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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사랑해요 LG?직원부터 제대로 사랑하시길

등록 2008-02-20 13:50

LG전자 직원 왕따 사건 관련하여 인터넷에 퍼졌던 이메일을 본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오늘 아침에 그 직원의 긴긴 전쟁이 승소로 끝난 기사가 났다. 처음 그의 사연을 접했을 때는 참 억울하겠구나 하고는 무심결에 지나갔었고, 내가 본격적으로 유사한 상황에 노출되고 나서는 십분 공감하며 떠올렸지만 그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조차 몰랐고, 그 기사를 보면서는 다행이구나 생각을 하면서도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그 긴 기간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 시간에 구자홍 씨는 단 한 번이라도 검찰에 출두한 적이 있을까? 아니, 그 직원의 이름 석자는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나는 지금 그가 부럽다. 그의 승소만이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버텼다는 것이 부럽고, 그가 낯뜨거울 정도로 노골적인 물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부럽다. 하지만 나는 그가 부러운 만큼, 그가 얼마나 지난 세월을 피고름 짜는 고통으로 보냈을 지가 너무나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 뻔한 부당함을 세상으로부터, 아니 공권력으로부터 인정받는데 무려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6년 12월 말에 4분기 경영설명회 자료를 준비하는 자리였다. 프로젝터로 쏘아 자료화면을 보다가 그룹장이 자료화면을 쏘던 모 대리에게 기획팀 다른 그룹에서 만들었다는 자료를 열어보라고 했다. 그 대리가 그 자리에서 자기 인트라넷을 열었는데, 그 대리의 메일함에 제법 들어와있는 그룹장의 메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료를 꺼내기 위해 어떤 메일을 하나 열었는데, 그룹장이 보낸 자료메일의 수신인이 펼쳐졌다. 보니까 나를 제외한 전 그룹원과 심지어 이 그룹에 있다가 기획팀내 다른 그룹으로 이동해간 사원의 이름까지 있는데 내 이름만 없었다. 아마 그 대리의 메일함에 들어있던 수많은 그룹장의 자료 메일들은 태반이 '그 대리만 받은 것'이 아니라 '나만 못받은 것'인 듯 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혹시라도 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실낱같은 마음으로 수신받지 못했다고 말을 했는데 "전에 보낸 적이 있는 자료다"라고 화를 내면서 그룹장이 가버렸다. 전에도 그룹장으로부터 자료 화면 같은 것을 그닥 받아 본 적이 없을 뿐더러, 그러다 보니 보냈다면 잊어버릴 턱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것을 이야기할 의지가 상실된 것은 돌연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간 그룹장과 자기가 보내 주겠다면서 애써 수습을 하는 차장을 보면서였다. 의도된 수신자 미지정이니 설명이 필요없는 상황이었다. 부친상을 당한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손에 칼이 있으면 가서 찔러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미 정신적으로도 쇠잔했고 소외감은 극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옆 부서 동료로부터 자원해서 부서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면서 내가 없는 회식자리에서 그 그룹장이 "이은*랑 친하게 지내지 마라. 니가 그 애를 잘 몰라서 그런다(같이 다니는 거다)"라고 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7년째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사원을 앉혀놓고 그런 말을 했다니 내 귀에는 위협으로 들렸지만, 소심하고 착한 동료는 내 걱정이 먼저 되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을 전해주면서 "어떻게 부모 상 당한지 열흘 된 자기 부서원을 두고 같이 놀지 말라고 할 수가 있냐"며 눈물을 훔치던 동료였지만, 그 동료가 일을 계속 해야 하는 상황을 뻔히 알면서 그것을 증언해 달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었고 그것은 나의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결론이 뻔해 묻고싶지 조차 않은 상황이었다. 분쟁이 시작되고 나서 절절하게 깨달은 것은 차라리 스스로 착한척하지 않는 무식한 기득권과의 싸움은 흔적이라도 남지만, 스스로 점잖은 척하는 교활한 기득권과의 싸움은 훨씬 기함하고 넘어갈 일이 많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그래서 상황이 명백하게 보이는 당신이 낫소"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야말로 그가 쓴 웃음 짓고 말 것이란 것을 말이다. 나는 그의 사연이 구구절절 나오지 않아도 그가 내부고발을 한 이후로 벌어진 부당 발령이나 대기발령, 징계, 노력 과정에서의 황당한 가해들 앞에서 매번 얼마나 휘청거릴 정도로 타격을 받고 힘들었을지를 알고 있다. 그는 아마도 이미 당한 불이익에도 힘들었겠지만 그 해결의 노력 과정에서 회사가, 또 사회가 보이는 과정에서 매번 절망했을 것이 뻔하다. 어떻게 아냐구? 나는 이의제기로 인한 진정과정이 이제 막 1년 남짓인데도 거의 임파선 부종과 감기, 온갖 구강 염증을 만성피로와 같이 달고 산다. 굳이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혹은 우울증의 증상이 시작되고 나서는 정신만 아픈 것이 아니라 몸도 아프다. 뿐인가? 분쟁과 관련된 매번의 과정마다는 연락을 기다릴 때마다 사람이 거의 초죽음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그가 비록 이겼어도 산뜻하게 기쁘거나 얏호 소리가 나는 승리감은 없을 것이며, 매우 허탈하고 씁쓸한 뒷맛을 느끼고 있을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과 또 나의 형국을 돌아보면 한국 사회에서 학교를 성실히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닌 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뭘까를 되묻지 않을 수 없고 그런 되물음 끝에는 '빛 좋은 개살구'란 옛말이 떠오른다. 정년을 채우기 힘들면서 경력직으로 이동도 여의치 않은 한국사회에서 연구직이 아닌 사무직으로 삼십대 후반이 되고 사십대가 되고 다시 오십대를 바라보게 된다는 것은, 점점 고개숙인 자아와 만나는 일이 되기 쉽상이다. 우리 사회는 있어야 할 정치가 부재된 동안, 직장 생활 안에까지 깊숙히 개입된 정치가 난무하다. 그리고 점점 조직사회 내의 여당은 시스템이니 고과니 하는 일견 합리적이거나 합법적인 툴을 강화하여 그것으로 숙적은 커녕 쨉도 안되는 라인 밖의 사람들을 밀어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자신의 의지가 개입된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데, 소위 '본보기'라는 이름으로 기득권의 권위를 과시하고 다지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면 일반 대기업 직장인들은 이걸 모르나? 설마 그럴리가... 아마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겠지만, 그것에 조용히 묻어가던가 조용히 스스로 하차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휩쓸려 떠밀리던가 할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묻어가나 하차하나 떠밀리나 그닥 행복하지 않은 것은 비슷해 보인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렇게 살아남은(?) 자들은 행복하냐인데, 얻은 것과 행복은 별반 비례하지 않아보인다는 것이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불안해지기는 꼭 돈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여하간.

우리 나라처럼 사법제도가 약자의 편이 아니고, 대기업의 힘이 비대하게 크고, 그들의 큰 힘이 사회 전방위적으로 로비하여 유착되어 있는 사회에서 이제 이런 기업내 왕따는 근로자를 교묘히 탄압하는 방법으로 쓰이고, 지치는 싸움으로 이끌며, 당한 사람이나 행한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을 몽땅 피폐하게 하여 결론적으로 사측의 노동자 탄압 방법으로 악용된다. 이런 왕따의 문제는 부패방지 특별법으로 편입하여 제대로 다루고 예방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끝으로, 오랜 싸움을 승리로 이끈 LG전자 직원분에게 박수와 위로를 보낸다. 오랜시간 우리 머릿 속에 "사랑해요 LG"라는 로고와 배용준, 최지우의 미소로 왜곡 포장된 LG전자의 이미지에 제대로된 진실의 빛깔을 덫칠함으로써, 억울한 이 사안에 대한 유종의 미는 우리들이, 세상이 내려줬으면 좋겠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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