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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숭례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

등록 2008-02-13 17:07수정 2008-02-18 13:42

12일 오후 한 시민이 서울 숭례문 화재현장에 국화꽃을 가져다 놓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후 한 시민이 서울 숭례문 화재현장에 국화꽃을 가져다 놓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들에게 ‘숭례문’은 무엇이었나
숭례문이 불에 탔다. 토지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은 70살 남자가 홧김에 저지른 불로, 지난 11일 새벽 숭례문은 5시간 만에 불에 타 무너져내렸다.

‘숭례문 화재’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졌다. 국보1호를 향한 ‘고의적 방화’를 막지 못한 채 속절없이 바라만 보다가 불태워버렸다는 안타까움과 분노, 부끄러움과 한스러움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가치로 보면 ‘국보1호’ 숭례문의 가치는 “국가를 대표하는 국보 중의 국보”라는 표현과 달리, 상징성에 비해 낮은 편이다. 숭례문은 1996년 11월 ‘국보 1호 변경’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문화재적인 가치가 적고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드나들은 상징성 때문에) 일제가 지정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문화재관리국이 서울시민과 문화재전문가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여,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숭례문은 2005년 11월 다시 ‘국보 1호’ 논란에 휘말린다. 감사원이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국보 1호’ 변경을 문화재청에 권고했기 때문이다.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도 변경에 찬성했다. 이때 ‘국보의 지정번호는 문화재 가치와 상관 없이 행정편의상 순번이 부여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숭례문은 ‘국보1호’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12일 화재 이후 열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숭례문의 국보 1호 지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동요·속담·‘남대문놀이’에 들어 있는 ‘숭례문’

‘국보 1호’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란에 불구하고 숭례문은 시민들에게 ‘국보1호’라는 숫자 이상의 의미와 상징을 담고 있다. ‘숭례문(남대문)’이 갖는 상징적 가치는 우리의 일상언어와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남 남대문을 열어라/ 열두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해봤을 ‘남대문놀이’다.

‘남대문’은 속담과 관용적 표현에도 여러번 등장한다.

‘남대문 입납 南大門 入納’ (주소나 이름을 모르고 집을 찾는 일)

‘남대문 구멍 같다’ (구멍이 매우 큰 경우를 일컬을 때)

‘남대문 열렸다’ (남자 바지 지퍼가 열렸을 때)

‘남대문에서 할 말을 동대문에 가서 한다’ (엉뚱한 곳에 하소연하는 경우)

1947년 첫 등장한 우표 속 숭례문.
1947년 첫 등장한 우표 속 숭례문.
한국관광공사가 2007년 만든 홍보영상물 ‘코리아 스파클링’에도 숭례문이 등장한다. 강순덕 한국관광공사 홍보물제작팀장은 “숭례문은 서울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잘 조화된 도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라며 “남대문시장과 더불어 외국인들이 잘 들르는 관광 장소이기 때문에 영상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숭례문은 1947년 이후 모두 14번에 걸쳐 한국을 상징하는 우표 디자인으로 등장한 바 있다. 건국이후 3년8개월마다 한번씩 숭례문 우표가 나온 셈이다.

유명 인터넷게임에도 숭례문은 서울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EA코리아가 발매한 ‘심시티 시리즈’에는 숭례문이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건물로 설치돼 있다. 이풍재 이 회사 홍보팀장은 “숭례문은 한국을 대표하는 국보 1호 유적으로서 의미가 크기 때문에 게임에 넣었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 우표에만 14번에 걸쳐 ‘숭례문’ 등장...한국의 대표적 상징

이처럼 숭례문은 ‘서울’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서울의 대표적 상징(랜드마크)이었다.

실제 1994년 미술전문지 <가나아트>가 미술인 70명을 상대로 ‘서울의 대표적 랜드마크’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33표로 ‘남대문’이 1위를 차지했다.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념 기념우표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에 대응해 한국의 숭례문이 등장했다.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념 기념우표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에 대응해 한국의 숭례문이 등장했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흔적만이 곳곳에 남아 있을 따름이지만, 서울은 수백년 동안 성곽도시였다. 왕궁을 중심으로 서울을 성곽으로 에워싸고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 창의문, 숙정문 등 몇몇 곳의 문을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었던 성곽 도시였다. 새벽에 도성 문이 열렸다가 한밤이면 굳게 닫히는, 도성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의 출입이 통제되는 문루였다. 그중에서도 숭례문은 가장 규모가 큰 서울의 대표적인 관문이었다. 2006년 3월1일 일반 개방 이후 숭례문 밑 홍예문을 통해 직접 문루를 지나간 사람은 관광 목적이었지만, 지난 600여년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은 숭례문 아래를 통해 서울을 드나들었다. 성벽은 사라지고 덜렁 문루만 남았지만, 조상 대대로 전해져온 ‘서울의 관문’ 기억은 숭례문을 두고 이어졌다.

‘국보1호’ 상징성 외에 “나라 대표하는 문화유산” 인식 팽배

불에 탄 숭례문 앞에서 시민들이 눈물 흘리고 조화를 바치는 행동은 왜 일어났을까?

정태연 중앙대 교수(심리학)는 “국보1호라는 숭례문의 상징성을 시민들이 극대화해 하나의 생물인 것처럼 의인화하고 있는 것 같다”며 “누구나 갖고 있는 숭례문의 상징성은 인정하지만 국보2호인 원각사지10층석탑이 불에 탔어도 그랬을까 싶다. 1호라는 것에 대해 한국인이 갖는 상징성이 워낙 강하니까 심리적인 상실감과 허탈감이 훨씬 크게 나타났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미디어다음> 아고라 청원방에서 1천만원 모금을 목표로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donation/view?id=37554>“네티즌의 힘으로 문화재 방재대책을 마련합시다! 성금 모금이 진행되는 것은 물론 인터넷에서는 추모·성금모금 카페가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11일 숭례문 인근에서 만난 유영애(65·압구정동)씨는 “숭례문이 타버려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어려서 공부할 때 숭례문이 서울의 사대문을 대표한다고 배웠다”며 “항상 우두커니 서 있는 나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최정옥(54·개포동)씨도 “국보1호 숭례문은 마음의 든든한 기둥이었다.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 마음도 함께 무너진 것 같다”며 “육백년 동안 꿋꿋하게 버텨온 숭례문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가 자존심 무너졌다” 호들갑 보도에는 ‘오버’ 지적도

숭례문 누각 소실에 대해 일부 언론은 “국보1호도 못지킨 대한민국” “국가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11일 최희진(22·제기동)씨는 “숭례문 화재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가의 자존심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과장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홍석(38·수원시 매탄동)씨는 “숭례문은 국보 1호외에 상징적인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냥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니까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라며 “언론에서 호들갑스런 반응을 보이는 건 이해가지만 다른 국보들도 잘 보존·관리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김지홍(21·경기 분당)씨는 “이런 사고가 나니까 비로소 숭례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하다”며 “국보 1호의 의미는 숫자상 개념일 뿐 최고로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닌데 언론이 너무 차분하지 못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병인 전남대 교수(사학과)는 “언론에서 ‘국상’ ‘망국’을 들먹이며, 숭례문 화재를 다루는 것은 엄밀히 말해 선정적인 것이다. 문화재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 것인데 언론은 이를 보지 못한다”며 “국민 여론이 숭례문의 진정한 가치나 문화재 보호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기보다 곁다리만 집는 식으로 만들어져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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