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인
[MB에 대한 개인적 생각] 1. 일 중독
※신문 지면에선 ‘이명박 당선인’이라고 쓰지만, ‘몰입 영어’의 차원에서 이 글의 제목엔 ‘AMBITOUS’에서 따온 ‘MB’라고 표기했다. 본문에선 ‘당선인’으로 적는다. <한겨레> 이주현 기자
내가 그를 지근거리에서 처음 본 것은 지난 2005년 4월1일이었다. 그날은 시청 출입기자가 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식목일을 맞아 시청 직원들과 시민들이 나무를 심는 행사가 열렸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당선인은 손수 나무를 심은 뒤 땀을 막 흘리며 행사용 천막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현재 시청 건물이 너무 좁으니, 지금의 (태평로) 자리에 더 넓은 시청 건물을 올리겠다”고 밝혔다. ‘깜짝 발표’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좁고 낡은 건물에서 불편해하던 시청 공무원들은 좋아라 했다. 그때는 ‘행복도시’ 이전 문제가 나라가 시끌시끌하던 때였고, 당시 여당에선 행복도시 이전에 반대하는 이명박 서울시장을 향해 “시청 건물이 좁다고 들었는데, 정부 청사가 옮겨가면 그 건물을 쓰라”는 말이 나오던 때였다.
어찌됐든, 이 당선인은 시청 건물을 짓는 작업에 착수했고, 나라 안팎 사람들을 대상으로 디자인도 응모했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현재의 시청 본관에 덧붙여 지어졌던 낡은 간이건물이 헐렸다. 공사 펜스도 올라갔다.
하지만 이후 취임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도시 디자인’을 강조하며 설계안을 몇번 바꾼 끝에 드디어 지난 18일 건축가 유걸씨의 설계안을 택했다. 서울시는 오는 3월에 공사를 시작해 3년(36개월) 뒤에 준공할 계획이다. 결국 디자인(설계)을 정하는데 2005년 4월1일~2008년 2월18일까지 3년, 공사가 2008년 3월~2011년 3월까지 3년 걸리는 셈이다. 디자인 바꾸는데 돈이 얼마얼마 들었노라고 언론에선 떠들었지만, 개인적으론, 나는 3년의 긴 시간이 걸렸더라도 이번에 확정된 설계가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전통, 시민, 미래’라는 설계의 기본 개념이 실제 건물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아직은 장담하긴 어렵지만, 유걸씨가 기존 작품에서 보여준 실력을 감안할 때, 그리고 전통, 시민, 미래라는 세가지 키워드는 앞으로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들이라는 점에서, 오세훈 시장이 더 좋은 디자인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빨리 건물을 지어야한다는 조급증에 몰입하지 않았던 데 대해서도 박수를 보낸다.
언젠가, 난 이 당선인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읽다가,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현대맨’ 생활을 떠올리며,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지금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만큼 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난 정말 그가 열심히 일했을 거라고 믿는다. 67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과 테니스를 쳐서 이기는 것이 행복”이라는 당선인이 지금보다 30~40년 젊었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때나 지금이나 체구는 깡말랐지만, 특유의 ‘깡’에 젊음이 얹혀져 그는 정말 ‘미친 듯’ 일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도 한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때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방학 때마다 벽에 모눈종이를 붙여놓고, 매일매일 공부한 시간을 기록했다. 집에서 꼼짝 않고 수학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를 암기했다. 당시엔 막대 그래프가 가장 높게 올라갔을 때가 가장 흐뭇했던 것 같다. ‘몰입 공부’를 한 것이다. 나 역시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만큼 공부를 열심히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대학에 와 보니, 그런 ‘몰입 공부’로는 도저히 ‘공부’를 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물론 공부라는 것이 열심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문제는 ‘문자’를 쫓는데 몰입해 열심히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입학할 때는 사회학 공부를 내 필생의 전문 영역으로 삼겠노라는 다짐을 했지만, 4학년이 되고 나자,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사회학은 너무 어려우니, 사회에 나가 10년 동안 인생의 경험을 쌓은 뒤 다시 학교에 돌아오겠다’고 결심하며 취직 공부를 시작했다. 이제는 안다. 왜 사회학 공부를 잘할 수 없었는지. ‘몰입 공부’로는 도저히 학문의 복잡다단하고 애매모호한 영역들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달빛에 옥수수가 익는다’는 인디언이 속담이 있다고 한다. 한낮 지글거리는 태양에 서 있던 옥수수는, 부드러운 달빛에서 속살을 익혀나간다. 실제로, 밭농사를 짓는 우리 아버지는, “곡식이 자라는 것은 아침에야 확인할 수 있다. 해질녘에는 잘 모르겠는데, 아침에 밭에 와보면 키가 커졌다”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당선인에게로 돌아와보자. ‘노 홀리데이’는 ‘몰입 업무’, ‘몰입 공부’와 비슷하다. 몰입만 해서는 도저히 이 복잡다단한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가 없는데, 어떻게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산업화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다른 점은, 개인의 개별성과 다양성이 진작됐다는 점이다. 유우익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도 지적했듯, 참여정부의 공은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받을 수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바로 ‘개인’과 ‘개인’, 또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차원에서의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눈가리개를 한 채 마부가 끄는 대로 한가지 방향으로 달려가는 말들의 질주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시대의 흐름, 시대의 가치를 읽어나가는 것은, 아마도 대통령이 가장 고민해야할 지점일 것이다. “날마다 변하는 것”는 당선인만이 아니다. 오히려 당선인 개인보다 더 빠르게, 세상의 인심이, 트렌드가, 경제 여건이, 문화적 취향이, 매일매일 변해간다. 그 미세한 변화를 읽어내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대통령을, 우리는 원한다. ‘이명박 대통령’ 그 자체는 시대정신의 성취물로 완성된 것이 아니다. 시대정신이 완성되는 순간은, 대선이 끝난 2007년 12월19일이 아니다. 국민들이 그에게 바라는 것은, 그가 시대정신을 모색하고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당선인이 이처럼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읽어나가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자신 스스로의 ‘깨달음’ 곧 ‘성찰’을 통해 이뤄진다. 주변 측근들의 조언이야 듣겠지만 이를 이해하고 종합해 집행·구현하는 것은 오롯이 대통령의 몫이다. 그런데, ‘성찰’은 일과 또다른 일 사이의 ‘틈새 공간’에서 벌어지는 행위이다. 쉬지 않고 일하고 공부한다면, 성찰의 시간을 갖기가 힘들다. ‘몰입’만으로는 시대정신을 ‘성찰’할 수 없다. 대통령이 ‘노 홀리데이’라면 국민들도 정말 피곤해진다. 지도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국민들 개인을 변화시켜서가 아니다. ‘노 홀리데이’로 살아가는 ‘프레지던트’는 ‘미스테이크’의 ‘리스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 ‘리스크’는 국민들 개개인의 ‘스트레스’로 돌아온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한 점을 꼽을 때, 국민들에게 쓸데없이 피로감을 줬다는 말을 자주 쓰지 않는가. 의사들은 몸이 피곤할 때는 차라리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은 채 ‘올해는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했기 때문에’ 일에 절은 몸을 바로 러닝머신에 올려놓는다면, 그것은 운동이 아니라 몸을 착취하는 것이다. 어떤 의사는 “휴식 없는 운동은 ‘의지의 한국인’이 아니라, 뇌를 이용해 몸의 신호를 애써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 홀리데이’를 자랑하지 말라. 이미 우리는 많이 자랐다. ‘쉬지 않고 공부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흘릴 나이가 된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달빛에 옥수수가 익는다’는 인디언이 속담이 있다고 한다. 한낮 지글거리는 태양에 서 있던 옥수수는, 부드러운 달빛에서 속살을 익혀나간다. 실제로, 밭농사를 짓는 우리 아버지는, “곡식이 자라는 것은 아침에야 확인할 수 있다. 해질녘에는 잘 모르겠는데, 아침에 밭에 와보면 키가 커졌다”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당선인에게로 돌아와보자. ‘노 홀리데이’는 ‘몰입 업무’, ‘몰입 공부’와 비슷하다. 몰입만 해서는 도저히 이 복잡다단한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가 없는데, 어떻게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산업화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다른 점은, 개인의 개별성과 다양성이 진작됐다는 점이다. 유우익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도 지적했듯, 참여정부의 공은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받을 수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바로 ‘개인’과 ‘개인’, 또는 ‘개인’에 대한 ‘사회’적 차원에서의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눈가리개를 한 채 마부가 끄는 대로 한가지 방향으로 달려가는 말들의 질주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시대의 흐름, 시대의 가치를 읽어나가는 것은, 아마도 대통령이 가장 고민해야할 지점일 것이다. “날마다 변하는 것”는 당선인만이 아니다. 오히려 당선인 개인보다 더 빠르게, 세상의 인심이, 트렌드가, 경제 여건이, 문화적 취향이, 매일매일 변해간다. 그 미세한 변화를 읽어내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대통령을, 우리는 원한다. ‘이명박 대통령’ 그 자체는 시대정신의 성취물로 완성된 것이 아니다. 시대정신이 완성되는 순간은, 대선이 끝난 2007년 12월19일이 아니다. 국민들이 그에게 바라는 것은, 그가 시대정신을 모색하고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당선인이 이처럼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읽어나가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자신 스스로의 ‘깨달음’ 곧 ‘성찰’을 통해 이뤄진다. 주변 측근들의 조언이야 듣겠지만 이를 이해하고 종합해 집행·구현하는 것은 오롯이 대통령의 몫이다. 그런데, ‘성찰’은 일과 또다른 일 사이의 ‘틈새 공간’에서 벌어지는 행위이다. 쉬지 않고 일하고 공부한다면, 성찰의 시간을 갖기가 힘들다. ‘몰입’만으로는 시대정신을 ‘성찰’할 수 없다. 대통령이 ‘노 홀리데이’라면 국민들도 정말 피곤해진다. 지도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국민들 개인을 변화시켜서가 아니다. ‘노 홀리데이’로 살아가는 ‘프레지던트’는 ‘미스테이크’의 ‘리스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 ‘리스크’는 국민들 개개인의 ‘스트레스’로 돌아온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한 점을 꼽을 때, 국민들에게 쓸데없이 피로감을 줬다는 말을 자주 쓰지 않는가. 의사들은 몸이 피곤할 때는 차라리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은 채 ‘올해는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했기 때문에’ 일에 절은 몸을 바로 러닝머신에 올려놓는다면, 그것은 운동이 아니라 몸을 착취하는 것이다. 어떤 의사는 “휴식 없는 운동은 ‘의지의 한국인’이 아니라, 뇌를 이용해 몸의 신호를 애써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 홀리데이’를 자랑하지 말라. 이미 우리는 많이 자랐다. ‘쉬지 않고 공부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흘릴 나이가 된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