다른 병원들은 도산위기죠. 한쪽에서는 병실이 부족해서 난리고, 다른 대다수는 기계와 인력이 있는데 환자가 없어서 문을 닫았습니다. 흉부외과, 일반외과의 부족은 실제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의사가 취직할 일자가 없어서 시작된 문제이며, 갈 수록 더 심화되는 문제입니다. 결론적으로 환자의 생명에는 중요한(메이저)인 과(major)는 속된 말로 망했습니다. -제가 직접 만나는 대다수의 외과의사들
정말 어렵습니다. 개원하여 '치질', '하지정맥류' 전문치료를 표방하여 대박을 터트린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반의와 똑같이 감기환자 보고 살거나, 중소병원에서 맹장염수술 정도 하거나, 교통사고로 다리부러진 환자가 돈되는 정형외과에 입원하는데 배아프다고 하면 가서 이야기 들어주는 것이 주된 업무입니다. 그나마 이런 자리도 쓸만한 자리는 많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후배에게 일반외과나 흉부외과를 전공하라고 이야기한다면 미친놈이라고 뺨을 안맞으면 다행이겠죠. -'대부 1편'에서 갱들도 두려움에 손을 떠는 장면을 항상 반복하는 삶
외과의사를 지망하는 공학도의 편지와 답장 / 한겨레 블로그 한정호
이건 메이저과를 수련받거나, 종합병원에서 혼자 중환자를 맞닥쳤을 때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수술/시술 중 갑자기 사망할 때, 배는 열어놓았는데 출혈부위를 못찾을 때, 두개골이 깨져 뇌가 흘러내리는 어린이를 치료할 때, 내시경하다 환자가 숨을 안쉬거나 장이 터졌을 때, 어제 정상 분만한 산모가 오늘 갑자기 죽었을 때, 보호자가 멱살을 잡을 때, 깡패가 응급실에서 난동부릴 때...... 이런 상황에서 평상심을 유지하고 손을 떨지 않을 자신 있으세요? major과를 선택하는 사람은 매일 만나야하는 일상입니다. 뒤 돌아서면, 기다리는 다른 환자의 수술과 진료와 회진, 면담도 해결해야죠. 살인으로 먹고사는 갱들도 손을 떱니다. 죄책감에 괴로워합니다. 하물며, 어렵게 의사되서 사람 죽이고 싶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살인마', '돌팔이'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정말 그 사람을 살인하고 싶어집니다. 이러니 알콜중독되는 의사가 많죠. 10년을 이렇게 살면, 남의 말 듣지않는 꼴~통이 되거나 미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비롯하여 10년 이상 주변의 선후배 의사들을 지켜보며, 환자 못지 않게 미쳐가는 의사들의 정신병리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외과의사의 길을 택하는 것은 미친 짓
정말 위급한 사람을 살리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살고 싶이세요? 그러면 의사를 하십시요. 정말 매력있는 직업입니다. 본인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사람은 혜택을 보는 확실한 직업입니다. 단, 대한민국에서 외과의사를 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무모한 일입니다. 일단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하면서 보고 배워보세요. 이제 의대에 간다면 졸업하려고 해도 앞으로 5~6년 뒤의 일이니, 시간은 정말 넉넉합니다. 그 동안 의료환경이 변하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1. 다른 major도 함께 생각해보세요. 이런 과들은 국제기구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길이 비교적 열려있다는 군요.
2. 메디칼드라마에서 보는 것과는 실제 병원은 다릅니다. 모두다 중요한 진료과목입니다. 서로 의존관계죠. 일하다 알게되는 본인 적성도 중요합니다.
3. 대한민국에서 의사생활을 고집할 이유가 없습니다. 영어가 받쳐주면, 미국 등의 의사를 사람대접해주는 나라를 적극 추천합니다.
4. 의료행정가도 필요합니다. 법의학도 중요합니다. 임상의사만 고집할 이유가 없습니다. 적성이란 본인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과를 접해보면, 새로운 흥미가 생길 것입니다. 저도 외국으로 나갈 생각을 몇번 했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던 친구/선후배들과의 의리, 그리고, 우리 사회를 향한 제 사명이 아직은 있다고 생각해서 버티기는 합니다. 하지만, 항상 고민입니다. 로스쿨에 갈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의사협회에서 3년 의무근무 조건으로 등록금을 지원해준다는 말에 솔깃하네요. -이렇게 우연히 사람을 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과의사를 지망하는 공학도의 편지와 답장 / 한겨레 블로그 한정호
위의 글은 어제 써놓은 것인데 차마 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하늘의 뜻일까요? 방금전 점심시간에 우연히 응급실을 지나다가 4살된 아이가 기도가 막혀 기도확보(intubation)를 하고 있더군요. 소아과전공의와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기관삽관을 하고 있는데, 몇분동안 해도 안되더군요. 제가 그 분들 보다 더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는 손을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해보겠다고 이야기하고, 튜브를 입을 통하여 기도에 넣었는데 다행히 잘되었습니다. 의식이 없었는데, 5분 정도 지나자 의식이 돌아와서 울더군요. 바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주니까, 엄마를 알아보고 엄마에게 안기더군요. 저는 '지나가던 내과의사'라서 소아과의 감사인사만 받고, 지금 방에 돌아와서 답장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부모와 아이는 모르겠지만, 저 혼자서는 참 뿌듯합니다. 어린이집에서 쓰러져서 병원에 오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저산소증으로 죽거나 평생 불구가 될 꺼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살아서 엄마 품에 안기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네요. 제가 이제까지 죽도록 한 환자분들이 하늘나라에서 저에게 복수하러 올 때, 저 아이는 제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모두 안좋은 이야기만 써서 미안했는데, 막판에 '그래도 의사로 사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가 갑자기 생겨서 저도 기쁘게 글을 마칩니다.(이 꼬마가 살아서 집에 돌아가면, 다시 자세한 글로 쓰겠습니다.) [사진출처 : 한겨레, MBC, wikipedia] /한정호(청주성모병원 내과과장)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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