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귀농운동본부 새 상임대표 정용수씨
전국귀농운동본부 새 상임대표 정용수씨
경자유전 원칙 지켜 땅값 내렸으면
주말 텃밭같은 도시농업 체험 중요
‘석유’ 끝나면 농사 가치 깨달을 것 “귀농자는 늘고 있는데 농지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두메산골의 절대농지조차 값이 몇 배씩 뛰어 은퇴 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고는 농지 장만이 어려워졌습니다.” 전국귀농운동본부 정용수(60사진) 신임 상임대표는 땅값 상승이 귀농 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열린 총회에서 12년 역사의 귀농운동을 이끌 대표로 선출된 그는 최근 일부 각료 후보들의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사회 지도층이 국민에게 땅투기법을 가르치는 꼴”이라며 “정부가 경자유전 원칙만 제대로 지켜도 농지값은 금새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농사 기술의 부족도 귀농의 걸림돌로 보고 있다. 그가 귀농 실습지 마련을 주요한 사업으로 추진하려는 이유다. 귀농운동본부의 귀농학교는 이론 교육과 함께 몇 차례 현장실습을 하지만 장기적으로 농사를 지어볼 수 있는 땅이 없어 수강생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가 만난 귀농자 가운데 상당수가 ‘실전 경험’이 부족해 “맨 땅에 헤딩하듯이” 농사를 지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 대표는 실습지 확보와 함께 2004년부터 자신이 관여해 온 도시농업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도심의 텃밭이 비록 규모는 작지만 실습지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경험에 따른 믿음이다. 그는 1991년 경기도 산본에 땅을 마련해 회사를 다니면서 농사를 지었고 농삿일을 배웠다. 농사 규모는 크지 않지만 논 660㎡와 밭 990㎡에서 쌀은 물론 먹을거리 대부분을 자급하고 있다. “도시농업이 초보 농사꾼을 길러내는 역할은 충분히 하는 것 같아요. 주말에 텃밭이라도 한번 가꿔보면 농사를 익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되거든요.” 정 대표가 귀농운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올해로 10년째다. 1999년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했던 형 집에 갔다 귀농운동본부 기관지 <귀농통문>을 만난 것이 계기였다. 그 뒤로 돼지고기 육가공, 집짓기, 나물캐기 등 귀농본부의 여러 강좌를 들으며 귀농운동의 철학과 활동을 알게 됐고 21세기판 ‘브나로드 운동’에 뛰어들었다. 2004년 귀농운동본부가 도시농업위원회를 만들 때 위원으로 참여한 그는 2005년부터 2년 동안 도시농업위원장으로 주말농장과 도심텃밭의 확산에 힘을 보탰다.
정 대표는 무자년 출생이다. 무자년인 올해는 그에게 인생의 한 주기가 끝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해인 셈이다. 두 번째 인생을 그는 귀농운동에 바치려고 한다. “세태를 보면 농민은 아예 정책 대상에서 빠진 듯합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석유로 유지되는 세상이 끝나게 되면 귀농운동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글·사진/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주말 텃밭같은 도시농업 체험 중요
‘석유’ 끝나면 농사 가치 깨달을 것 “귀농자는 늘고 있는데 농지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두메산골의 절대농지조차 값이 몇 배씩 뛰어 은퇴 뒤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고는 농지 장만이 어려워졌습니다.” 전국귀농운동본부 정용수(60사진) 신임 상임대표는 땅값 상승이 귀농 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열린 총회에서 12년 역사의 귀농운동을 이끌 대표로 선출된 그는 최근 일부 각료 후보들의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사회 지도층이 국민에게 땅투기법을 가르치는 꼴”이라며 “정부가 경자유전 원칙만 제대로 지켜도 농지값은 금새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농사 기술의 부족도 귀농의 걸림돌로 보고 있다. 그가 귀농 실습지 마련을 주요한 사업으로 추진하려는 이유다. 귀농운동본부의 귀농학교는 이론 교육과 함께 몇 차례 현장실습을 하지만 장기적으로 농사를 지어볼 수 있는 땅이 없어 수강생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가 만난 귀농자 가운데 상당수가 ‘실전 경험’이 부족해 “맨 땅에 헤딩하듯이” 농사를 지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 대표는 실습지 확보와 함께 2004년부터 자신이 관여해 온 도시농업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도심의 텃밭이 비록 규모는 작지만 실습지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경험에 따른 믿음이다. 그는 1991년 경기도 산본에 땅을 마련해 회사를 다니면서 농사를 지었고 농삿일을 배웠다. 농사 규모는 크지 않지만 논 660㎡와 밭 990㎡에서 쌀은 물론 먹을거리 대부분을 자급하고 있다. “도시농업이 초보 농사꾼을 길러내는 역할은 충분히 하는 것 같아요. 주말에 텃밭이라도 한번 가꿔보면 농사를 익히는 데 크게 도움이 되거든요.” 정 대표가 귀농운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올해로 10년째다. 1999년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했던 형 집에 갔다 귀농운동본부 기관지 <귀농통문>을 만난 것이 계기였다. 그 뒤로 돼지고기 육가공, 집짓기, 나물캐기 등 귀농본부의 여러 강좌를 들으며 귀농운동의 철학과 활동을 알게 됐고 21세기판 ‘브나로드 운동’에 뛰어들었다. 2004년 귀농운동본부가 도시농업위원회를 만들 때 위원으로 참여한 그는 2005년부터 2년 동안 도시농업위원장으로 주말농장과 도심텃밭의 확산에 힘을 보탰다.
정 대표는 무자년 출생이다. 무자년인 올해는 그에게 인생의 한 주기가 끝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해인 셈이다. 두 번째 인생을 그는 귀농운동에 바치려고 한다. “세태를 보면 농민은 아예 정책 대상에서 빠진 듯합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석유로 유지되는 세상이 끝나게 되면 귀농운동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글·사진/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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