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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술강국 독일은 왜 강둑을 허물고 있나

등록 2008-02-29 15:36

이자강변의 재자연화 공사현장, 2008.2.28, 사진/임혜지
이자강변의 재자연화 공사현장, 2008.2.28, 사진/임혜지
[임혜지의독일운하이야기]⑤ 홍수의 값과 자연하천의 값

독일, 천연자원보다 인적자원에 의존하는 한국과 비슷…

“현명해야 산다” 의식 팽배…환경보호 동기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이기 때문에’

천연자원이 없어서 국민경제가 전적으로 인적자원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독일과 한국은 비슷하다. 독일은 2007년 5년연속 세계 제일의 수출국이 되었다. 원유 가격이 오르고 유로화 강세였지만 재작년보다 8.5% 증가한 1조 유로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올해엔 중국에 밀릴 것이라 전망되지만 등수와 상관 없이 독일은 좋은 실적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세계적으로 기계 수요가 늘고 있고 독일은 기계의 강국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좀 고전했지만 독일은 이제는 확실히 세계화로 이익을 보는 반열에 들게 되었다.

독일은 환경보호에 대한 의식이 높은 편이어서 지구온난화 문제로 국제무대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독일의 환경주의자들이라면 흔히 낭만적인 자연주의자들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실지로는 그렇지 않다. 녹색당을 지지하는 환경주의자들 중에는 교육수준이 높고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하이테크 신봉자들이 유난히 많다.

이들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경제론적인 이유에서 환경을 보호한다. 마치 유도선수들이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서 시합을 이끄는 것처럼 독일은 자연법칙을 이용해서 약게 생존하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상 풍부한 천연자원도, 변변한 식민지도 없이 인적 자원 하나만으로 버티어온 나라로서 약지 않을 수 없다.


독일 강변 제방 허물어 물 범람하게 해 습지 되살리는 공사 곳곳서 한창

오늘날 독일에선 곳곳에 강변 제방을 헐고 물이 범람하도록 만들어 옛날의 습지를 재생시키는 공사가 한창이다. 먹고 살기 좋아졌으니 이제는 옛날의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여유로운 낭만이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돈을 아끼려고 그러는 것이다.

옛날에는 1백년에 한 번 쯤 일어나던 규모의 대홍수가 지난 몇십 년 사이에 부쩍 늘었다. 라인강에서 1983, 1988, 1993, 1995년에, 도나우강에서 1988, 1999년에, 오더강에서 1997년에, 그리고 2000년대 이후로는 엘베강에서 5년 동안 매년 그렇게 큰 홍수가 났다. 특히 라인강의 홍수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눈에 뜨이게 증가했다.

홍수 피해를 돈으로 환산하자면, 2002년에 21명의 인명을 앗아가고 수많은 도시와 마을과 전답을 삼킨 엘베강의 홍수에서 총 150억 유러의 재산피해가 났다. 거기다가 생산 차질에 따르는 피해액이 2.5억 유로로 추가되었다.

이는 세계적 현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재보험회사인 뮌헨뤽 보험회사는 2003년도에 5억 유로의 적자를 냈다. 뮌헨뤽 보험회사의 계산에 의하면 지난 40년의 추세가 앞으로 60년간 계속된다면 지구상에서 자연재해의 복구에 드는 금액이 전인류의 총생산액을 능가하게 된다고 한다.

지구온난화현상에 따른 이상기후가 그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날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에서 공인된 사실이다. 독일연방 자연보호청은 홍수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규명한다. (2007년 자료)

1. 굽이치던 강이 직선으로 정리되고, 보와 제방의 건설로 인해 강변의 습지가 예전의 10%로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물이 불어나면 상류에서부터 간간이 강변 습지로 범람하느라 기운을 잃었는데, 이제는 수로에 갇혀서 직통으로 흐르면서 가속이 붙기 때문에 중하류에서 제방을 넘거나 파괴하는 것이다.

2. 단일재배로 인해 농경지의 땅이 굳어지는 현상으로 인해 대지가 빗물을 머금어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이 감소되었다. 그 결과 예전보다 많은 양의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냇물을 통해 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3. 거주지와 도로 등 포장된 면적이 늘어남에 따라 빗물이 대지로 흡수되지 못하고 하수관을 통해 강으로 직결되는 양이 늘었다. 비가 오면 스며들어 저장될 수 있는 땅이 줄었으므로 특히 도시 주변에서 비만 왔다하면 강물이 과다하는 불어난다.

4. 대기오염으로 인해 나무가 병들어 숲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도 홍수의 원인이다. 숲이 빗물을 예전만큼 수용하지 못하고 강으로 흘려보낸다.

위에 열거한 사항들 중에서 특히 강의 직선화와 습지의 감소는 홍수의 가장 큰 원흉이다. 강변의 습지는 홍수를 방지하는 것 이외에도 생태계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강물의 불순물을 여과하고 독성을 제거함으로써 지하수의 수질을 높이는 중대한 역할도 겸한다. 그래서 독일연방 자연보호청장 폭트만은 전세계에 분포된 습지의 경제적 가치를 홍수 방지를 비롯한 생태적 이익으로 따져 580억 유로의 가격으로 환산했다.

시민들에게 이자강변 공사의 내용과 취지를 알리는 안내판, 2008.2.28. 사진/임혜지
시민들에게 이자강변 공사의 내용과 취지를 알리는 안내판, 2008.2.28. 사진/임혜지

위에 언급한 사실들은 수로교통의 역사가 긴 유럽에선 새로운 학설이 전혀 아니다. 내가 80년대에 칼스루에공대 건축과에서 배웠던 것이고 요즘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중고등학교에서도 가르치는 일반상식이다.

이런 이유에서 독일에선 강변의 제방을 헐고 습지를 다시 재생시키는 공사가 한창이다. 내가 살고 있는 뮌헨의 이자 강변에서도 십 년간의 조사와 준비기간을 거쳐 뮌헨시 수산청의 지휘 아래 1995년부터 시효된 '이자강 계획'에 따라 강변을 되살리는 '재자연화 공사'를 벌이고 있다. 지금 이자 강변에 가보면 물이 조금만 불어도 범람할 수 있도록 너른 습지를 조성하느라고 하루종일 포크레인이 왕왕거리며 강변을 파헤치고 있다. 이 공사의 목적은 첫째 홍수 방지, 둘째 시민을 위한 휴양지 조성, 셋째 강의 생태계 보전이며, 8킬로미터 구간의 공사비로서 2800만 유로가 책정되었다.

라인강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라인강은 70% 이상이 독일땅을 흐르지만 스위스, 독일, 룩셈부르크, 프랑스, 네덜란드를 경유하고, 라인강변에서 생성되는 지하수가 유럽 최대의 보유량이라는 점에서 유럽의 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라인강 상류에 위치한 스위스와 프랑스는 라인강변에 화학공장을 짓는 등 무슨 짓을 해도 손해를 보지 않지만, 하류에 위치한 네덜란드는 상류국가의 모든 잘못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점에서 유럽연합 차원에서 라인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라인강에 면한 모든 국가들은 1982년에 국제협약에 서명하여 라인강변에 되도록 많은 범람지역을 조성하여 강변습지를 부활시키기로 약속했다. 그 사이에 제방을 쌓은 덕분에 강변 가까이까지 주거지가 많이 늘어났으므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상류에서 자연에 되돌려줄 땅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홍수는 상류에서부터 기세를 약화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또한 상류에서 홍숫물이 강변 습지를 범람하느라고 속력을 잃어야만 중하류에서 샛강의 홍수와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이미 약속을 지켰고 독일에선 지금 진행 중이다.

19세기 쾰른의 법규 “하인 식사에 1주일에 3번이상 연어 나오면 안돼”

산업화로 1970년대 라인강 ‘죽음의 강’ 전락…오랜 정화노력끝 다시 연어 돌아와

이 '통합 라인강 계획'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라인강변은 옛날 생태계의 일부를 되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라인강 유역에는 220종의 새(그 중에 120종이 멸종위기에 처한 종)와 유럽의 나비의 40%, 잠자리 종의 80%가 서식하고 있다. 이들의 보금자리를 이루는 식물의 종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라인강은 자고로 생선의 보고였다. 강변도시인 쾰른에는 19세기에 하인들의 식사에 일 주일에 세 번 이상 연어가 나오면 안 된다는 법규가 존재했을 정도로 연어가 흔했다. 그러던 것이 강에 공장의 폐수가 유입되고, 배가 다니면서 강물을 오염시켜 1970년대의 라인강은 죽은 강으로 변했다. 환경계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제 라인강에선 다시 연어가 잡힐 정도로 강물이 깨끗해졌다.

라인강변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프로젝트의 총공사비는 6억 유로가 들 것으로 집계되었다. 큰돈이긴 하지만 위에 열거한 홍수의 피해액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미미한 액수이다. 또한 관광의 개념이 바뀌어가는 오늘날, 옛 라인강의 자연을 찾는 관광객으로 인한 수익도 기대되고 있다. 게다가 습지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기능으로 인해 지구온난화현상에 대처하는 방편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 세계 인구의 8%가 물의 부족을 겪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40년 후인 2050년 경에는 전체 인구의 4분의 1일 만성적 청정수 부족으로 고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벼농사를 짓는 우리나라에선 물이 특별히 소중한 자원이다. 라인강의 예는 물을 지키기 위해선 산수를 함께 지켜야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독일의 실수만 답습하지 않아도 많은 돈을 버는 셈이 아닐까? 실용과 경제를 강조하는 우리의 새 정부에게서 독일보다 더 약게 살아가는 현명함을 기대한다.

글·사진/뮌헨에서 임혜지 im1@hanamana.de

글을 쓴 임혜지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10대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 칼스루에공과대학에서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뮌헨에서 살고 있는 임씨는 프리랜서로 독일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실측조사와 발굴연구를 하고 있다. 2003년에는 <프리드리히 바이브렌너 시대의 칼스루에 주택>을 독일 유명출판사에서 펴냈고, 그동안 <인터넷한겨레> 등에 써온 글을 묶어 2008년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한겨레출판)을 펴냈다. 이 글은 임씨가 자신의 블로그(http://www.hanamana.de/hana)에도 실었다. 임씨의 블로그에는 좀더 다양한 글과 이 글에서 언급한 내용과 사진에 대한 상세한 출처가 기록돼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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