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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품안의 자식이라지만

등록 2008-02-21 11:21

아들 딸이 겨울 산행 가서 찍은 사진 / 한겨레 블로그 푸름살이
아들 딸이 겨울 산행 가서 찍은 사진 / 한겨레 블로그 푸름살이
딸이 떠났다. 이불보따리와 책 등을 바리바리 싣고. 방학이 끝난 것이다. 벌써부터 고 3이라고 책상 앞에 붙어 앉아 방학을 보낸 딸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파리한 얼굴빛 보면 늘 걱정이다. ‘공부도 몸이 건강해야 하는 것이다. 뭐든지 잘 좀 먹어라.’ 잔소리를 해도 ‘살 좀 빼고 싶다.’면서 밥은 고양이 밥이고, 반찬 역시 까다롭다. 아들을 위해서는 한약 한 제 지어준 적 없지만 딸을 위해서는 철마다 한약을 지어 먹일 정도다. 식성 좋고 성격 좋은 아들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다. 두 아이 성격을 섞어서 반씩 나누면 딱 알맞을 것 같다.

사실 요즘, 승용차로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곳으로 떠나보낼 아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 중이다. 대학 안 가겠다던 녀석이 어느 날 아무래도 대학은 가야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학교 내신이나 수능 성적으로는 괜찮은 대학 문예창작과를 갈 수가 없으니 실기시험이 있는 학교를 골랐다. 결국 인 서울은 포기하고 지방대학이지만 국립에다 아이가 원하는 문창과에 합격한 것이다. 아들에게 고마웠다. 재수 안하고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 포기해 주어서. 아들은 고등학교 때 신나게 놀았으니 대학 가서는 머리에 쥐나도록 공부해 보겠단다.

아랫집 형님이 공부 잘해서 장학생이 되면 좋은 이유 세 가지를 일러주었다.
첫째, 아는 게 많아진다.
둘째, 주위에서 인정받는다.
셋째,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다.

아들은 학교 옆에 하숙집 대신 자취방을 얻었다. 혼자 살아도 있을 건 다 있어야 하니 부엌살림 챙길게 참 많다. 챙기는 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밥은 해 먹고 다닐 수 있을지. 점심 저녁이야 학교 구내식당에서 사 먹는다고 해도 아침은 노상 굶고 다닐 것 같아서 걱정이다. 이젠 성인인데 괜한 걱정 한다고 남편에게 지청구를 듣는다. 그래도 할 수 없다. 그게 엄마니까. 벌써부터 밑반찬은 몇 가지나 해야 하며 며칠 먹을 것을 챙겨야 하는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들은 육 고기를 좋아한다. 아들 좋아하는 것만 해 주면 야채 섭취가 부족할 것 같고, 야채를 싸 보낸다고 먹기나 할지. 선배 어머니께 조언도 구해본다. 아무것도 할 줄 몰라도 스스로 알아서 잘 해 먹는다고 걱정하지 마란다. 어떤 어머니는 정기적으로 밑반찬을 바리바리 싸서 택배로 부쳤단다. 부친다고 다 먹을까. 반은 버리더란다. 그러니 해 달라고 하는 것 외에 해 줄 필요 없단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든가.

아들의 살림을 챙기며 친정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도 나를 떠나보낼 때 그러셨겠지. 없는 살림에 이것저것 챙겨주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더구나 아들도 아닌 어린 딸을 먼 도시로 유학 보내면서 마음은 또 얼마나 무거웠을까.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돈은 통장에 넣어주고 쌀과 반찬은 택배로 부치면 다음날 도착하지만 삼십 몇 년 전에는 택배라는 것이 없었다. 어머니께서 딸 한 번 보려면 큰 맘 먹고 첫 새벽에 출발해야 했다.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 반찬꺼리는 양 손에 들고 시간차를 세 번이나 바꾸어 타야 했으니 어머니에겐 참으로 힘들고 고달픈 일정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나를 키우셨지만 나는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궁상스럽게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고 짜증이나 내지 않았는지. 어미는 자식에게 있는 정 없는 정 다 쏟지만 자식은 오히려 짐스러워하지 않을까. 자유를 속박당하는 것 같지 않을까. 가끔은 나를 돌아보게 된다.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이기만 한 내리사랑이 자식에겐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나를 곧추세우기도 한다.
'그래, 아들도 이제 성인이다. 저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게 놔두자. 아니 내버려두자.'
하지만 짐은 택배로 부치고 아들 혼자 보내라는 남편 말이 매정해서 단칼에 잘랐다. 나 혼자라도 짐 싣고 아들과 같이 갈 것이니 걱정 말라고 성질 버럭 냈다. 그게 어미 마음인 걸 어쩌겠는가. 품안의 자식이라지만 품안 떠난 자식이 더 안쓰럽고 걱정스러운 게 어미 마음인 것을.

아들도 떠났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기 위해 하루 일찍 집을 나섰다. 아들 딸 떠난 집에 바람이라도 찾아와 웅성거려주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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