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살인
대학교 2학년 때 형법총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법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하면서 법대 전공 강의를 들어간 것이었는데 법대 남학생 40여명이 들어오는 강의라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 수업의 홍일점이 되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 강의에서 태아를 인간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를 가지고 낙태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때는 바야흐로 1994년이었고, 교수님의 재미있어라 하는 표정과 침묵 속에서 40:1의 혈투를 벌인 나는 그 날 이후 우리 학교 법대생들 사이에서 "땍땍이"라는 예쁘지 않은 별명으로 불려졌다. 그 날의 혈투는 다수의 복학생 군단이 자리한 남학생 집단과 학교와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해온 혈기왕성하고 용맹무쌍한 갓 성인이 된 여학생간의 싸움이었는데, 지금도 그 날 토론이 고조되면서 오고 간 수위 높은 이야기들이 생생하다.
남학생1) 임신이 싫으면 혼전에 순결을 지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혈기왕성여학생) 낙태를 비혼자만 한답디까!
남학생2) 여하간 임신이 싫다면 사전에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혈기왕성여학생) 책임지고 싶지 않다면 남자들이야 말로 결혼을 했던 안했던 섹스하지
말던가 정관수술을 받던가 하십시오, 왜 이미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고통
받는 여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넘깁니까!
남학생3) 그럼 여자들의 부담감 때문에 아이들이 태어나 보지도 않고 죽어도 됩니까!
혈기왕성여학생)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단지 데이트하기 싫은 놈이랑 데이트 나가는 정도의 부담인 줄 아는 거 아니예요!
남학생4) 다들(하지만 주로 진정의 대상은 여학생) 좀 진정하세요. 그러니까 현재 법에서는
장애아나 강간에 의한 낙태는 허용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그런 피치못한 사연이 있는 허용범위 외에는 태아의 생명권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혈기왕성여학생) 그럼 아버지가 강간범이거나 스스로 장애가 판별된 태아는 죽어 마땅합니까!
아마 나나 남학생들이나 우리들이 서로에게 일갈하던 이야기들의 구절구절이 각자의 순수의도 100%는 아니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주장하는 바가 있는데 토론이 격양되다보니 서로 극단적으로 쎄게 표현하게 된 것이 다수 있었을 터였다. 나이가 들고 남자들이 왕창 우글거리는 회사를 다니면서 그나마 극단적 표현이 오가던 땍땍이 소리를 듣던 학교에서 했던 토론들은 그나마 매우 존중적이고 토론할 만 한 것이었지만 사회에서는 그러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행히 웬만해서 논쟁이 될 만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 영리함이 내게 생겼다. 하지만 가끔씩 드라마에서 헤어진 여자가 임신하여 나타나는 류의 에피소드라도 날라치면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이런 갈등의 수준은 그 때로부터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졸업한 지가 10년이 넘었으니 이런저런 기억들이 귀여운 추억들이 되고 그나마도 애써 꺼내보지 않으면 먼지앉은 채 기억 밑바닥에 개켜져 까맣게 잊고 있기 마련인데 아침에 도마 위에 오른 모자보건법이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뭉게뭉게 떠올랐더랬다. 처음엔 빙긋 웃었지만, 아직도 그 때로부터 이 문제를 둘러싼 의식이나 개선이 없었다니 아쉬웠다. 기사가 된 낙태의 허용범주에 대한 문제는 겉으로 보기엔 여성의 신체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충돌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낙태의 문제는 여성 개인에게 있어 문신이나 피어싱, 성형수술 같은 종류의 변화나 결과와 전혀 그 맥락이 다르다. 여성에게 임신과 낙태의 문제는 생명을 걸고 출산을 감수할 것인가의 결정인 동시에 출산을 결정함으로써 생기는 사회적 삶의 전면적 변화에 대한 선택이다. 따라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신체결정권의 충돌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낙태 허용의 임신시점에 대한 판단과 더불어 사회적 양육의 책임, 피임을 포함한 제대로 된 성교육의 마련을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며 이를 위한 임신과 낙태, 육아의 문제를 여성문제가 아닌 사회문제와 복지문제로 바라보는 가치전환이 필요하다. 낙태문제를 둘러싼 국지적인 논쟁 대신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아쉽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남학생1) 임신이 싫으면 혼전에 순결을 지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혈기왕성여학생) 낙태를 비혼자만 한답디까!
남학생2) 여하간 임신이 싫다면 사전에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혈기왕성여학생) 책임지고 싶지 않다면 남자들이야 말로 결혼을 했던 안했던 섹스하지
말던가 정관수술을 받던가 하십시오, 왜 이미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고통
받는 여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넘깁니까!
남학생3) 그럼 여자들의 부담감 때문에 아이들이 태어나 보지도 않고 죽어도 됩니까!
혈기왕성여학생)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단지 데이트하기 싫은 놈이랑 데이트 나가는 정도의 부담인 줄 아는 거 아니예요!
남학생4) 다들(하지만 주로 진정의 대상은 여학생) 좀 진정하세요. 그러니까 현재 법에서는
장애아나 강간에 의한 낙태는 허용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그런 피치못한 사연이 있는 허용범위 외에는 태아의 생명권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혈기왕성여학생) 그럼 아버지가 강간범이거나 스스로 장애가 판별된 태아는 죽어 마땅합니까!
아마 나나 남학생들이나 우리들이 서로에게 일갈하던 이야기들의 구절구절이 각자의 순수의도 100%는 아니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주장하는 바가 있는데 토론이 격양되다보니 서로 극단적으로 쎄게 표현하게 된 것이 다수 있었을 터였다. 나이가 들고 남자들이 왕창 우글거리는 회사를 다니면서 그나마 극단적 표현이 오가던 땍땍이 소리를 듣던 학교에서 했던 토론들은 그나마 매우 존중적이고 토론할 만 한 것이었지만 사회에서는 그러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행히 웬만해서 논쟁이 될 만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 영리함이 내게 생겼다. 하지만 가끔씩 드라마에서 헤어진 여자가 임신하여 나타나는 류의 에피소드라도 날라치면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이런 갈등의 수준은 그 때로부터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졸업한 지가 10년이 넘었으니 이런저런 기억들이 귀여운 추억들이 되고 그나마도 애써 꺼내보지 않으면 먼지앉은 채 기억 밑바닥에 개켜져 까맣게 잊고 있기 마련인데 아침에 도마 위에 오른 모자보건법이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뭉게뭉게 떠올랐더랬다. 처음엔 빙긋 웃었지만, 아직도 그 때로부터 이 문제를 둘러싼 의식이나 개선이 없었다니 아쉬웠다. 기사가 된 낙태의 허용범주에 대한 문제는 겉으로 보기엔 여성의 신체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충돌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낙태의 문제는 여성 개인에게 있어 문신이나 피어싱, 성형수술 같은 종류의 변화나 결과와 전혀 그 맥락이 다르다. 여성에게 임신과 낙태의 문제는 생명을 걸고 출산을 감수할 것인가의 결정인 동시에 출산을 결정함으로써 생기는 사회적 삶의 전면적 변화에 대한 선택이다. 따라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신체결정권의 충돌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낙태 허용의 임신시점에 대한 판단과 더불어 사회적 양육의 책임, 피임을 포함한 제대로 된 성교육의 마련을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며 이를 위한 임신과 낙태, 육아의 문제를 여성문제가 아닌 사회문제와 복지문제로 바라보는 가치전환이 필요하다. 낙태문제를 둘러싼 국지적인 논쟁 대신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노력이 아쉽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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