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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돌팔이 의사를 찾아서(The great escape)

등록 2008-02-19 14:46

바이크로 철조망을 뛰어넘는 스티브 매퀸. 최고의 명장면이다
바이크로 철조망을 뛰어넘는 스티브 매퀸. 최고의 명장면이다
탈주본능!

1963년에 발표된 미국영화 '대탈주'(The great escape) 를 잘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스티브 매퀸,제임스 가너,찰손 브론손,제임스 코번 등 당대의 유명배우가 여럿 등장하고 그 방대한 스케일과 탄탄한 줄거리 등 당시로써는 초일류라 해도 손색이 없는 영화임에 틀림이 없다. 난 개인적으로 스티브 매퀸(Steve Mcqueen)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그 영화에 열광했고 아직도 스티브 매퀸의 바이크 도주씬이 그 영화의 최고 하일라이트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탈주‘
‘대탈주‘

스티브 매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왠지 고독과 우수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이자 매력인데, 액션 영화라 할 수 있는 '대탈주' 중에서 나를 그런 표정으로 만들게 하는 장면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탈출하기 위해 병을 감춘 콜린
헨들리(좌) 와 시력을 잃은 콜린(우)
헨들리(좌) 와 시력을 잃은 콜린(우)

대탈주에서 신분증을 위조하는 영국군 출신 콜린(사진 오른쪽)과 물품을 조달하는 미군출신 헨들리(사진 왼쪽)는 각각 국적은 다르지만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그런데 콜린은 탈출을 앞두고 위조작업에 눈을 혹사하다가 시력을 거의 잃게 되나 그 사실을 숨기고 탈출하는 날을 기다린다. 친구인 헨들리는 그런 사실을 눈치채고 콜린이 과연 탈출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게 된다. 콜린 본인도 탈출이 힘들다는건 알고 있었지만,그는 자유가 너무도 그리웠다.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작은 물건이 떨어진 것도 볼 수 있다며 앞이 안보인다는 것을 감추고 탈출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하지만 그 물건은 콜린 자신이 일부러 떨어뜨린후 몇번이고 줍는 연습을 해서 남들을 속인것이었다)

헨들리는 콜린이 시력을 거의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자기가 콜린을 책임지고 돌보겠다는 생각에 함께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나는 왜 그 장면을 볼 때 왜 약간은 어둡고 우울한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을까?


돌팔이 의사를 찾아서

3년전 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일본의 한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직장선배와 한바탕 싸운뒤 사표를 던지고 실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일자리를 찾았지만 생각만큼 쉽게 구해지질 않았고 아르바이트와 다름없는 비정규직 생활을 하며 그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체험했다. 내가 하는 일은 그곳의 정사원들이 해낼 수 없는 일이었으나 급료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내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정사원들은 나를 동정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걸 관두면 당신은 뭘 해먹고 살거냐는 소리를 그곳에서 일하는 정사원인 한국사람으로 부터 들었을때는 내가 사표를 낸 것이 성급했었나?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하지만 후회하고 싶진 않았다.
생활비는 점점 바닥이 나고 체류할 수 있는 비자도 불과 1개월도 남지 않았을때 면접을 보았던 어떤 회사로 부터 최종합격통보를 받았다. 입사가 되면 비자 연장도 가능하고 생활비도 문제가 없기에 난 그저 기뻤다.

입사를 위한 서류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건강진단서'라는 것이 필요했다. 건강진단서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해서 키/몸무게/시력/청력/X레이 검사만 들어가면 문제가 없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가까운 의원에 가서 필요한 항목들을 설명한 뒤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마치고 건강진단서를 받을때 의사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오른쪽 폐에 그림자 같은것이 보입니다. 이 사진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지만 결핵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진단서에는 이렇게 적어주었다. "오른쪽 폐에 결핵으로 의심되는 그림자가 보임"

그것은 나에게 치명적인 것이었다. 물론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정말로 결핵으로 판명될 경우 회사에서는 '입사취소'를 시키지는 않겠지만 '치료가 끝난후 입사하라'라고 말 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난 치료가 끝나기 전에 비자기간이 만료되어 일본을 떠나야하고, 입사는 자동적으로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난 그 진단서를 가지고 집으로 와서 한참을 고민했다. 솔직히 말해서 진단서 한장 위조하는 것 쯤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거짓말 안하는 것을 삶의 최고 미덕으로 삼고 있는 나인지라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놓쳐버리면 다시 못 올 찬스를 이대로 물거품으로 만들것인가?? 난 영화 대탈주의 '콜린' 생각이 났다. 다시는 오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병'을 속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솔직하게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기회를 포기할 것인가...영화속의 콜린의 마음이 이런 것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솔직히 난 그때 절박했다.

고민끝에 내가 내린 결정은 '돌팔이 의사'를 찾는 것이었다. 시설이 낙후된 병원,의사가 은퇴직전이라 의욕도 없고 대강대강 진료를 하는 병원, 불친절한 병원을 찾아서 다시 X레이를 찍으면 "이상없음"이란 진단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먼저 인터넷 검색엔진인 구글에서 내가 사는 곳의 지명과 '불친절' '대강대강' '돌팔이 의사' 라는 검색어를 집어넣고 환자들의 평판들을 종합하여 '최적의 후보지'를 선정했다. 그리고 누구나 빨리 집에 가고 싶어하는 시간인 토요일 마감 직전의 시간을 골라 그 병원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병원은 썰렁했으며 할아버지로 보이는 의사가 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내가 필요한 건강진단서의 요건을 설명하고 간단한 신체검사를 한뒤 X레이 촬영기 앞에 섰다. "아...여기서 내 앞길이 결판나는 구나"... 하지만,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차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즉, 간호원이 차근차근 말해주는 것과는 다 반대로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X레이가 흐릿하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숨 들여마시고 참으라고 하면 일부러 숨 계속 쉬고, 가슴을 바짝 붙이라고 하면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사진을 나이 많은 의사는 대강 한 번 훑어본후 볼펜을 들어 "이상없음" 이라고 진단서에 기록해 주었다.

그 진단서를 받았을때 난 솔직히 기뻤다. 난 거짓말도 하지 않았고, 병이 있다는 검사결과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사마다 '개인 소견'이 다른 것에 불과하다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진단서를 제출했고 문제없이 그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영화 대탈주는 틀림없는 '액션영화' 이다. 하지만 내게는 단 몇 분 밖에 나오지 않는 콜린의 이야기가 얼마나 뼈저리게 와 닿았는지 모르며 액션영화라기 보다는 하나의 서스펜스와 심각한 주제의 영화로 느껴졌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한때나마 주인공인 콜린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은 내게 지금도 소중한 재산이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속의 콜린은 탈출에 실패하여 목숨을 잃었지만 나는 탈출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콜린의 시력은 회복할 수 없는 것이지만 , 난 이미 X레이를 찍어도 아무 이상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제 '탈출'만 남았을 뿐이다.

‘대탈주‘
‘대탈주‘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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