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숭례문 복원, 50년 걸린 ‘일본 금각사’에서 배우자

등록 2008-02-14 08:44

일본 금각사의 화재 전후와 복원 모습. 1397년 창건된 금각사는 600여년 가까이 보존되어 오다(왼쪽 사진), 1950년 한 학승의 방화로 앙상한 검은 잔해만 남았다. (가운데) 일본은 시행착오 끝에 반세기에 걸쳐 금각사를 복원했다. (오른쪽)
일본 금각사의 화재 전후와 복원 모습. 1397년 창건된 금각사는 600여년 가까이 보존되어 오다(왼쪽 사진), 1950년 한 학승의 방화로 앙상한 검은 잔해만 남았다. (가운데) 일본은 시행착오 끝에 반세기에 걸쳐 금각사를 복원했다. (오른쪽)
1397년 건축…세계문화유산 등록
1950년 21살 행자승이 방화 · 전소
서둘러 5년만에 복원했으나 ‘뒤탈’
수차례 재공사…반세기만에 완공
지금은 교토 외국관광객 필수코스

일본 금각사(긴가쿠지)는 역사도시 교토를 처음 방문한 외국 관광객이라면 거의 빼놓지 않고 들르는 필수 코스다.

정식 명칭이 노쿠온지인 이 절은 금빛 찬란한 자태를 뽐내는 중심 건축물인 3층 사리전 ‘긴가쿠’(금각) 때문에 금각사로 불린다. 1397년 건축된 금각사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는 등 일본인들이 세계에 자랑하는 문화유적이다.

하지만 원형 그대로는 아니다. 한국의 국보 1호 숭례문처럼 이 절도 1950년 7월2일 방화로 대부분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일본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보면, 앙상한 잔해만 남아 지금의 화려함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이 절이 소실된 정황과 일본 사회에 던진 충격도 지금의 한국과 엇비슷했다. 불을 지른 21살의 행자승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다”, “사회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다”라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일본 극우를 대표하는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1956년 출간 소설 <금각사>가 바로 이 사건을 소재로 했다.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가 기자 시절 특종 보도한 사건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숭례문을 잃은 한국인들에게 더욱 관심을 끄는 대목은 금각사 복원 과정이다. 시행착오를 거쳐 제대로 되살려내는 데 꼬박 반세기의 세월이 걸렸다는 점이다.


금각사가 불탄 뒤 일본에서는 곧바로 국민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당시 돈으로 3천만엔에 이르는 복원 비용이 마련됐다. 3년 간의 작업 끝에 금각은 1955년 복원됐다. 메이지 시대인 1903년 대대적인 수리를 거치는 과정에서 발견된 상세한 도면 덕분에 비교적 원형에 충실하게 이전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복원된 모습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현재와는 사뭇 달랐다. 서둘러 복원한 탓에 군데군데 금박이 떨어져나가 ‘금각’이 아니라 ‘흑각’이라는 야유까지 받기도 했다.

결국 일본 문화재당국은 1987~88년 7억4천만엔의 거금을 들여 2차 복원공사에 들어갔다. 가로·세로 약 10㎝의 금박 20만장을 접착력이 강한 칠로 붙였다. 이때 금박이 600년 이상 지탱할 수 있도록, 보통 금박보다 5배나 두꺼운 1만분의 5㎜짜리를 붙이는 난공사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에는 제3차 복원공사를 단행해 누각 지붕의 널을 전면 교체했다. 방화로 소실된 지 50년째를 맞은 1999년 7월1일 오늘날의 금각사가 재탄생했다.

복원·재건축된 금각이 너무 금빛 찬란하게 변신한 데 대해선 일본 안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그렇지만 반세기에 걸쳐 정성들인 복원작업이 있었기에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 수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인터뷰 / 일본 나라시 소방국 예방과장 구보타

소방본부에 문화재 방재관
현장 소방관에 진화 권한
매년 세미나 시민관심 높여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않습니다.”

나라시대(710~794)를 비롯한 일본의 고대 문화유적지가 밀집한 나라시 소방국의 구보타 히로시 문화재방재관(예방과장)은 12일 <한겨레>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나라시의 주요 문화유적지인 동대사(도다이사) 앞에도 남대문이 있다”며 한국의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전소된 사건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숭례문 화재의 진화 초기단계에 문화재청의 요구로 소방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보도를 봤다며 “일본에선 문화재 화재 진압의 책임이 현장 소방관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다”고 밝혔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문화재를 담당하는 문화청 관리들이 소방활동에 간섭하는 사례는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현장 소방관의 지휘에 따라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는 화재 방지의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며, 문화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화재 진압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소방관에게 맡겨두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구보타 방재관은 문화재 경비는 단순히 시설과 인력 보강만으론 불가능하다며 시민들의 문화재 보호 의식을 강조했다. 그는 화재감지 장치가 설치된 동대사와 같은 아주 큰 절을 빼고는 “24시간 경비를 펴는 곳은 없다”며 경비 등 물리적인 대처만으로 문화재 보호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또 화재 뒤 늘 설치가 거론되는 스프링클러 같은 대형 철제시설은 오히려 문화 건축물의 벽을 손상할 우려가 있어 나라시에선 1곳에만 설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구보타 방재관은 문화재 관리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문화재 공개와 보호 사이의 균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화재를 지키려고만 한다면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어려운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문화재는 한번 불타면 회복하기 어렵다고 사람들의 마음에 지속적으로 호소하는 활동을 하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나라와 교토의 주요 문화건축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양동이도 “화재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상징물이라고 말했다.

모범적인 문화재 방재 도시로 유명한 나라시는 1998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방본부에 문화재방재관이라는 직제를 신설하고, 해마다 방재 세미나를 열어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