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촌에서 나고 자란탓에 고향사람들이 구사하는 일상어와 어법에는 비교적 밝고 익숙한 편이다. 인사치레 말이나 그 어투, 상거래용어에 거의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딱하나, 곡물 거래 표현법에 있어서는 여전히 낯이 설고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게 사실이다. 흔히 보면 곡물을 내다 팔거나 사들일 때, 매도(賣渡)하는 행위를 ‘샀다’고 하고 매수(買收)하는 걸 ‘팔았다’고 말하는데, 그게 영 납득이 되지 않고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와같은 어법이라면 이해 못할 것이 없지만, 다른 생필품 거래 때는 사는 걸 ‘샀다’고 곧대로 말하면서도 유독 곡물에 관해서만 반어법을 쓰니 여간 헷갈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거래한 심청전만 해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 않다.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간 것을 팔려갔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곡물의 거래시만 다르게 말할까. 이것은 누구 한사람 실수나 의도에 의하여 생겨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만한 설득력을 가졌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타당성을 지니고 일상어로서 생명력을 갖고 읶을 것이다. 나는 일전에도 시골에서 한 평상에 살다가 최근에 내 집에 와 서 함께 계시는 노모로부터 똑같은 말을 들었다. 식량이 떨어져가는 모양으로 당신께서는 예의 ‘쌀 떨어졌다 한가마 팔아오라’ 하셨던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물론 가게에서 쌀 한포대를 들여놓았다. 의도를 알아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참 이상한 어법이다 ’ 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였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들어온 말리긴 하지만 이런 어법에는 여전히 낯이 선 것이다. 그래서 글을 써 온지 20여년이 넘었지만 아직 그런 어법의 표현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쓸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어법을 사용했다가 남들로부터 눈총을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일상어로 굳어진 말이긴 해도 그만큼 확신이 없고 흔들리는 탓이다.
한데, 얼마 전에 어느 글방에서 이 어법으로 과감하게 부려 쓴 작품 한편을 읽게 되었다. 읽는 순간, 신선하다는 느낌 마저 들었다.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떡살을 팔았다. 집에서 찧어먹는 것은 아예 찹쌀을 섞은 것이라 가래떡을 뽑을 수 없다. 맵쌀만 해야 찰지고 떡국을 끓여도 퍼지지 않는다. 시장에서 쌀 한말을 팔아오며 생각이 많다.” -소설가 박래여의 ‘농촌노인과 설맞이’라는 작품의 일부.
분명히 작가는 설을 맞아 떡국용 가래떡을 뽑기 위한 쌀을 매입해오며 ‘팔았다’고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대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대단한 용기구나 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찜찜하게 여긴 것은 사실이다. 한편, 나는 왜 우리 조상들이 곡물만은 예외적으로 그런 표현법을 쓰게 됐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혹시 복(福)은 불러들여야 하는 것이지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처럼, 곡물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파는 행위는 사는 행위로 에둘러 덮고, 사들인 일은 어차피 들어오는 것이니까 구분을 하기위해 ‘팔았다’고 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옛날 농촌에서는 곡물이 곧 돈이었음으로 곡물을 파는 것은 돈을 마련하기 위함이니 '돈을 샀다'는 의미에 방점을 둔 표현법은 아니었을까.
농작물은 사람의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다른 가치관을 우위에 놓고자 해도 이 생명을 지켜주는 엄연함을 넘어 설수는 없다. 그 중심에 쌀이 있다. 쌀은 한자로 ‘米’로 표현한다. 이를 파자하면 88이 되고, 그래서 나이로는 미수(米壽)를 지칭하게 된다. 그런 한편으로 이 88의 숫자는 쌀농사 지으며 일손이 많이 간다는 의미로 널리 인용된다.
지금은 먹을 게 지천이지만, 옛날에는 먹는 걸 해결이 주요문제였다. 그래서 공자님도 정치에서 제일의 덕목은 배곺음을 해결이라 했고, 북한을 통치하며 김일성도 ‘이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여주겠다고 공언했다. 한편, 옛 어른 들은 쌀 한 톨이라도 수채로 나간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그만큼 소중하고 절실하게 생각했음을 일깨워준다.
아마도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탓일 것이다. 내가 전에 농민들이 우루과이 라운드에 반대하며 벼 포기에 불을 질러 태우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듯 했던 것은. 최근에 숭례문이 불타 쓰러졌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 못지않았다.
밥굶지 않고 산 내가 그런 심정일 때 옛날 사람들은 더한 마음을 가지고 살지 않았을까. 곡물을 그 어떤 것보다 각별하게 생각하고 살지 않았을까. 집안에 있는 대나무는 베어 팔면서 팔았다고 하고, 못쓰게 된 농기구는 새것으로 교체하며 사왔다고 하면서도 유독 곡물만은 반대로 말해온 것은 혹여 그런 각별한 마음이 담겨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예의, 어떤 신앙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새삼스레 박래여 소설가의 거칠 것 없는 표현법을 대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2008)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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