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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 딸 추워서 어떡하나…우리 아들 얼마나 아플꼬”

등록 2008-02-21 10:50수정 2008-02-21 16:27

20일 오전 1시40분께 육군 모 항공단 소속 UH-1H 헬기 1대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인근에 추락, 장교와 부사관, 병사 등 7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숨진 탑승자들. 위 왼쪽부터 조종사 황갑주 준위, 조종사 신기용 준위, 정재훈 대위, 선효선 대위. 아래 왼쪽부터 최낙경 상병, 이세인 일병, 김범진 상병. 연합
20일 오전 1시40분께 육군 모 항공단 소속 UH-1H 헬기 1대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인근에 추락, 장교와 부사관, 병사 등 7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숨진 탑승자들. 위 왼쪽부터 조종사 황갑주 준위, 조종사 신기용 준위, 정재훈 대위, 선효선 대위. 아래 왼쪽부터 최낙경 상병, 이세인 일병, 김범진 상병. 연합
[현장] 육군 헬기 용문산 추락…사망자 유족들 오열
두 딸 두고 간 선효선 대위, 보건 선생님 되려 했는데…

“우리 딸 추워서 어떡하나. 불쌍해서 어떡하나. 우리 딸…맨살이 다 보이네.”

성남 국군수도병원 검안소에 한 쪽에 눕혀진 선효선(28) 대위 주검은 사고가 나던 19일 밤 옷차림 그대로다. 간호장교 선 대위는 얇은 속옷과 피 묻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국군철정병원에서 19일 밤 당직근무를 하던 중 뇌출혈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분당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하기 위해 황급히 후송작전에 나간 상황을 주검은 증명하고 있었다. 선 대위의 시어머니 이영자(53)씨는 추위에 떨고 있는 듯한 그녀의 주검 앞에서 주저앉아 통곡했다.

숨진 선 대위에겐 두 딸이 있다. 5개월된 딸 은결이와 2살 은채. 근무지가 강원도 홍천 철정병원이라, 분당 시댁에 두 아이들을 맡겨 놓고 주말이면 보러가곤 했다. 엄마 젖을 물으면 쉽게 놓지 않는 젖먹이와 4살 은채는 주말이면 할머니와 함께 엄마의 퇴근을 기다렸다. 시어머니 이영자씨에겐 엄마를 기다리던 두 손녀의 모습이 선하다.

“5개월밖에 안된 은결이가 ‘엄마가 온다’ 그러면 어떻게 알았는지 늦게까지 잠도 안자고, 방실방실 웃으면서 지 어미 기다렸는데 이젠 우리 애기들 불쌍해서 어떡하나.”

선 대위는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게 힘들어 조만간 보건선생님이 돼 아이들과 함께 살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03년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줄곧 국군병원에서 근무해온 선 대위는 교원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두 아이를 맡아 길러주는 시어머니께 늘 미안해 했다.

이영자씨는 계속 울먹였다. “며늘아기는 매일 밤 내게 전화해 ‘바빠서 자주 못와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래도 주말에 올 때마다 저녁쌀까지 다 씻어놓고 가는 부지런한 애였어요. 내년 2월 전역하니까 1년만 더 참으면 같이 살 수 있다고 내게 미안해하던 애였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이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날 오후 간호사들은 수시로 이씨의 혈압 체크를 해야 했다.


선 대위의 시아버지 유병고(53)씨에게도 며느리는 각별한 존재였다.

“우리 며느리같이 착한 애를 본 적이 없어요. 전화를 받으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애였어요. 국가를 위해 열심히 군생활 하다가 아름답게 산화했습니다.”

유씨는 젖먹이 손주들에게 어머니의 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착잡해했다. “나중에 애들이 컸을 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애들인데…” 유씨의 눈에선 주루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난 20일 새벽 사고로 목숨을 잃은 선효선(28)대위와 남편 유영재(29)씨의 결혼사진이 선 대위의 미니홈피에 올려져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지난 20일 새벽 사고로 목숨을 잃은 선효선(28)대위와 남편 유영재(29)씨의 결혼사진이 선 대위의 미니홈피에 올려져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동료를 잃은 국군간호사관학교 졸업생들도 빈소를 찾았다. 한 직장동료는 “선 대위가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는데 늘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돌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선 대위의 미니홈피에는 평소 천사같은 마음씨로 환자를 대했던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남겼다. 의무병으로 선 대위와 함께 국군논산병원에서 근무했었던 권용근씨는 “항상 웃는 얼굴로 환자를 대하고 제일 친절하게 잘해주셨는데 안타까워요. 대위님” 이라고 추모글을 남겼다. 그에게 치료를 받았던 환자의 발길도 이어졌다. 박무언씨는 “국군강릉병원에 발가락을 다쳐 수술을 했을 때 항상 웃으며 약발라주시며 보살펴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정말 감사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픕니다” 라며 글을 남겼다.

최낙경(22) 병장의 어머니 송영신(49)씨가 빈소 앞에 붙어 있는 아들의 이름을 손으로 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최낙경(22) 병장의 어머니 송영신(49)씨가 빈소 앞에 붙어 있는 아들의 이름을 손으로 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제대 6개월 남겨둔 최낙경 병장
어머니 송영신씨 “우리 아들 볼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사고를 당한 최낙경(22) 병장의 어머니 송영신(49)씨는 빈소 앞벽에 붙여져 있는 자식의 이름을 손으로 매만지며 목놓아 울었다.

“네가 오면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는데… 이렇게 가면 어떡하니.” 가족들은 다시 송씨가 쓰러질까봐 빈소 안으로 데려갔다.

최 병장은 6개월 뒤인 올해 8월15일에 제대 예정이었다. 독자인 덕에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최씨는 ‘사회 경험을 일찍 하고 싶다’며 자원입대했다. 추운 겨울 발에 동상을 입었지만 가족들에겐 말 한마디 없었다. 지난 명절 휴가 나왔을 때 최 병장 부모는 아들의 발을 보고서 안타까움에 속을 삭였다.

최 병장 가족들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 뭐든지 스스로 열심히 했던 최씨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렸다.

최 병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아르바이트 하며 돈을 모아 전북 익산대학 자동차학과에 들어갔다. 최 병장의 아버지는 손에 이마를 얹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부모로서 제대로 못해준 게 너무 안타까워.”

아버지의 회한이 이어지던 중 홍천 부대에서 보낸 상자가 도착했다. 국가에 바친 아들의 유품은 간소했다. 사진, 치약, 통장, 비누, 귀마개 등이 상자에 담겨 있었다. 유품상자 앞에서 가족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어머니 송씨는 또다시 통곡했다.

“우리 아들 보고 싶으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내 아들 얼마나 추울꼬. 얼마나 아플꼬.”

분당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합동분향소엔 유가족의 통곡 소리가 이날 내내 이어졌다. 오후 4시부터 검안실에서 사고자 주검이 유족들에게 공개되자 빈소는 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검안실 밖으로 비명 소리가 넘어왔다. 남편의 처참한 주검을 확인한 아내의 “자기야, 가지마” 하는 애절한 소리도 들렸다. 빈소 곳곳에선 가족들이 실신했다. 죽은 아들과 딸의 이름을 부르다가 울다 쓰러진 유족들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김범진(22) 상병의 할머니 문은하(88)씨가 손주의 사진 앞에 국화를 놓던 중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
김범진(22) 상병의 할머니 문은하(88)씨가 손주의 사진 앞에 국화를 놓던 중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

지난 10월 결혼한 신혼 정재훈 대위
아내와 5개월 된 뱃속 아기 남겨두고…

사고로 숨진 국군철정병원 마취과 군의관 정재훈(33) 대위의 부인 이정미(32)씨는 이날 저녁 7시 충격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정 대위 부부는 지난해 10월 결혼한 신혼부부였다. 이씨는 임신 5개월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의 장인 이아무개(56)씨는 “사위가 내 딸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기에 세상을 다 얻은 듯 했는데 이런 변을 당하다니” 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세인(22) 상병의 어머니 김경자(51)씨도 오후 내내 빈소에서 목놓아 울었다. “아버지 정년 퇴임 전에 학자금을 받아야 해서 1년 늦게 입대했는데 그게 이런 변으로 이어지다니. 내 아들 살려주라”고 통곡했다. 김씨는 바닥에 쓰러져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 의료진이 도착했지만 김씨는 한사코 “죽은 내 아들과 함께 있을거다” 라고 말하며 움직이지 않으려 해, 주변의 눈시울을 적셨다.

네 아이 남겨두고 떠난 황갑주 준위
누나 황귀분씨 “동생은 항상 신중한 사람”

황갑주(35) 준위가 운전했던 사고헬기가 1966년부터 미군이 24년 동안 쓰던 것을 한국 육군이 1990년에 구입해 18년간 사용했던 낡은 기종이었다는 소식이 이날 밤 빈소에 도착했다. 이 소식에 비탄과 슬픔에 젖어 있던 유가족들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흥분하기도 했다. 황 준위의 누나 황귀분(40)씨는 “그동안 낡은 헬기 때문에 사고가 많이 났는데 지금까지 대책을 마련안하다니”라며 “동생은 항상 신중한 사람이다. 조종사 실수로 사고가 난 게 절대 아니다” 며 격분했다. 숨진 황 준위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셋과 2주 전 돌잔치를 연 한살배기 아이를 둔 네 아이의 아버지였다.

황 준위의 큰아버지 황윤갑(75)씨도 “기상이 안좋으면 차량으로 환자를 수송했어야지. 왜 훈련 나가 있는 헬기를 동원해서 사고를 내냐”며 군당국의 무리한 헬기 운영을 질타했다.

이날 오후 5시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김 장관은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 참담하다. 가족에게 뭐라 위로의 말씀을 전해야 할지 막막하다. 국가가 최대한 지원과 보상을 할 것이다. 내 아들도 군에 가 있는데 착찹한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또 김 장관은 “노후한 헬기였던 것은 틀림없다. 정말 죄송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형, 가지마" 이세인(22) 상병의 동생이 분향소에 놓여 있는 형의 얼굴 사진을 만지며 울고 있다.
"형, 가지마" 이세인(22) 상병의 동생이 분향소에 놓여 있는 형의 얼굴 사진을 만지며 울고 있다.

이세인(22) 상병의 어머니 김경자(51)씨는 빈소에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꿈이냐, 생시냐. 이게 삼일밤의 꿈이었으면" 하고 말하며 울부짖었다.
이세인(22) 상병의 어머니 김경자(51)씨는 빈소에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꿈이냐, 생시냐. 이게 삼일밤의 꿈이었으면" 하고 말하며 울부짖었다.

글·사진/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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