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지역구 예비 국회의원 후보 쪽에서 누리꾼에게 일괄적으로 보낸 이메일 내용의 일부. 이메일 홍보는 공직선거법상 합법적인 홍보방법이다.
총선 예비후보들 ‘편법선거운동’…공천 노린 인지도 높이기
4월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 가정의 전화기에 불이 날 지경이다. 공천 신청을 한 예비 후보들이 유권자 성향을 파악하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은(37·금천구 독산동)씨는 2월 내내 집으로 걸려 오는 전화 설문조사에 시달렸다. 김씨는 ‘이것도 정치 참여’ 라 생각하고 처음엔 설문에 응했지만, 세번째 걸려오는 전화부터는 짜증이 났다. 김씨는 “통합민주당의 이아무개 의원을 알고 있느냐는 첫번째 질문 후에는 계속 한나라당 의원들의 경력사항이 열거됐다. ‘포항제철에서 근무했고 지역구에서 자선바자회를 열었으며, 폐지수거함을 지역에 배치하는 일을 했던 한나라당 OO의원을 아느냐’는 질문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문아무개(44·구로구 신길동)씨는 사무실로 하루 두세통씩 걸려오는 설문 전화에 신물이 났다. 전화국에 전화를 걸어 해당 번호에 대해 수신거부 조치를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다른 번호로 계속 전화가 걸려와 업무 방해는 계속 됐다. 전화는 밤낮이 없었다. 문씨는 “여론조사라기보다 선거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쾌하다”며 “여론조사기관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기계음이 설문을 진행했다. 화가 나 전화해보면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고 말했다. 문씨는 일주일 새 총 8통의 설문전화에 응했다.
“…자선 바자회 열고, 폐지수거함을 배치한 OO의원을 아십니까”
이런 전화에 시달린 한 유권자는 “총선 관련 설문조사 자제해달라”며 지난 11일 미디어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 청원운동을 시작했다. 조주연(23·고양시 덕양구)씨는 “하루에 서너번씩 전화가 온다. 실제 유권자의 요구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했다기보단 홍보하는 느낌”이라고 청원의 동기를 설명했다.
각 정당과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에는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총 10명의 예비후보가 공천신청을 한 한나라당 고양 덕양을 당원협의회 관계자들은 주민들의 항의에 속이 탄다. 이 협의회 이준석 행정실장은 “항의 전화가 많다”며 “예비후보들이 여론조사 형식으로 이름 알리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에선 금천구, 동작갑, 서초을 등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다. 송치훈 금천구 선거관리위원회 홍보계장은 “지역 유권자들로부터 설문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며 항의전화가 온다”며 “예비후보자들에게 공정선거를 진행하도록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총선 예비후보자들의 ‘설문전화 공세’는 ‘편법 선거운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상당수 지역에서 ‘한나라당 공천은 곧 당선’이란 믿음이 퍼져 있는 가운데 예비후보자들간의 인지도 경쟁이 치열한 때문이다. 4·9 총선을 위해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예비 후보는 249개 지역구에 모두 1173명. 경쟁률은 4.82대 1. 지난 2002년 선거 때는 3.1대 1이었다. 일부 후보, 자신 소유 회사 동원해 각 가정에 전화 몇몇 예비 후보쪽은 ‘이름알리기 목적’으로 설문조사전화를 돌리는 것을 인정했다. 1차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서울 금천구의 한 예비후보 관계자 이아무개씨는 “유권자들에게 사전에 후보 이름 석자 정도를 알릴 수 있고 본선에서 지역구 예상질문도 미리 확인하는 이점”때문에 전화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시인했다. 그는 “후보의 육성을 녹음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갑 지역의 한 예비후보 관계자 이아무개씨도 “인지도 조사 차원에서 했다”며 “선거기법 중 하나로, 주민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선거법상 홍보수단이 제한돼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거의 전 지역에서 설문조사를 했을 거다. 공천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이라 예상했다. 일부 후보들은 자신이 소유한 여론조사 회사를 동원하고 있다. 고양 덕양을 지역구의 한나라당 예비후보 안아무개(49)씨는 본인 소유의 ‘o 리서치’ 회사를 동원해 각 가정에 전화를 돌리다 지역 당원들의 항의를 받고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 한나라당 당원협의회 이준석 사무국장은 “자신의 회사를 활용해 자유선진당과 본인을 비교하며 당선 가능성을 묻는 조사를 하다가 당원이 문제제기하자 지금은 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수 모노리서치 팀장은 “선거 때만 되면 유령회사들이 많이 생겨 불법적인 내용까지 포함해 설문을 한다”며 “ARS 장비만 있으면 누구든 전화를 직접 돌릴 수 있고, 실제 어떤 후보들은 ARS 장비로 직접 설문전화를 돌리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여론조사 주체를 누군지 밝힐 수만 없을 뿐이지 조사를 못하는 건 아니고. ARS 장비가 그리 비싸지 않다”고 말했다. 유봉환 21세기리서치 실장은 “해당지역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는 유권자의 집에 무작위로 전화를 돌리는 형식으로 설문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한나라 공천심사위 “지역에서 알아서 할 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이런 ‘편법 선거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정종복 한나라당 공천심사팀 간사는 “지역의 후보가 직접 조사한 인지도 자료는 참고자료일 뿐”이라며 “당에서 직접 실행한 여론조사자료만 심사 때 활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간사는 예비후보자들의 여론조사 시도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정 간사는 “일부선 불만을 제기하겠지만 그런 전화를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며 “지역구에서 알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조사를 자제하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화만 ‘편법 선거운동’에 동원되는 것이 아니다. 이장연(31·인천 서구 공천동)씨는 한나라당 이아무개 예비후보로부터 광고메일을 받았다. 태안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이 담긴 이 후보의 모습과 함께 “인천시청을 서구로 옮기겠다”는 공약이 담겨 있는 편지였다. 편지를 받은 이씨는 “자신의 출마지역에 사는 내 메일 주소를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편지는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해당 후보의 의뢰를 받아 한통에 20원씩 받고 보내는 광고메일이었다. 이병헌 다음 채널마케팅팀장(인천센터)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이메일 주소로 해당지역 주민에게 보낸 것이다. 이메일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인정한 방법이다. 전국에서 10여명 이상의 후보가 이 서비스를 이용해 홍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홍보 이메일도 쏟아져 “내가 여기 사는 유권자인줄 어떻게 알았을까?” 예비후보들이 벌이는 이런 활동은 ‘사전선거운동’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선관위에선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박광석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계장은 “공직선거법 60일 전부터 정당명이나 후보자명을 거론하는 조사를 하면 안된다. 하지만 이를 지키며 여론조사를 하는 것은 사전선거운동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계장은 여론조사 자체를 문제 삼지 말고 내용을 봐야한다고 전했다. 그는 “특정 정당의 유·불리한 내용이 담겨 있는 설문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지 조사 자체를 규제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수경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단속계장은 “여론조사를 빙자한 선거운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공직선거법 108조를 지키면서 편향된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 특정 인물에게 유불리하게 하지 않는 여론조사라면 괜찮다”고 말했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최영진 중앙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정당의 후진적인 후보평가시스템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본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정당은 후보의 전문성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당선시키느냐가 공천 심사의 초점이다. 다른 나라보다 이게 좀 심하다. 예비후보의 문제라기 보다 정당이 제대로 된 정치인 충원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큰 원인”이라 지적했다. 최 교수는 “후보들의 고충도 함께 봐야 한다”며 “지금의 선거법으로는 예비후보자들이 유권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워낙 제한적이라, 유권자를 만날 수 있는 통로를 많이 만들어주면 이런 음성적 선거운동이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현 참여연대 의정감시팀장은 “선거운동 방법이 워낙 제한돼 있어서 이런 전화라도 해야 유권자들이 후보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며 “유권자와 후보자들이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선거문화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각 정당과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에는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총 10명의 예비후보가 공천신청을 한 한나라당 고양 덕양을 당원협의회 관계자들은 주민들의 항의에 속이 탄다. 이 협의회 이준석 행정실장은 “항의 전화가 많다”며 “예비후보들이 여론조사 형식으로 이름 알리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에선 금천구, 동작갑, 서초을 등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다. 송치훈 금천구 선거관리위원회 홍보계장은 “지역 유권자들로부터 설문전화가 너무 많이 온다며 항의전화가 온다”며 “예비후보자들에게 공정선거를 진행하도록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총선 예비후보자들의 ‘설문전화 공세’는 ‘편법 선거운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상당수 지역에서 ‘한나라당 공천은 곧 당선’이란 믿음이 퍼져 있는 가운데 예비후보자들간의 인지도 경쟁이 치열한 때문이다. 4·9 총선을 위해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한 예비 후보는 249개 지역구에 모두 1173명. 경쟁률은 4.82대 1. 지난 2002년 선거 때는 3.1대 1이었다. 일부 후보, 자신 소유 회사 동원해 각 가정에 전화 몇몇 예비 후보쪽은 ‘이름알리기 목적’으로 설문조사전화를 돌리는 것을 인정했다. 1차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서울 금천구의 한 예비후보 관계자 이아무개씨는 “유권자들에게 사전에 후보 이름 석자 정도를 알릴 수 있고 본선에서 지역구 예상질문도 미리 확인하는 이점”때문에 전화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시인했다. 그는 “후보의 육성을 녹음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갑 지역의 한 예비후보 관계자 이아무개씨도 “인지도 조사 차원에서 했다”며 “선거기법 중 하나로, 주민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선거법상 홍보수단이 제한돼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 거의 전 지역에서 설문조사를 했을 거다. 공천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이라 예상했다. 일부 후보들은 자신이 소유한 여론조사 회사를 동원하고 있다. 고양 덕양을 지역구의 한나라당 예비후보 안아무개(49)씨는 본인 소유의 ‘o 리서치’ 회사를 동원해 각 가정에 전화를 돌리다 지역 당원들의 항의를 받고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 한나라당 당원협의회 이준석 사무국장은 “자신의 회사를 활용해 자유선진당과 본인을 비교하며 당선 가능성을 묻는 조사를 하다가 당원이 문제제기하자 지금은 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수 모노리서치 팀장은 “선거 때만 되면 유령회사들이 많이 생겨 불법적인 내용까지 포함해 설문을 한다”며 “ARS 장비만 있으면 누구든 전화를 직접 돌릴 수 있고, 실제 어떤 후보들은 ARS 장비로 직접 설문전화를 돌리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여론조사 주체를 누군지 밝힐 수만 없을 뿐이지 조사를 못하는 건 아니고. ARS 장비가 그리 비싸지 않다”고 말했다. 유봉환 21세기리서치 실장은 “해당지역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는 유권자의 집에 무작위로 전화를 돌리는 형식으로 설문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한나라 공천심사위 “지역에서 알아서 할 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이런 ‘편법 선거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정종복 한나라당 공천심사팀 간사는 “지역의 후보가 직접 조사한 인지도 자료는 참고자료일 뿐”이라며 “당에서 직접 실행한 여론조사자료만 심사 때 활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간사는 예비후보자들의 여론조사 시도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정 간사는 “일부선 불만을 제기하겠지만 그런 전화를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며 “지역구에서 알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조사를 자제하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화만 ‘편법 선거운동’에 동원되는 것이 아니다. 이장연(31·인천 서구 공천동)씨는 한나라당 이아무개 예비후보로부터 광고메일을 받았다. 태안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이 담긴 이 후보의 모습과 함께 “인천시청을 서구로 옮기겠다”는 공약이 담겨 있는 편지였다. 편지를 받은 이씨는 “자신의 출마지역에 사는 내 메일 주소를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편지는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해당 후보의 의뢰를 받아 한통에 20원씩 받고 보내는 광고메일이었다. 이병헌 다음 채널마케팅팀장(인천센터)은 “우리가 갖고 있는 이메일 주소로 해당지역 주민에게 보낸 것이다. 이메일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인정한 방법이다. 전국에서 10여명 이상의 후보가 이 서비스를 이용해 홍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홍보 이메일도 쏟아져 “내가 여기 사는 유권자인줄 어떻게 알았을까?” 예비후보들이 벌이는 이런 활동은 ‘사전선거운동’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선관위에선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박광석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계장은 “공직선거법 60일 전부터 정당명이나 후보자명을 거론하는 조사를 하면 안된다. 하지만 이를 지키며 여론조사를 하는 것은 사전선거운동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계장은 여론조사 자체를 문제 삼지 말고 내용을 봐야한다고 전했다. 그는 “특정 정당의 유·불리한 내용이 담겨 있는 설문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지 조사 자체를 규제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수경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단속계장은 “여론조사를 빙자한 선거운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공직선거법 108조를 지키면서 편향된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 특정 인물에게 유불리하게 하지 않는 여론조사라면 괜찮다”고 말했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최영진 중앙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정당의 후진적인 후보평가시스템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본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정당은 후보의 전문성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당선시키느냐가 공천 심사의 초점이다. 다른 나라보다 이게 좀 심하다. 예비후보의 문제라기 보다 정당이 제대로 된 정치인 충원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 큰 원인”이라 지적했다. 최 교수는 “후보들의 고충도 함께 봐야 한다”며 “지금의 선거법으로는 예비후보자들이 유권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워낙 제한적이라, 유권자를 만날 수 있는 통로를 많이 만들어주면 이런 음성적 선거운동이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현 참여연대 의정감시팀장은 “선거운동 방법이 워낙 제한돼 있어서 이런 전화라도 해야 유권자들이 후보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며 “유권자와 후보자들이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선거문화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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