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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삼성서울병원 증거인멸 현장 취재 후기

등록 2008-02-25 11:07

당시 상황을 찍은 사진.. 흔들리고 어둡고 신문에서는 쓸 수가 없었다. 검은 나무 그림자가 추위 속에 숨어있는 야산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 한겨레 블로그 goloke
당시 상황을 찍은 사진.. 흔들리고 어둡고 신문에서는 쓸 수가 없었다. 검은 나무 그림자가 추위 속에 숨어있는 야산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 한겨레 블로그 goloke
21일 새벽 12시20분께 야근 중인 편집국에 전화벨이 울린다. 택시기사라고 신분을 밝힌 이아무개씨가 양복을 차려 입은 손님을 삼성서울병원에 내려주며 들었다는 내용을 제보했다. "'출근 복장으로 지금 회사에 오라' '특검에서 압수수색을 나올 수 있으니 자료 다 치워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충격적인 내용.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삼성에서 조직적으로 자료를 지우고 있다'는 풍문이 현장으로 드러날 수 있는 기회였다. 곧바로 회사 차를 타고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향했다. 차량에 찍혀있는 <한겨레> 로고가 노출될 우려가 있어 삼성의료원 옆 큰길에 차를 세우고, 기사 형님께 차를 먼 곳으로 치우라고 말씀드리고는 추운 밤길을 걸었다.

'이 웅장한 삼성서울병원 어디에선가 불법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는 확률이 높다' '어디쯤에 행정, 정보 사무실이 있을까'... 마음이 무거웠다. 본관에 들어서자 긴급 소집에 늦은 것으로 보이는 양복을 차려입은 직원들은 낮은 목소리를 소곤거리며 본관 2층으로 향했다. 응급실을 제외하고는 불이 꺼져있는 한산한 병원에 오직 본관2층만은 수십 명의 직원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병원 안내판을 찾아보니 행정지원사무실과 정보지원실이 그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빙고'

늦은 밤이라 인적이 드문 병원을 헤집고 다닐 수는 없었다. 드문드문 배치된 보안 직원들은 그 시간까지도 무전기를 들고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불이 밝혀 있는 응급실 근처로 향했다. 본관 2층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현관이 그 옆에 있었다. 응급실에 온 환자 가족인 것 처럼 행세하며 담배를 피웠다. 가끔 응급실로 돌리는 걱정어린 시선은 필수였다.

직원들은 응급실 옆 현관을 통해 수십차례 들락날락 거리며 짐을 옮겼다. 현관 옆에 주차된 차량에 서류더미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4~5대 차량 뒷좌석, 트렁크에 가득할 정도의 분량이었다. 사진을 찍어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수십 명의 직원과 보안 직원까지, 따돌려야 할 시선이 너무 많았다. 응급실 건너편 야산에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몸을 숨겼다. 하지만 '똑딱이' 카메라로는 현장을 줌으로 땡기는 일도, 어두운 현장을 담아내는 일도 버거웠다.

다시 현관 앞으로 이동했다. 마침 손을 멈춘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짜증이 날 법도 할 일이었다. "집에 방금 들어갔다가 나왔다" "짜증난다" 등의 대화가 시작되더니,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원무과는 안해도 된단다" 전화를 받았던 이는 화색을 띄며 이야기를 했다. 결국 그들에게 이날의 작업은 짜증나지만 처리해야 할 회사 일, '야근 작업'에 불과했다.

법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공부는 안했지만, 법질서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판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깊은 밤 삼성서울병원은 탈법, 불법의 현장이었다. '증거인멸'이라는 형사상의 범죄.

누군가 "여차하면 이 차 끌고 검찰청으로 갈까보다"라는 말을 웃으며 던졌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 '작업'의 의미를. 하지만 그들 누구도 그 '작업' 지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다. 그들은 결국 '삼성'이라는 이름의 공범이 아니었을까?

새벽 4시30분께 후배 기자와 교대하고 자취방에 몸을 뉘었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삼성의 카피라이트는 결국 '삼성으로 하나된 패밀리'의 반어법이 아닐까? 인수위 식으로 '훼미리'라고 해야하나? 혼자 피식거리다 보니 잠이 쏟아진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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