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앙
이신철 교수 연구분석
“김일성정권 하수인 아니라 연방제로 정책전환에 기여”
조소앙(1887~1958)과 안재홍(1891~1965) 등 한국전쟁 이후 자의든 타의든 북으로 들어간 재북 민족주의자들은 김일성 정권의 하수인에 불과했다는 보수적 시각이 그동안 학계에서 통용되어 왔다.
이와 달리, 이들이 1950년대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통일운동을 펼쳤으며 이런 움직임은 북이 연방제로 통일정책을 바꾸는 데 나름의 기여를 했다는 연구분석이 나왔다.
이신철 성균관대 연구교수가 최근 펴낸 <북한 민족주의 운동 연구-1948~1961, 월북·납북인들과 통일운동>(역사비평사)은 분단과 전쟁의 와중에 북으로 들어간 민족주의자들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 첫 연구서다.
이 교수는 결론적으로 북한 정부의 통일노선이 정부 수립 이후 ‘민주기지론’에서 60년대 이후 ‘연방제’로 바뀐 데는 이들의 역할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민주기지론이란 ‘혁명’에 성공한 북한을 근거지로 반제 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통일 노선이다.
지은이는 그 근거로 조소앙 안재홍 등 재북 민족주의자들이 1956년 7월 결성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재북평통)의 활동이 상대적인 독자성을 보였음을 강조했다. 이들은 재북평통을 결성하면서, 분단상황이 계속된 사유로 “통일에 대한 견해와 방법에서 남북 당국의 의견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승만의 침략정책과 독재정치를 분단의 뿌리로 본 북한 정권의 견해와 크게 다른 것이다. 조소앙과 안재홍은 또 ‘남북 정부 연합론’을 폈다. “사회주의 체제와는 다른 민족주의 노선을” 북한 사회에서 표방한 것이다. 이들은 특히 재북평통 창립 선언문에서 통일정부가 ‘민주통일 연합정부’ 또는 ‘통일민주 자주 연합정부’임을 분명히하고 있다. 이는 당시 북의 통일전선 조직체인 ‘조국전선’의 노선과 명확히 다르다는 점에서 ‘재북평통의 북 정권 하수인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이 교수는 밝혔다. 그는 또 재북평통 간부 19명 가운데 12명이 우익 활동 경력의 소유자인 점도 ‘상대적 독자성’의 근거로 들었다.
여기에는 정세 변화도 영향을 끼쳤다. 스탈린 사후 옛소련이 평화공존 정책을 추진한데다, 전후 복구에 주력해야 하는 내부 사정 때문에 북 정권이 재북 민족주의자와 함께 평화공세를 펼치게 되었다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당시 남쪽에서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이 힘을 얻게 된 것도 재북 민족주의자들을 고무시켰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1958년 들어 중단된다. 북 정권이 재북평통에 사회주의 체제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활동이 사실상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961년 홍명희 등 남한 출신 명망가들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구성됐으나 이 단체에 재북평통 출신은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정부기구적 성격이 강한 조평통이 통일운동의 전면에 나서면서 재북 민족주의자들의 역할도 사실도 끝난 셈이다.
이 교수는 “김일성이 60년대에 연방제 통일 방안을 제시한 데는 김구나 재북 민족주의 세력과의 연대 경험이 일정하게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안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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