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인용 `기억이 자존심에 굴복' 사실과 다른 진술
27일 전군표(54) 전 국세청장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재판부는 혐의 사실을 강하게 부인하는 피고인의 심리를 철학자의 말을 동원하며 상세히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고종주 부장판사)는 양형이유에서 "(뇌물을 전달했다는) 정상곤 청장의 진술이 사실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린 지금 피고인 전 전 청장이 확신에 찬 태도로 상대방을 비난하며 공소사실을 끝까지 부인해 온 것은 심리학 전문가들이 말하는 '인지부조화'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인지부조화'의 개념을 "왜곡된 과거의 기억이 확신으로 무장돼 자신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다는 점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공직에 근무하면서 정무직 공무원에 오른 피고인이 인사와 관련해 지방청장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았다는 명예롭지 못한 사실이 갑자기 세상에 드러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피고인이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자기 방어기제를 발동, 공소사실을 적극 부인하는 한편 잘못을 제3자에게 투사 또는 전가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내 기억이 '내가 그것을 했다'고 말한다. 내 자존심은 '내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고 말하며 요지부동이다. 결국 기억이 자존심에 굴복한다"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인용해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했다.
재판부는 끝으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 그것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나 끝내 인정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지점에 머물 수 밖에 없다. 피고인이 끝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속사정을 일면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조성미 기자 helloplum@yna.co.kr (부산=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helloplum@yna.co.kr (부산=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