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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학교 쫓겨나 또 방문 잠그고 숨어야 하나요”

등록 2008-02-29 07:27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의 자녀인 뜨구(11)가 27일 경기 안산 원곡동 ‘이주어린이 방과후 교실’에서 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다음달 5학년이 되는 뜨구는 29일부터 불법체류 신분이 돼 새 학기 전에 학교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안산/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의 자녀인 뜨구(11)가 27일 경기 안산 원곡동 ‘이주어린이 방과후 교실’에서 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다음달 5학년이 되는 뜨구는 29일부터 불법체류 신분이 돼 새 학기 전에 학교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안산/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주어린이 100명 ‘한시적 특별체류’ 마지막 날
이 땅에 살고 있는 100명의 어린이들이 29일부터 불법체류자가 된다. 네댓 살 때 부모와 함께 몽골을 떠나와 이제는 한국말이 더 자연스러운 차지란(12·여)·아즈딜렉(11·여)·설렁거(15·여)양도 그들의 일부다. 28일 오전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다니는 서울 광진구 몽골학교는 이튿날 있을 입학식 준비로 들떠 있었지만, 이들 세 아이의 얼굴엔 봄기운이 없었다. 2006년 12월 법무부가 불법체류자 자녀의 교육을 보장해준다며 내준 15개월 특별체류 허가가 29일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차지란양은 공부 얘기를 할 때는 “한국어와 몽골어 시간이 재미있다”며 환한 표정을 짓다가도, “이젠 다시 방에 열쇠를 채워 잠그고 살아야 한다”며 어른처럼 한숨을 쉬었다. 방학 때 몽골에 다녀온 적이 있는 차지란양은 “몽골보다 한국이 더 익숙해 빨리 돌아오고 싶었다”고 한다. 아빠와 단 둘이 사는 설렁거양은 “아빠는 이삿짐센터에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기 때문에 항상 밖에 있는데, 언제 단속이 될지 모른다”며 아빠 걱정을 먼저 했다. 차지란양의 엄마인 타야(32)씨는 “세금도 내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아이에게도 미안할 뿐”이라며 답답해했다.

경기 안산이주민센터에서 이주청소년 교육을 담당하는 김주연(33) 교사도 요즘 아침저녁으로 똑같은 질문을 서너 차례씩 듣는다. “한국 친구들과도 친해졌고, 이제 한국말을 더 잘하는데 쫓겨나야 하느냐”는 이주어린이들의 질문이다. 올해 안산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이 될 예정이던 몽골 출신 휴레(17·여)양은 이미 지난달 12일 가족과 함께 한국을 떠났다. 초등학교 쪽에선 졸업장 대신 수료증을 쥐어줬다.

1998년에 한국에 들어온 필리핀 국적의 크리스티나(48)씨도 한국에서 낳은 딸 줄리(9)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지난 방학 때 잠시 필리핀에 갔던 줄리양은 ‘빨리 한국에 돌아오고 싶다’고 어머니를 보챘다. 크리스티나씨는 “본국에 강제로 돌아가게 되면 오히려 언어·문화의 차이로 힘들어할 텐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법무부의 특별체류 허가는 2006년 4월 스리랑카 국적의 불법체류 이주어린이인 하영광(9)군 사건이 계기가 됐다.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가던 어머니가 단속에 걸려 추방 위기에 몰린 사실이 알려진 뒤 이주어린이의 교육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자진 신고한 이들에 한해 한시적 특별체류 허가를 내준 것이다. 법무부가 파악하는 불법체류 이주어린이는 8천여명에 이르지만, 당시 특별체류 허가를 받은 어린이는 100명에 불과했다. 그 100명의 아이들도 이제 다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돌아간다.

이주아동연대 박용선 집행위원장은 “우리 정부는 이주어린이의 교육권과 생존권 보장을 명시한 유엔 어린이인권협약을 91년 비준했지만, 이후 실질적 조처는 없었다”며 “특별체류 허가도 여론을 의식한 편법적인 조처였다”고 말했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최현모 대표는 “일본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거나 성장기를 대부분 일본에서 보낸 경우 체류심사를 통해 특별체류를 허가한다”며 “우리도 이런 제도의 도입을 논의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이정연, 안산/김기성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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