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년 수배 끝에 경찰에 연행된 윤기진(35)씨의 부인 황선(36)씨가 두 딸과 함께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제공
대학생 북한에 밀입국 혐의
윤기진 범청학련 남쪽 의장
“국제정세와 동떨어진 일”
맞춤식 공안 탄압 의구심 “세계 각 언론이 뉴욕 필하모니의 평양 공연을 ‘평화의 서곡’으로 긴급 타전하고 있는 이때 한국 정부의 역할이 정말 큰데, 오히려 국제 정세와 동떨어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년 도피생활 끝에 붙잡힌 윤기진(33·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씨의 부인 황선(34·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씨는 28일 남편이 붙잡힌 ‘시점’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춘 공안 탄압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드러냈다. 황씨는 남편이 체포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20~30명이 한명을 결박해서 끌고 다니는 건 70년대에나 가능하다”며 “이런 행동은 새 정부에 족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가 붙잡힌 건 지난 1998년 대학생을 북한에 밀입국시킨 혐의로 수배된 지 10년, 황씨와 결혼한 지 4년 만이다. 황씨의 결혼생활은 언제나 국가보안법과 함께였다. 경찰을 피해 지난 2004년 덕성여대에서 몰래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아이를 낳고도 생이별을 해야 했다. 황씨는 “몇달에 한번 만나 한참 큰 아이들을 보고 애 아빠가 ‘억울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한참 재롱을 부리는 아이들을 못보고 수배생활 하는 게 힘들다고 말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큰딸 민(4)이는 아빠를 알아보지만 작은 딸 겨레(3)는 윤씨에게 금방 안기지 않았다. 2005년 평양에서 아리랑 관람행사 도중 둘째딸을 낳아 화제가 됐던 황씨는 “당시 수배 중이던 아빠가 민이를 돌보고 있었다”며 “남편은 이틀 동안 아빠를 낯설어하며 울고 있는 민이를 안고 다니느라, 내가 북한에서 겨레를 낳은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황씨는 이렇게 힘든 삶이지만 통일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멈출 생각은 없다고 한다. 황씨는 “남편과 결혼할 때부터 두렵기도 했고, 이런 결혼 생활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고민도 했다”며 “통일을 위해 일한다는 이유 하나로 가족과 떨어져 10년 동안 수배생활을 하게 하고, 재벌이나 정치인들은 북한에 가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편이 빨리 나와 신혼여행을 가보는 게 꿈이라는 황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된 학생들 가운데는 사랑하는 이와 결혼도 못한 사람이 많은데, 우리는 오히려 복받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윤기진 범청학련 남쪽 의장
“국제정세와 동떨어진 일”
맞춤식 공안 탄압 의구심 “세계 각 언론이 뉴욕 필하모니의 평양 공연을 ‘평화의 서곡’으로 긴급 타전하고 있는 이때 한국 정부의 역할이 정말 큰데, 오히려 국제 정세와 동떨어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0년 도피생활 끝에 붙잡힌 윤기진(33·범청학련 남측본부 의장)씨의 부인 황선(34·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씨는 28일 남편이 붙잡힌 ‘시점’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춘 공안 탄압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드러냈다. 황씨는 남편이 체포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20~30명이 한명을 결박해서 끌고 다니는 건 70년대에나 가능하다”며 “이런 행동은 새 정부에 족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가 붙잡힌 건 지난 1998년 대학생을 북한에 밀입국시킨 혐의로 수배된 지 10년, 황씨와 결혼한 지 4년 만이다. 황씨의 결혼생활은 언제나 국가보안법과 함께였다. 경찰을 피해 지난 2004년 덕성여대에서 몰래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아이를 낳고도 생이별을 해야 했다. 황씨는 “몇달에 한번 만나 한참 큰 아이들을 보고 애 아빠가 ‘억울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한참 재롱을 부리는 아이들을 못보고 수배생활 하는 게 힘들다고 말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큰딸 민(4)이는 아빠를 알아보지만 작은 딸 겨레(3)는 윤씨에게 금방 안기지 않았다. 2005년 평양에서 아리랑 관람행사 도중 둘째딸을 낳아 화제가 됐던 황씨는 “당시 수배 중이던 아빠가 민이를 돌보고 있었다”며 “남편은 이틀 동안 아빠를 낯설어하며 울고 있는 민이를 안고 다니느라, 내가 북한에서 겨레를 낳은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황씨는 이렇게 힘든 삶이지만 통일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멈출 생각은 없다고 한다. 황씨는 “남편과 결혼할 때부터 두렵기도 했고, 이런 결혼 생활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고민도 했다”며 “통일을 위해 일한다는 이유 하나로 가족과 떨어져 10년 동안 수배생활을 하게 하고, 재벌이나 정치인들은 북한에 가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편이 빨리 나와 신혼여행을 가보는 게 꿈이라는 황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된 학생들 가운데는 사랑하는 이와 결혼도 못한 사람이 많은데, 우리는 오히려 복받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