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숙자들은 어디서 자야 하나? 노숙자들의 재활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안정적인 거주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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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들 이어 노숙자들도 빈집점거운동(스쾃) 나서
몸을 누일 집이 없어 거리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이슬을 맞고 한뎃잠을 자는 사람’이란 뜻에서 노숙자(露宿者)라고 부른다.
세상에는 빈집도 많다. 엄연한 주인이 있어 자물쇠로 꼭꼭 잠긴 채 사유재산권이 미치는 ‘빈집’말고도 ‘주인없이 방치된 빈집’들도 더러 있다. 주인없이 방치된 상태의 집에 비와 추위를 피할 곳을 애타게 찾는 사람들이 밀고들어가 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서유럽 등에서는 이를 ‘빈집점거운동(스쾃 Squat)’이라는 이름을 붙여 일종의 저항문화로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정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형법 제36장은 ‘주거침입의 죄’를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이에 대한 처벌을 밝혀놓았다.
형법 제36장 ‘주거침입의 죄’
형법 제319조 (주거침입, 퇴거불응)
①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전항의 장소에서 퇴거요구를 받고 응하지 아니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는 빈집점거 운동을 살펴본다. [편집자] 노숙자들 “빈집에 들어가 살 권리를 인정하라”
“다시 노숙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품고 열심히 살고 있다. 장사가 잘 되면 큰 사업을 하고 싶다.” 노숙자였던 임진택(30)씨는 지난해 9월부터 철거를 앞둔 서울 황학동 삼일아파트를 점거한 채 살고 있다. 가진 것 한푼 없고, 오랜 노숙생활로 몸도 마음도 망가진 임씨가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철거를 앞둔 삼일아파트를 점거하는 일이었다. 임씨와 함께 10여명의 노숙자들이 6월이면 헐릴 삼일아파트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삶의 보금자리를 꾸렸다. 이들은 노숙자운동단체들의 후원을 받아 ‘더불어사는집’이라는 모임을 꾸리고 빈집점거를 통한 새로운 형태의 노숙자 자활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노숙자 10여명 삼일아파트 점거…6월까지 잠정적 거주 인정
재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살 곳, 구청도 ‘어쩔 수 없어’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이 “빈집에 들어가 살 권리를 인정해달라”며 빈집점거에 나서고 있다. 사회운동단체인 평등연대와 빈집점거를 통한 노숙인 자활공동체를 꿈꾸는 ‘더불어사는집’은 16일 서울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노숙인들의 반란, 빈집점거’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더불어사는집’ 임진택씨는 노숙자에서 벗어나 재활을 하기 위해 동료들과 삼일아파트를 점거하게 된 사연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임씨는 “재활을 하려면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살 곳이 절실했다”며 “쉼터나 여러 자활기관 등을 전전했으나 마음놓고 살 만한 곳이 없어 죽기살기의 심정으로 주변 노숙자 10여명과 삼일아파트 점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임씨는 “지난해 9월 처음 아파트를 점 거했을 때 종로구청 직원들이 4차례 나와 유리창과 가구를 부수고 ‘나가라’며 못살게 했다“며 “겁도 나고 무서웠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버틸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임씨 등의 점거를 완강히 반대하던 종로구청도 노숙자 단체들이 철거에 강력히 항의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는 등 여론을 모아나가자 지금은 암묵적으로 아파트가 헐리는 6월까지 임시거주를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임씨는 “비록 일시적이지만 살 집이 생기자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며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전자부품 노점상을 하면서 재활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 등과 함께 삼일아파트에서 생활하며 ‘더불어사는집’을 지원하고 있는 양연수 민주노동당 빈민위원회(준) 위원장도 “불법 점거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노숙자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촉구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크다”며 “노숙자 운동의 소중한 씨앗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 위원장은 “노숙자들의 재활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거주권의 확보”라며 “장기적으로 국유지나 시유지를 점거해 들어가 노숙자 자활 공동체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구사회 “빈집점거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권리”
예술인들 ‘오아시스 프로젝트’ 통해 국내에 알려져
“주거권 확보뿐 아니라 노숙자 재활 공동체 만들겠다”
빈집 점거는 버려지거나 방치된 공간을 아무런 권리와 명분없이 들어가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목동들이 자신의 초지가 아닌 곳에 양떼를 몰고가 먹이던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빈집점거가 서구사회에서 본격적인 사회적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시기인 1830년대부터다. 급격한 산업화로 농촌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집 없는 도시빈민과 도시 노동자들에 의한 빈집점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생존의 위협을 받던 가난한 도시 노동자들이 대지주와 자본가들이 잉여의 공간으로 남겨둔 빈 건물로 스며들어가 거주하기 시작한 것이 스쾃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에 스쾃운동이 처음 소개된 것은 건물 신축공사가 중단돼 방치된 서울 목동의 예술인회관을 예술인들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로 시작한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알려지면서부터다. 김영삼정부때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으려던 예술인회관(지상 20층, 지하 3층)이 착공 5년 만에 비리와 시공업체 부도로 공사가 중단된 채 버려진 것을 젊은 예술인들이 “예술인의 작업실로 돌려달라”며 점거한 것이 한국 스쾃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팀의 김강씨는 “프랑스 등 서구사회에서 스쾃운동은 노동자들이 살 권리를 위한 생존권 차원에서 시작해 도시빈민단체와 사회운동단체, 정치권 등의 조직적인 지원을 받아 ‘집안의 가장은 비어 있는 공간에 거주하기 위해 점거할 권리’를 얻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방치되거나 죽어 있는 빈 건물에 생명을 불어놓는 공간 재생 운동”이라며 “예술가들이 빈 건물을 점거해 문화운동을 벌이는 것이나 노숙자들이 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빈집을 점거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권 확보라는 차원에서 보면 동일한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서구사회와 달리 한국사회는 공간에 대한 사적소유개념이 훨씬 강하고 노숙자와 집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편견도 심하다”며 “빈집점거운동은 공간의 소유와 이용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공론화자는 취지인 만큼 일회성 점거이벤트가 아니라 노숙자단체는 물론 정치인, 언론 등과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백선 평등연대 조직부장은 “공간은 남아 도는데 집없는 사람이 넘쳐나는 자본주의 모순적인 주거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노숙인 문제”라며 “빈집점거는 노숙인들의 주거권을 확보하는 차원뿐 아니라 재활프로그램과 연관시켜 노숙자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형법 제36장 ‘주거침입의 죄’
형법 제319조 (주거침입, 퇴거불응)
①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전항의 장소에서 퇴거요구를 받고 응하지 아니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는 빈집점거 운동을 살펴본다. [편집자] 노숙자들 “빈집에 들어가 살 권리를 인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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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숙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품고 열심히 살고 있다. 장사가 잘 되면 큰 사업을 하고 싶다.” 노숙자였던 임진택(30)씨는 지난해 9월부터 철거를 앞둔 서울 황학동 삼일아파트를 점거한 채 살고 있다. 가진 것 한푼 없고, 오랜 노숙생활로 몸도 마음도 망가진 임씨가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철거를 앞둔 삼일아파트를 점거하는 일이었다. 임씨와 함께 10여명의 노숙자들이 6월이면 헐릴 삼일아파트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삶의 보금자리를 꾸렸다. 이들은 노숙자운동단체들의 후원을 받아 ‘더불어사는집’이라는 모임을 꾸리고 빈집점거를 통한 새로운 형태의 노숙자 자활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노숙자 10여명 삼일아파트 점거…6월까지 잠정적 거주 인정
재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살 곳, 구청도 ‘어쩔 수 없어’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이 “빈집에 들어가 살 권리를 인정해달라”며 빈집점거에 나서고 있다. 사회운동단체인 평등연대와 빈집점거를 통한 노숙인 자활공동체를 꿈꾸는 ‘더불어사는집’은 16일 서울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노숙인들의 반란, 빈집점거’ 토론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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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들 ‘오아시스 프로젝트’ 통해 국내에 알려져
“주거권 확보뿐 아니라 노숙자 재활 공동체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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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점거는 버려지거나 방치된 공간을 아무런 권리와 명분없이 들어가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목동들이 자신의 초지가 아닌 곳에 양떼를 몰고가 먹이던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빈집점거가 서구사회에서 본격적인 사회적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시기인 1830년대부터다. 급격한 산업화로 농촌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집 없는 도시빈민과 도시 노동자들에 의한 빈집점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생존의 위협을 받던 가난한 도시 노동자들이 대지주와 자본가들이 잉여의 공간으로 남겨둔 빈 건물로 스며들어가 거주하기 시작한 것이 스쾃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에 스쾃운동이 처음 소개된 것은 건물 신축공사가 중단돼 방치된 서울 목동의 예술인회관을 예술인들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로 시작한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알려지면서부터다. 김영삼정부때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으려던 예술인회관(지상 20층, 지하 3층)이 착공 5년 만에 비리와 시공업체 부도로 공사가 중단된 채 버려진 것을 젊은 예술인들이 “예술인의 작업실로 돌려달라”며 점거한 것이 한국 스쾃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팀의 김강씨는 “프랑스 등 서구사회에서 스쾃운동은 노동자들이 살 권리를 위한 생존권 차원에서 시작해 도시빈민단체와 사회운동단체, 정치권 등의 조직적인 지원을 받아 ‘집안의 가장은 비어 있는 공간에 거주하기 위해 점거할 권리’를 얻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방치되거나 죽어 있는 빈 건물에 생명을 불어놓는 공간 재생 운동”이라며 “예술가들이 빈 건물을 점거해 문화운동을 벌이는 것이나 노숙자들이 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빈집을 점거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권 확보라는 차원에서 보면 동일한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서구사회와 달리 한국사회는 공간에 대한 사적소유개념이 훨씬 강하고 노숙자와 집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편견도 심하다”며 “빈집점거운동은 공간의 소유와 이용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공론화자는 취지인 만큼 일회성 점거이벤트가 아니라 노숙자단체는 물론 정치인, 언론 등과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백선 평등연대 조직부장은 “공간은 남아 도는데 집없는 사람이 넘쳐나는 자본주의 모순적인 주거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노숙인 문제”라며 “빈집점거는 노숙인들의 주거권을 확보하는 차원뿐 아니라 재활프로그램과 연관시켜 노숙자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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