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명 돈봉부’ 영천도 청도 뺨치는 돈선거
“출마를 포기한 후보자에게 접근해서 ‘돈만 주면 한나라당 조직 동원해서 도와주겠다’고 속여 돈을 뜯어낸 뒤 가로챘습니다. 일부는 후보자에게 돈을 받아서 유권자한테 뿌렸고, 나머지는 선거운동원들이 각자 논·밭을 장만하고 소를 사기도 했습니다. 시의원 등 지도층까지 나서서 돈선거를 하는 게 우리 선거판의 현주소입니다.”
경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4일 지난해 12월19일 치러진 경북 영천시장 재선거 관련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사건을 이렇게 정리했다. 특정 후보 지지부탁과 함께 돈을 받아 수사대상에 오른 주민만 현재 100명을 넘었다. 경찰은 현재까지 돈을 건넨 후보자 김아무개(69·전 영천시의회 의장)씨, 김씨로부터 돈을 받아 가로챈 서아무개(43·전 영천시장 비서실장)씨와 영천시의회 의장 임아무개(63)씨 등 20명을 구속했다.
경북 청도 선거 파문에 이어 불거진 이번 ‘영천 돈선거’는 선거 뒤 낙선한 김씨가 서씨 등에게 돈의 사용처를 따지다 다툼이 벌어져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불거졌다.
‘돈선거’는 지난해 12월 초 서씨가 이미 재선거 출마를 포기한 김씨에게 접근하면서 시작됐다. 서씨는 김씨에게 “당공천을 받으려면 5억원이 필요한데 이번에 공천이 없으니 당조직원을 동원해 선거를 도와주겠으니 3억원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서씨가 현직 국회의원 동생을 소개해줘 그를 만났는데, ‘후보 등록 일주일 뒤 여론조사에서 3위 안에 들면 도와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 돈을 건넸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조사 결과, 해당 국회의원 동생의 개입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서씨는 4차례에 걸쳐 7300만원을 받아서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또다른 한나라당 당원인 정아무개(58)씨와 최아무개(58)씨도 김씨에게 접근해 ‘당조직원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해주겠다’며 활동비로 4차례에 걸쳐 1억4500만원을 받아 한나라당 당원인 동책 등 24명에게 100만원~1300만원씩, 모두 7400만원을 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김아무개(60)씨 등 동책 24명은 이 돈을 받아 유권자 수백명에게 한사람에 5만~10만원씩을 나눠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수사 결과, 유권자들에게 뿌려지지 않은 나머지 돈은 당조직원들이 각자 땅을 사거나 소를 사는 등 개인적으로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씨는 시의원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고, 이 가운데 2명이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구속됐다. 김씨는 빚을 얻어 선거자금 2억5천만원을 마련해 쓴 것으로 밝혀졌다.
김광수 경북경찰청 광역수사대장은 “선거운동을 돕겠다고 후보자로부터 돈을 받은 뒤 착복한 경우가 많지만, 돈을 받은 유권자들도 수백명은 될 것으로 본다”며 “자수를 하면 법이 허용하는 한에서 선처해 주겠다”고 말했다. 영천/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