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ㅎ(53)씨는 2006년 2월부터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한 여성이 돈을 받는 조건으로 직장 상사의 사생활을 보고한다’는 내용의 소설을 연재했다. ㅎ씨는 실제 블로그 회원 가운데 한 명인 ㅇ씨를 소설 속 여자 주인공으로 암시하는 내용을 소설에 남겼다. “99.5%가 실화”라는 ㅎ씨의 설명에 회원들 사이에선 실제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증이 커져갔다. 같은 해 5월 ㅎ씨는 ㅇ씨와 아는 사이인 블로그 회원과 인터넷을 통해 ‘일대일 비밀대화’를 하다가 “꽃뱀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자, ㅇ씨의 블로그 닉네임(필명)을 알려주며 “주소·실명도 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ㅎ씨는 블로그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명을 알고 싶은 사람은 비밀글, 쪽지, 메일을 보내라. 사진도 보내줄 수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를 안 ㅇ씨는 ㅎ씨를 명예훼손 혐의(정보통신망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고소했지만, 1심과 항소심은 “일대일 비밀대화의 내용은 불특정 또는 다수의 사람이 알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1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비록 개별적으로 한 사람에 대해서만 사실을 유포했다고 하더라도 불특정 또는 다수의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공연성’의 요건을 충족한다”는 판례를 들어, “인터넷을 통해 일대일로 대화가 이뤄졌다 하더라도 대화 상대방이 그 내용을 불특정 또는 다수의 사람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므로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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